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가 공공기관 노동이사 95%가 남성, 평균연령 52.2세

전혜원 기자 2024. 10. 25. 08:2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가 공공기관 현직 노동이사 60명에 대한 자료를 입수했다. 연령과 성비가 치우쳐 있고, 활동 지원 기준도 제각각이었다. ‘한국형 노동이사제’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등이 2021년 11월15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에 찬성했다. 노동이사제란 노동자 대표가 기업 이사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국민의힘은 대체로 이 제도에 반대 입장이었는데, 국민의힘 소속 대권주자인 윤석열이 노동이사제에 찬성하고 나서면서 문재인 정부 막바지인 2022년 1월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2022년 8월부터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반드시 노동이사를 선임하게 되어 있다. 2016년 서울시 투자·출연 공공기관들이 도입한 이래 경기도·광주광역시 등 일부 지방정부 공공기관에 도입되었던 노동이사제가 ‘전국화’한 순간이었다.

도입 2년이 지난 지금, 실제로 어떤 사람들이 국가 공공기관 노동이사로 일하고 있을까? 〈시사IN〉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각 공공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입수했다. 노동이사제 도입이 의무화된 국가 공공기관 87곳 중 현직 노동이사 선임 자료를 제출한 58곳과 의무화 대상이 아니지만 노동이사를 선임한 기타 공공기관 2곳을 포함해 60곳을 분석했다(면직자 제외). 대한민국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 노동이사의 ‘얼굴’을 알 수 있는 첫 자료다.

분석 결과 노동이사의 평균연령은 52.2세로 나타났다. 이는 노동이사를 누가 추천하느냐와 관련이 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법에 따르면 과반수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노조가 노동이사를 추천하게 되어 있다. 이때 아무래도 해당 기관 업무와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조합원들과도 많이 교류했던, 오랜 노동조합 경험이 있는 분들이 추천을 받는 경향이 반영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전KDN 노동이사로 일하는 서충기 ‘국가 공공기관 노동이사협의회’ 사무총장은 “이사 업무를 해보니 어느 정도 연령대가 있는 게 유리한 점도 있다. 노동이사란 게 직원이면서 비상임이사로 활동하는 건데, 고참이면 의사결정을 하거나 중재·조율을 할 때 유리한 반면 젊은 이사들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각종 직장 문화 이해에 대한 차이 등으로 인해 공공부문에서 세대 간 갈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노동이사들이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을 할 필요도 있다”라고 조성주 전 서울시 노동협력관은 말했다. 특히 일부 기관의 노동이사는 60세(1곳), 59세(3곳), 58세(5곳)처럼 정년에 가까운 나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 공기업에서는 정년을 2년여 앞두고 노동이사에 선임된 뒤 임기 2년을 채 마치지 않고 이직한 사례도 있다. 노동이사는 2년 임기에 1년을 더해 최장 3년간 할 수 있다.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정년이 다 되어서 노동이사로 가면 그 경험을 다시 (노동조합) 현장 활동에 적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성별에서도 불균형이 확인됐다. 국가 공공기관 노동이사 60명 중 95%가 남성이고 여성 노동이사는 3명(한국석유관리원·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한국고용정보원)에 불과했다. 물론 노동이사뿐 아니라 공공기관 직원 전체적으로 남성이 더 많다. 2022년 기준 ‘공공부문 성별근로 공시정보’를 보면, 국가 공공기관 361곳 노동자 중 여성 비율은 37.9%다. 노동이사의 성비는 이에 비해서도 더 극단적이다. ‘공공기관 1호 여성 노동이사’로 선임된 김지숙 한국석유관리원 노동이사는 “기본적으로 노조 활동을 하고 노동이사로 오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연령대 있는 남성들이 많은 구조인 듯하다”라고 말했다. 김지숙 노동이사는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투표로 뽑힌 경우다.

평균연령 52.2세, 95%가 남성

박태주 선임연구위원은 “제도적으로 노동이사를 한 명씩 선임하게 되어 있어서 할당제 등으로 성비를 맞추기가 쉽지는 않다. 노동조합이 노동이사를 복수로 추천하는 과정에서 성비를 맞추고, 주무부처 장관이나 기관장이 복수의 후보 중에서 노동이사를 위촉할 때 성비를 고려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노동이사 선출에 관여하는 노동조합 자체를 남성들이 주도하고 있다. (노동이사가 아직 없는) 국민연금공단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처럼 여성이 더 많은 사업장도 노조위원장은 남성이다. 노동조합 대표자들, 나아가 공공부문 경영진까지 성별 균형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어야 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노동이사제와 관련해 안철수 당시 대선후보는 토론회에서 “민주노총에 기업들이 지배당해 치명적인 경제 손실을 끼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국가 공공기관 노동이사 60명 중 소속 상급단체가 한국노총이었던 노동이사는 29명(48.3%), 민주노총은 13명(21.7%)이다. 노동조합 소속이었지만 상급단체가 없었거나, 아예 노동이사가 노조 출신이 아닌 경우는 18명(30%)이다. 공공기관에 한국노총 노조가 많이 조직된 결과로 보인다.

실제 노동이사를 경험해본 이들의 후기는 어떨까. 서충기 국가공공기관 노동이사협의회 사무총장은 “이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라고 자평했다. “노동이사들이 회사에서 뭐만 하면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니까, 현장 직원들 생각을 전하면서 ‘이렇게 하는 게 회사 입장에서도 더 낫지 않겠느냐’고 의견을 내는 것이다. 상임이사든 비상임이사든 의외로 세부 사정을 잘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비상임이사는 ‘거수기’라고 비판받지만 그분들도 회사의 결정과 관련해 뭔가를 하고 싶어한다. 모르니까 못할 뿐이다. 그럴 때 필요한 보고서나 궁금한 정보를 누구에게 얘기하면 되는지 등을 노동이사가 공유해준다. 이전에는 형식적으로 의결 사항을 처리했다면 이제는 노동이사가 좀 더 실질적인 발언을 하고, 그 한마디를 들은 다른 이사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변화가 있다.”

노동조합 탈퇴한 노동자 대표?

다만 노동이사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지원은 기관마다 제각각이었다. 자료를 제출한 60곳 중에서 46곳(76.7%)이 노동이사에게 ‘교육훈련 지원’을 하고 있다고 답한 반면, 원활한 노동이사 활동을 위해 필요한 ‘보직변경 등 직무 재배치(21.7%)’ ‘근무평정 및 근태관리 고려(15%)’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노동시간 인정(13.3%)’을 하고 있다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주관식, 중복응답 포함). ‘활동비·수당 지급’은 21.7%, ‘업무공간·사무실 제공’은 13.3%가 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 공공기관은 노동이사 활동 지원 사항에 ‘없음’이라고 답했고, 두 곳은 아예 기입하지 않았다. 통일된 기준이 없는 것이다.

“잘해주고 못해주고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이사의 핵심 역할은 경영진 감시다. 그런데 노동시간 인정이나 활동비, 직무 배치나 평가와 관련해 사용자의 시혜에 종속되어버리면 독립성이 위협받는다. 출장 가려면 기관장 결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노동이사로서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겠나?” 박태주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그는 “활동비가 필요하다면 원칙적으로 사용자가 아니라 노동조합으로부터 받는 게 떳떳하고 당당하다. 노동이사는 노동조합으로부터가 아니라 사용자로부터 독립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현재 기획재정부의 지침상 공공기관 노동이사는 노동조합을 탈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노동이사제를 먼저 도입한 독일 등 유럽에서 노동조합 탈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경우는 없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에서는 ‘board-level employee representatives(종업원 대표 이사)’라는 말을 쓴다. 이 제도의 취지 자체가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참여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건데, 이걸 ‘이사’라고 부르다 보니 ‘노동이사가 사용자냐, 노동자냐’ 같은 소모적 논쟁에 빠져버렸다”라고 말했다. “한국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4호는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 2016년 서울시가 처음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때는 노동이사가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중앙정부가 그 노조를 ‘노조 아님’ 통보까지 할 수 있었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가 법외(法外) 노조가 되는 불상사를 막으려고 탈퇴를 의무화했는데, ‘노조 아님’ 통보 제도가 사라진 지금까지도 기재부가 국가 공공기관에 대해 보수적 해석을 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 종로지사 모습. ⓒ연합뉴스

물론 개별 기업을 넘어선 산업별 노동조합이 일반화되어 있는 독일 등 유럽 나라와 각 기업별로 노동조합이 조직된 한국의 노동이사제 운영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그러나 지금처럼 노동이사와 노동조합의 연결고리를 끊어놓으면 노동이사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8월 노동이사제 시행 2주 만에 공기업·준정부기관 130곳 중 40여 곳을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해 의무 도입 대상을 크게 축소했다. 노동이사를 선임해야 하는 공공기관 87곳 가운데에서도 국민건강보험공단·근로복지공단·국민연금공단 등 핵심 기관들이 여전히 법 개정 미비 등을 이유로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다. 김태선 의원은 “윤석열 정부는 노동이사제를 시행은 했지만 제도의 성숙이나 안착에는 무관심하다. 노동조합 탈퇴 의무화 같은 과도한 지침을 시정하고, 50대 남성으로 편중되어 있는 노동이사의 인적 구성을 다양화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직무 재배치나 타임오프 제공을 통해 노동이사의 활동 시간을 보장하려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