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득실대는 ‘쓰레기 집’…수년간 방치된 이유는?

제주시 한 주택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빨간 지붕만 빼꼼히 모습을 드러낸 1층짜리 집이 눈에 띕니다. 망가진 가구와 전자제품, 폐타이어와 갖가지 생활 쓰레기가 마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쓰레기가 주변 도로까지 넘치면서 최근에는 집 주변으로 2m 높이 가림막이 세워졌습니다. 이 동네에서 15년째 살고 있다는 주민은 "이런 광경이 펼쳐진 지도 어느새 5년째"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 '바퀴벌레 소굴' 된 주택…이웃 주민은 수년째 고통
빨간 지붕 집이 처음부터 '쓰레기 집'이었던 건 아닙니다. 제주시와 일대 주민들에 따르면 이 집에는 10년 전쯤 50대 남성 A 씨가 세 들어 살기 시작했습니다. A 씨는 이곳에 고물상 간판을 달고 무허가로 폐기물 처리업을 해 왔는데, 이 과정에서 집주인과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2020년 소유주와 법정 분쟁 끝에 A 씨는 집을 비우게 됐습니다. 문제는 집에 쌓아둔 폐기물을 그대로 남겨둔 채 떠나버렸다는 겁니다. 소유주 역시 이를 치우지 않았고, 담장 안으로 쓰레기 무단 투기까지 이어지면서 이 집은 5년 새 거대한 '쓰레기 산'이 됐습니다.

남겨진 쓰레기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이웃들의 몫이 됐습니다. 주민들은 "일대가 바퀴벌레 소굴이 됐다"며 들끓는 벌레와 악취로 고통을 호소합니다.
주민 B 씨는 "(우리 집) 현관문에선 가장 먼저 바퀴벌레가 반겨주고, 집으로 들어가면 거실 벽을 기어다니는 바퀴벌레도 매일 목격한다"면서 "두 달 전 집 전체를 리모델링하고 방역도 철저히 하고 있지만 소용이 없다. 앞으로 자녀도 낳고 가족들과 같이 살아야 하는데, 집 앞 폐가로 인해 어떤 벌레들이 집에 들어올지 생각하면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 행정당국도 치우지 못하는 쓰레기…"사유지라서"
주민들은 행정당국에 '쓰레기 집' 해결을 잇따라 요청했습니다. 주민 C 씨는 "주민센터와 시청, 소방까지 온 가족이 찾아가지 않은 곳이 없다"며 "행정에 도움을 요청해도 '(해당 집이) 개인 소유라서 관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대답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제주시와 관할 주민센터가 이 같은 주민 민원에 아무 조치도 안 한 것은 아닙니다. 제주시는 2021년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소유자나 점유자 등에게 방치된 생활폐기물을 치우도록 지자체장이 강제하는 '청결 유지 명령'을 검토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관련 부서는 현장을 확인하고서 "고물상 영업을 위해 필요한 물건을 보관하는 중으로, '청결 유지 명령'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후 전 세입자 A 씨가 폐기물을 도로변까지 내놓으면서 도로법 위반으로 과태료가 부과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폐기물이 지붕 높이만큼 쌓여 벌레가 득실대도 쓰레기는 치워지지 않았습니다.
주민 안전과 환경을 위협하는 경우, 지자체가 직접 예산을 들여 폐기물을 치우는 행정대집행을 하고 구상금을 청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행정당국은 이번 사례의 경우 소유주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제주시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사유지 내에 있는 폐기물은 사유재산으로 간주돼, 행정에서 절차 없이 강제로 처리할 수 없다"며 "행위자와 토지·주택 소유자 책임이 원칙"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제주시, 뒤늦은 형사 고발…남은 행정 절차도 '하세월'
"사유지라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던 행정당국이 강경 대응으로 돌아선 건 올해 3월 말입니다. 연초 제주시장이 지역을 돌며 주민 의견을 듣는 자리에서 민원이 접수되자, 뒤늦게 전 세입자 A 씨를 고발 조치한 것입니다.
제주시 수사 의뢰를 받은 제주도자치경찰단은 전 세입자 A 씨를 폐기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습니다. 알고 보니 세 들어 살던 곳에서 허가 없이 폐기물 처리업을 해왔던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습니다.
제주시 관계자는 "수사 결과에 따라 A 씨에게 '폐기물 처리 명령' 행정 처분이 내려질 것이라고 사전 통지하고, 이의 신청 기간을 줘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현재 A 씨에게 우편물 전달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공시 송달을 통해 조치 명령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A 씨가 행정 처분을 따르지 않으면 추가 고발 조치하고, 토지 소유주에게 해당 폐기물을 처리토록 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사전 통지와 이의 제기를 거쳐 비로소 행정 처분 절차가 이뤄져도, 최소 90일이 걸립니다. 결국 소유주에게 책임을 지우려 해도, 기다려야 할 행정 절차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사유지라는 이유로 행정이 주민 안전과 환경을 위협하는 행위를 묵인한 사이, 벌레와 악취에 시달리는 주민들은 언제까지 고통이 이어질지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드론 촬영 박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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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소영 기자 (missionali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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