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는 언제쯤" 무심코 던진 말이 폭력이 됩니다[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지]

박지영 2024. 2. 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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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들었던 고리타분한 멘트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를 매일 외치고 싶은 28개월 워킹맘입니다. 그대신 소소하면서 트렌디한 '요즘 육아'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 지에 대해 기록하고자 합니다.

[파이낸셜뉴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난임병원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에게 "데리고 오지말라. 애 엄마 머리채를 잡을지도 모른다"는 경고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난임병원에는 아이를 데려오지 않는 것이 암묵적 룰인데,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보면 너무 화가 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갈렸다. "글쓴이가 너무 예민하다"는 의견과 "힘든시술을 반복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라는 의견으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몇 차례 유산을 경험하고 힘들게 아이를 얻은 나는 후자의 마음에 가까웠다.

"애는 언제쯤" 안부인사 아니라 폭력입니다

결혼을 하고 안부인사처럼 "애는 언제쯤.."이란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전에 그냥 웃으며 넘겼다면, 유산을 하고 나서는 그 소리를 들을 때 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안부인사라는걸 알았지만 왈칵 눈물이라도 쏟아지려는 걸 참느라 힘들었던 시기였다.

나의 유산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은 아무생각 없이 물었던 것일테고, 알았던 사람도 어느정도 아픔에서 회복이 되었는 지를 물어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주제를 거론하는 것 만으로도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다.

처음으로 무심코 출산계획을 묻는 것이 얼마나 폭력이 될 수 있는 지를 알게 된 셈이다. 앞으로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특히 요즘처럼 딩크족이 늘어나고 난임부부도 많은 분위기에선 더더욱 그렇다.

사진=뉴시스
난임으로 대인기피증 걸리기도

한참 임신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힘들었다. 30대 중반이 되니 임신과 출산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대화주제는 모두 그쪽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시간이 꽤 지나고, 소중한 아이가 생긴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는데 당시 유산한 지 얼마되지 않아 친구들이 단톡방에 임신 사실을 올릴 때가 가장 힘들었다. 축하를 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 '나는 이렇게 힘든데 굳이 본인의 임신 소식을 알렸어야했나'라는 섭섭함이 컸다.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보면 배려한다고 만삭 때까지도 임신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또 그 역시도 서운했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그냥 주변의 임신과 출산의 소식을 듣는 것 자체가 고통이던 시절이었다.

이는 친구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척을 만나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주변 사람들의 임산과 출산 소식을 듣지 않으려면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방법밖엔 없었다. 대인기피증에 걸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이런 증상이 심해지면 TV조차 보지 못한다. 그 전에는 몰랐는데 왜 TV에는 그렇게 육아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많고, 드라마에는 왜 이렇게 임신과 출산이란 화제가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지 TV를 트는 것조차 힘든 시기가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이런 마음을 갖게 되는 내 자신이 혐오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자기혐오는 결국 우울감으로 이어졌다.

[연합뉴스TV 캡처]

"제가 알아서 할게요..조언 필요없어요"

일부는 임신과 출산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일 처럼 걱정해주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아는 누구는 어디서 약을 지어 먹었더니 임신이 되었다더라부터 어디 병원이 좋다더라는 정보까지 사돈의 팔촌 정보까지 끌어내 쏟아내기 시작한다. 더불어 술을 끊고 운동을 해야한다와 같은 누구나 다 아는 기초적인 잔소리까지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한 마디 "마음을 편하게 먹는게 최고다, 스트레스 받지마라"를 꼭 덧붙인다.

근데 그들을 알까. 그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것을 말이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고통

유산을 한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내가 아이를 잃어보니 얼마나 네가 힘들었을 지 이제서야 알겠어. 많이 힘들었지"라는 문자를 받고 눈물이 왈칵 쏟은 기억이 난다.

난임병원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것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고통이다. 간절히 원하는데 나의 노력 만으로 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것에 얼마나 무기력해지는 말이다.

더불어 남에게는 쉬워 보이는 행복이 나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찬다. 난임병원에 오래 다녔다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예민함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사리 난임으로 인한 고통을 재단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다.

그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아이를 원하는 가정에 좋은 행운이 깃들길 조용히 기도해주면 그 것이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aber@fnnews.com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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