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우리나라 경제와 주식시장의 성장을 이끈 건 누가 뭐래도 반도체 기업들이었어요. 국내 시가총액(전체 주식 가치의 합) 1위인 삼성전자와 2위 SK하이닉스가 그 주인공이었죠.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앞세운 SK하이닉스의 성장세가 엄청났어요.
인공지능(AI) 기술이 주목받으며 거대 기업들이 줄줄이 AI 데이터센터를 짓기 시작했고, 여기에 들어가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몇몇 반도체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 되어버렸어요. HBM 분야에서 뒤처졌던 삼성전자도 점점 경쟁력을 회복했지만, 여전히 SK하이닉스는 1등 HBM 기업으로 평가받아요.
당연히 국내 투자자뿐 아니라 해외 투자자들도 SK하이닉스를 주목해 왔어요. 실제로 많은 이들이 외국계 투자회사를 통해 하이닉스에 투자했죠. 그런데 사실 외국인이 개인 자격으로 특정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미국 달러 같은 외국 돈을 팔아서 원화를 사야 하고, 이 돈을 한국 계좌로 보내야 하니까요.

SK하이닉스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장의 무기’를 꺼냈어요. 하이닉스 주식을 그냥 미국에서 거래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래요. 어떤 내용인지, 오늘의 디깅에서 정리해 봤어요.
비장의 무기가 뭔데?
SK하이닉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미국 주식예탁증서(ADR·American Depositary Receipts)’ 상장을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어제(25일) 밝혔어요. ADR은 한국 주식을 미국 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미국에서 발행하는 대체 증권이에요. 한국 주식시장에 돈을 넣을 필요 없이 미국에서도 한국 주식에 투자할 수 있게 만드는 수단이죠.
말이 조금 어렵지만, ADR 활용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해요.
① SK하이닉스 주식 OOO만 주를 미국 은행에 담보로 맡긴다.
② 미국에서 ‘SK하이닉스 ADR’이라는 주식 OOO만 주를 발행한다.
③ 미국 주식시장에선 SK하이닉스 ADR을 SK하이닉스 주식처럼 사고판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SK하이닉스 ADR 1주는 언제든 SK하이닉스 1주로 바꿀 수 있다’라고 미국 법과 미국 은행의 중개를 통해 보장하기 때문이에요. 잘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미국 은행은 한국에 *상장된 SK하이닉스 주식을 실제로 보유하고 있으니까, 언제든 ADR 1주를 가져오는 사람에게 하이닉스 1주를 내어줄 수 있겠죠. 그래서 언제든 진짜 주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아는 미국 투자자들은 ADR을 주식으로 생각하고 투자하게 돼요.
ADR, 왜 하는 건데?
미국에 있지 않은 회사들이 미국에서 ADR을 발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시장의 매력’이에요.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 시장인 미국에 주식을 상장하면, 더 많은 투자자의 시선을 끌 수 있잖아요. 미국 투자자들이 달러로 쉽게 투자하니까 당연히 예전보다 더 큰 돈이 모일 가능성도 크고요. 기업 가치가 높아진 뒤에 미래 사업에 투자할 여력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순서겠죠.
SK하이닉스는 요즘 사업이 워낙 잘 되는 만큼, 언제든 대규모 투자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현금 100조 원’을 쌓아놓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요.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도 미국 주식시장 진입은 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사실 외국 기업이 미국 주식시장에 정식으로 상장하는 건 조금 복잡한 일이에요. 오랫동안 외국에서 사업을 벌인 외국 기업이 미국에서 주식을 발행할 땐 미국 정부가 당연히 깐깐히 따질 테니까요. 이미 자국 주식시장에 상장돼 주식이 거래되고 있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져요. 한국에서 잘 거래되던 주식을 하루아침에 미국으로 모두 옮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죠.
그런데 ADR을 발행하면, 이런 과정을 쉽게 건너뛸 수 있어요. 일단 ADR은 정식으로 상장하는 게 아니라 대체 증권을 발행하는 거라서 관련 절차가 비교적 간단해요. 또한 한국에 이미 상장된 주식도 미국에 또 상장할 수 있어요. 정식 경로가 아닌 일종의 ‘우회 상장’이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경쟁력 있는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ADR을 발행하는 건 세계적으로는 꽤 흔한 일이에요.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대만의 TSMC,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회사인 네덜란드의 ASML 등이 대표적 사례예요.
우리나라 기업도 미국에 ADR을 상장한 사례가 있어요. 1994년 포항제철(현 포스코홀딩스)을 시작으로 한국전력, SK텔레콤, KT, 우리금융지주, 신한지주, KB금융, LG디스플레이 등이 ADR 방식으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어요. 하지만 미국에 상장한 주식 수가 적은 데다, 큰 관심도 받지 못한 탓에 별 효과가 없었다고 해요. SK하이닉스는 국내 기업 중 22년 만에 ADR 상장에 도전하는 기업이 됐어요.

그럼 좋은 거네?
기업 입장에서 ADR은 미국 투자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적 선택이지만, 사실 투자자들의 시선은 조금 더 복합적이에요. 어떤 방식으로 ADR을 하느냐에 따라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고, 어쨌든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좋다고 보는 견해도 존재해요. 엇갈리는 두 견해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아요.
[반대] “내 지분이 줄어들잖아”
SK하이닉스의 주주들은 ADR 상장 방식이 ‘자사주 매입’이 아니라 ‘신주 발행’이라는 점을 우려해요. ADR 상장을 위해 미국 은행에 담보로 맡길 주식을 어디서 구할지의 문제예요. 미국으로 보낼 주식을 구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거든요.
첫 번째(자사주 매입)는 SK하이닉스가 담보에 필요한 주식을 새로 사들여서 확보한 다음 미국으로 보내는 방법이에요. 자사주 매입은 SK하이닉스가 투자자들의 주식을 사들이는 과정이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되고, 새로 생겨나는 주식도 없어서 투자자들이 선호해요.
두 번째 방식(신주 발행)은 SK하이닉스가 담보에 쓸 주식을 추가로 발행하는 거예요. 신주 발행은 이전에 없던 주식을 새로 찍어내는 거라서 기존 주주들에게 영향을 미쳐요. 회사 가치는 그대로인데, 세상에 존재하는 주식 수가 늘어나게 되죠. 그만큼 내가 가진 주식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어요. 전체 주식에서 내가 가진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인 ‘지분율’이 자연스럽게 낮아지니까요.
[찬성] “미국 가는 게 더 중요해”
SK하이닉스가 신주 발행을 통해 미국 시장에서 ADR을 발행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주주들에게 이익이 될 거라는 분석 또한 존재해요. 단기적으로는 지분율이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나겠지만, 결국엔 미국이라는 세계 1위 주식시장 진출로 더 큰 투자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시각이에요. 1997년 ADR을 통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TSMC를 보면, 미국에서 거래된 덕에 세계 반도체 업계가 호황을 맞았을 때 투자자들의 돈이 엄청나게 몰렸었다는 거예요.

일반적으로 미국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기업들이 한국에서 거래되는 기업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오랫동안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다투는 기업이었지만, 미국의 반도체 기업이나 TSMC와 비교하면 박한 평가를 받아 왔어요. 양국 시장에 몰리는 자본의 규모가 다르기도 하고, ¹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영향도 있었죠. 그래서 SK하이닉스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 몸값을 제대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거라고 기대하는 이들도 꽤 많아요.
¹코리아 디스카운트: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의 가치가 다른 주요국 시장에 비해 낮게 평가되는 현상.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지만, 분단국가라는 지정학적 위험과 주요국에 비해 낮은 시장 신뢰도, 일반 주주보다 대주주(재벌)를 중시하는 경영 문화 등이 대표적 원인으로 꼽힘.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의 1등 공신으로 꼽힐 만한 SK하이닉스. 곧 미국 시장에도 이름을 올릴 것 같은데요. 과연 수많은 개인투자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뉴욕증권거래소에서도 당당히 인기 주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될지 지켜봐야겠어요.

#지식토스트_모닝브리핑, #지식토스트
Copyright © 매경AX.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