안세영(삼성생명)이 마침내 배드민턴 역사에 전무후무한 이정표를 세웠다. 지난 2025년 12월 월드투어 파이널스 우승과 함께 단일 시즌 누적 상금 100만 3,175달러(약 14억 8,600만 원)를 돌파하며 사상 첫 ‘백만 달러 클럽’의 문을 연 것이다. 하지만 이 화려한 숫자 뒤에는 타 종목과 비교하기 민망한 초라한 보상 체계와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의 살인적인 혹사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배드민턴의 상금 규모는 유사 종목인 탁구의 월드 테이블 테니스(WTT) 시리즈와 비교해도 갈 길이 멀다. 월드 테이블 테니스(WTT) 그랜드 스매시의 우승 상금이 약 10만 달러 수준인 데 비해, 배드민턴 최고 등급인 슈퍼 1000 대회의 우승 상금은 8.7만 달러에서 10만 달러 선에 머물러 있다.
특히 테니스와 비교하면 그 격차는 참혹한 수준이다. 테니스 메이저 대회인 윔블던 단수 우승 상금은 약 300만 달러를 상회한다. 안세영이 1년 내내 94.8%라는 기적적인 승률로 11개 대회를 싹쓸이하며 번 돈이, 테니스 스타가 단 2주간의 토너먼트에서 얻는 결실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세계 1위' 안세영조차 이 정도라면, 그 뒤에 선 수많은 선수의 현실은 처참하다는 점이다. 상위 1%인 여제조차 테니스 중위권 선수보다 적은 수익을 위해 무릎이 부서져라 코트를 뛰어야 한다면, 32강과 64강에서 탈락하는 하위 랭커들에게 국제 대회 출전은 수익이 아닌 '적자'를 감수한 생존 투쟁에 가깝다.
안세영의 대기록은 배드민턴의 위상을 드높인 쾌거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이 종목이 얼마나 '저평가'되어 있으며 선수들의 희생에만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괴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이는 비단 안세영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 배드민턴 선수들이 직면한 공통의 비극이다.

BWF의 행정 난맥상은 이러한 비극을 부채질한다. 랭킹 상위권 선수들은 연간 슈퍼 1000(4개), 750(6개) 대회를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며, 부상 등으로 불참 시 5,000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2026 인도 오픈에서 드러난 현장은 더욱 가관이었다. 경기장 내 대기 오염으로 선수들이 고통받고, 코트 위로 새똥이 떨어지거나 관중석에 원숭이가 출몰하는 등 국제 표준에 미달하는 환경은 외신들로부터 “환경적 재앙”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열악한 환경은 국내 기업들에게 ‘최고의 가성비’를 제공한다. 현재 한국 국가대표팀 유니폼 가슴팍을 차지한 국내 한 중소기업의 리커버리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특허 기술을 앞세운 이 중소기업 제품이 안세영의 승전보와 함께 전 세계로 송출되며 얻는 마케팅 효과는 이미 투입 비용을 수십 배 상회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 정도 노출을 테니스나 골프에서 기대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했겠지만, 배드민턴은 여전히 기업들에게 ‘저비용 고효율’의 매력적인 투자처로 남겨져 있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들이 얻는 홍보 효과를 넘어, 선수들의 환경 개선을 위한 전략적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안세영이라는 불세출의 스타를 보유한 한국 자본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현재 슈퍼 500 수준인 코리아 오픈 등을 슈퍼 750 또는 1000 등급으로 격상시키기 위해 BWF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자국에서 최고 등급의 대회가 열린다면 우리 선수들은 살인적인 원정 일정에서 오는 피로도를 줄이고, 익숙한 환경에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랭킹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

안세영이 이룩한 ‘100만 달러’ 기록이 선수 개인의 희생으로 얻은 훈장이 아닌, 배드민턴 종목 전체의 시스템 혁신과 환경 개선으로 이어지는 기폭제가 되어야 한다. 원숭이가 구경하는 코트에서 전설의 기록을 넘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여제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 명백한 방임이다.
에디터=노아민 noah@standingou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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