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ou Are Not the Father"

오열하는 여성과 반대로 신이 나 막춤을 추는 남성. 사회자 발표에 두 사람의 희비가 엇갈린다.

심심할 때 쇼츠 넘기다 요 장면 한 번쯤 본 왱구들 꽤 있을 텐데, 웃기긴 하지만 친자 검사를 예능 소재로 쓰다니 아무리 선정성 리밋 해제된 천조국이라도 이건 좀… 싶긴 한데.

유튜브 댓글로 “쇼츠에 맨날 나오는 ‘유아 낫 더 파더’ 프로그램이 도대체 뭔지 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이 장면은 사실 ‘모리(Maury)쇼’라는 미국 생방송 토크쇼에서 따온 것이다. 진행자 ‘모리 포비치’ 이름을 딴 이 프로그램은 1991년부터 무려 31 시즌이나 진행된, 단일 MC 진행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토크쇼였다.

2022년 9월 종영했지만, 지금도 미국 각 지역방송국에선 무한 재방송 중이다. 미국의 ‘나는 자연인이다’급.

이런 자극적인 토크쇼 장르를 미국에선 ‘트래쉬 TV쇼’ 또는 ‘타블로이드 토크쇼’라고 부르는데, 1990년대 초 전통적인 점잖은 토크쇼가 몰락하며 우후죽순 생겨났다.

모리쇼는 국내에도 유명한 ‘제리 스프링거 쇼’와 함께 이 분야의 쌍두마차 격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모리쇼만의 야심찬 히트 상품이 바로 1998년부터 방영한 이 친자 검사 코너였다.

요 코너는 보통 이런 식이다. 일단 힘들게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엄마가 관객의 응원을 받으며 등장해 사연을 풀어놓는다.

이후 애 아빠 후보인 남성이 야유를 받으며 등장한다. 네 애가 맞다, 아니다를 두고 양쪽이 대립하며 갈등이 고조됐을 때, 진행자 모리가 친자확인 검사봉투를 열고 우리에게 익숙한 “You Are Not the Father!” 또는 “You Are the Father!”를 외치는 거다.

당사자들에겐 잔인한 순간이지만 보는 사람으로선 쫄깃할 수밖에 없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2018년 기준 모리쇼 누적 출연자는 총 1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워낙 출연자가 많고, 또 미국이 워낙 별의별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보니 저세상급 사연도 많다.

그중에서 진행자가 직접 꼽은 에피소드는 무려 각각 아빠가 다른 쌍둥이. ‘어?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겠지만 진짜다.

게다가 이런 출연자는 두 번이나 있었다. 드물지만 한 달에 두 번 배란하는 여성이 그 기간 여러 남성과 사랑을 나눴다면 의학적으로 이럴 수도 있다고 한다.

여러 번 출연한 사람도 많았는데, 한 여성 출연자는 딸의 아빠를 찾기 위해 무려 남성 17명에게 친자 검사를 시켰지만 결국 애 아빠를 찾지 못했다.

또 자녀 6명의 아빠를 찾기 위해 남성 17명을 검사해서 3명의 부친만 찾은 사례도 있었다.

또다른 경악스러운 사례는 자녀 2명의 아빠를 찾기 위해 남성 10명을 친자 검사한 출연자였는데, 심지어 마지막에 데려온 아빠 후보 둘은 부자 사이였다.

듣기만 해도 정신이 나갈 것 같고 어질어질한데. 이렇게 선정적인 사연들, 가짜는 아니었을까? 수많은 음모론이 있지만 여태 나온 증언을 종합하면 진짜라는 게 중론.

당시 자료를 찾아보니 모리쇼에 출연할 사연을 구하는 것 자체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전성기 기준 100명이 신청하면 10명 정도가 출연했다니 말이다. 물론 제작진이 디렉션도 주고 어느 정도 양념을 치긴 했겠지만.

사연이 사연이다 보니 모리쇼 출연자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당시만 해도 친자확인 검사 자체가 비쌌다. 2002년 기사에 따르면 당시 검사 비용은 500~700달러. 환율과 화폐가치를 따지면 지금 돈으로 약 89만~148만 원 정도다.

당사자들로서는 모리쇼에서 이 비용을 대신 내주는 데다 공짜 비행기표, 호텔 숙소까지 제공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는 거다.

하지만 이런 쇼에 사고가 없을 리 없다. 쇼에선 그럴듯한 그림을 만들기 위해 친자 검사 대상인 아이도 항상 쇼에 동반 출연 시켰는데, 2015년 당시 출연 예정이던 커플과 동행한 8개월 된 아기가 방송 전날 호텔 침대에 끼어 숨졌다.

또 스튜디오 밖에서 출연자들끼리의 폭행 사건이 수차례 벌어지기도 했다.

친자확인 말고도 이 쇼에선 거짓말탐지기 코너도 유명했는데, 상대의 불륜을 의심하는 출연자 의뢰를 받아 제작진 취재와 거짓말탐지기로 진실을 가려내는 거였다.

또 한때는 트랜스젠더들을 불러와 생물학적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가려내는 꼭지도 있었다. 웬만한 렉카 유튜브 못잖다.

이 쇼는 특정 인종·계층에 빈번한 비극적인 일, 그것도 매우 사적인 일을 예능 소재로 써먹었단 점에서 말 그대로 ‘쓰레기(trash)’라고 비난받았다.

반면 미국 사회에서 쉬쉬하는 금기를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긴 하다.

의외로 진행자 모리는 원래 저널리즘을 전공해 지역 언론사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았던 정통 언론인이었지만,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섭외를 받아 이 쇼를 30년 넘게 진행했다.

참회의 뜻인지 뭔지 알 길은 없지만 이렇게 번 돈으로 본인이 사는 곳에 지역 언론을 만들어 상도 여럿 탔다고 하니, 사람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