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이상 끌어온 국내 전선업계 1, 2위 간 특허 분쟁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LS전선이 대한전선을 상대로 승소하며 사실상 승기를 잡은 모습이다.
다만 양사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대한전선의 모회사인 호반그룹이 최근 LS그룹의 지주사 ㈜LS의 지분을 대거 사들이는 등 계열사 신경전을 넘어 그룹 간 전면 대결로 갈등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5년 6개월 끈 '특허침해 소송'…1·2심 모두 LS 승소
14일 특허법원 제24부(부장판사 우성엽)는 LS전선이 대한전선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손해배상 등의 청구 소송 2심 재판에서 원고 LS전선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를 통해 지난 1심 판결을 유지하면서 대한전선이 배상해야 할 금액을 기존 4억9623만원에서 3배 가량 상승한 15억원으로 올렸다.
이번 소송은 LS전선이 자사 하청업체에서 버스덕트용 조인트 키트 외주 제작을 맡았던 직원이 2011년 대한전선으로 이직한 후 대한전선이 유사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기술 유출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버스덕트는 건축물에 전기 에너지를 전달하는 배전 수단으로, 조인트 키트는 개별 버스덕트를 연결해 전류 흐름을 유지하는 부품이다.
이후 LS전선이 2019년 8월 대한전선을 상대로 특허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2022년 9월 1심 판결이 나왔다. 당시 재판부는 "대한전선의 제품 판매는 LS전선의 특허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보유 중인 해당 제품을 폐기하라"고 판결했다. 더불어 LS전선이 청구한 피해 금액 40억원 중 12%에 해당하는 4억9623만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다만 대한전선은 특허를 침해한 적이 전혀 없다고 무죄를 주장하며 불복했고, LS전선은 배상액이 적다는 이유로 쌍방 항소했다.
특히 당시 대한전선은 "특허는 관련 사이트(키프리스)를 통해 공중에 공개되는 것으로 협력업체 직원을 통해 해당 기술을 취득할 이유가 없다"며 "자사 부스덕트용 조인트 키트가 너트의 파지 여부에 따른 볼트 체결 방법, 도체와 절연판 접촉 여부 등 LS전선 제품과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있고 미국, 일본 등의 선행발명을 참고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1심에 이어 2심 재판부 역시 해당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에 대해 LS전선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이번 판결은 LS전선의 기술력과 권리를 인정한 중요한 결정"이라며 "앞으로도 기술 탈취 및 침해 행위에 대해 단호하고 엄중하게 대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갈등 골 깊어진 'K-전선'…해저케이블·기아 정전 소송도 남아
1심에 이어 2심까지 승소하며 LS전선은 사실상 특허 분쟁에선 승기를 잡았다. 다만 대한전선이 상고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해저케이블 유출 의혹, 기아 화성 공장 정전 사태 등을 두고 두 기업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대한전선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특허법의 과제 해결 원리와 작용 효과의 동일성 등에 대한 판단 및 손해 배상액의 산정 등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며 "향후 판결문을 면밀하게 검토 후 상고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관련 제품은 1심 판결 직후 이미 폐기했기 때문에 추가로 폐기할 것은 없다"며 "독자 기술로 설계를 변경한 조인트 키트를 수년 전부터 사용해 왔기 때문에 이번 판결의 선고 결과가 버스덕트 영업 및 사업에 주는 영향은 일절 없다"고 강조했다.
특허 분쟁뿐 아니라 LS전선과 대한전선은 해저케이블 기술 유출 의혹을 두고도 갈등 중이다.
앞서 LS전선은 2007년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프랑스 넥상스, 스위스 ABB에 이어 전 세계에서 4번째로 초고압 해저케이블을 개발하고 2009년 국내 최초의 해저케이블 전용 공장을 준공했다.
이후 진도~제주 해저케이블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카타르, 베네수엘라 등 해외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다. 또 최근에는 인공지능(AI) 훈풍에 북미 시장에서도 잇달아 수주 계약을 체결하며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대한전선은 2022년 충남 당진에 해저케이블 1공장을 착공하며 본격적으로 해저케이블 사업을 시작했다. 1공장은 올 상반기 준공을 앞두고 있고, 2공장은 2027년 가동이 목표다.
이 가운데 1공장은 기술 유출 의혹으로 수사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앞서 대한전선은 1공장의 설계를 가운종합건축사무소에 맡겼는데, 해당 업체는 2008~2023년 LS전선의 해저케이블 공장 1~4동의 건축 설계를 전담했다.
이 과정에서 LS전선은 해당 업체가 대한전선에 자사 해저케이블 제조 설비 도면과 레이아웃 등 핵심 자료를 넘겼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에 경찰은 지난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대한전선과 가운종합건축사무소 관계자 등을 형사 입건하고, 같은해 11월까지 대한전선을 상대로 총 세 차례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현재 수사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양사는 지난 2018년 기아 화성공장 정전사건으로도 법정 다툼을 하고 있다. 당시 약 5일간의 정전으로 차량 생산이 중단되면서 발생한 182억원의 손해에 대해 기아가 송전선로 설치 과정에서 발생한 결함과 과실을 문제 삼아 LS전선과 시공사, 대한전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1,2심 재판부는 LS전선의 단독 책임을 인정했으나, LS전선은 다른 피고들과의 공동 책임을 주장하며 지난 1월 2일 상고장을 접수한 상태다.
호반, ㈜LS 지분 매입…전선 갈등 그룹 전면전 치닫나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대한전선의 모기업인 호반그룹이 LS그룹의 지주사인 ㈜LS의 지분을 대거 매입하며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특히 업계에선 계열사간 갈등이 그룹 전면전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호반그룹은 최근 3% 미만의 ㈜LS의 지분을 사들였다. 정확한 매입시기 및 규모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분율은 2%대인 것으로 파악된다.
호반은 지분 매입을 두고 투자 목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호반그룹 관계자는 "호반그룹은 이전에도 풍부한 자금여력과 유동성을 기반으로 단기 투자했던 사례들이 있었다"며 "이번 건 역시 대한전선을 인수, 운영하면서 전선 업계의 미래 성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 미래를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경쟁사의 모회사 지분 매입을 단순 투자 목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대한전선과 LS전선이 법적공방을 이어가는 상황 속에서 향후 대주주 자격으로 경영에 개입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상법상 호반이 ㈜LS의 지분을 3% 이상 확보하게 될 경우 △회계장부열람권 △임시주주총회소집권 △주주제안권 △집중투표청구권 등의 권한을 갖고 경영 활동에 개입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호반이 계열사간 법적공방 속에서 경쟁 그룹의 지주사인 ㈜LS의 지분을 매입한 것은 이례적으로 보인다"며 "향후 추가적으로 ㈜LS의 지분 매입에 나선다면 본격적으로 3세 경영에 돌입한 LS그룹 후계 구도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권용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