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혼 육아를 하는 할머니들은 흔히 "내 새끼 새끼니까"라는 말로 고단함을 견딥니다.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시려도 손주가 웃으면 다 잊힌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 수고가 당연한 것이 되고, 고마움이 사라진 자리에 서운함이 들어설 때 할머니의 마음은 소리 없이 무너집니다.
대전 유성구에 사는 이복례 씨는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남편과 함께 30년 동안 대전 역전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며 외아들 한 명을 키웠습니다. 남편은 6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고, 복례 씨는 가게를 정리한 뒤 혼자 조용히 살고 있었습니다.
반찬가게 일은 새벽 다섯 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콩나물을 다듬고 나물을 무치고 김치를 담그다 보면 하루가 금세 저물었습니다. 손끝은 늘 고춧가루에 쓰라렸고, 허리는 저녁마다 뻐근했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들 성민이를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아들 성민이는 세종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했고, 며느리 유나는 연구소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였습니다. 며느리의 친정은 서울 강남에서 병원을 하는 넉넉한 집안이었습니다. 상견례 날 사돈어른은 반찬가게를 했다는 복례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잠깐 표정이 굳기도 했습니다.

5년 전 봄, 손녀 지유가 두 돌을 막 넘겼을 때 아들이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엄마, 어린이집에서 자꾸 아파서 돌아와요. 유나가 회사를 그만둬야 할 판이에요. 엄마가 와서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복례 씨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대전 집은 그대로 두고 옷가지 몇 벌만 챙겨 세종 아들 집 작은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월요일 새벽에 올라가 금요일 밤에 내려오는 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아침이면 지유를 씻기고 밥을 먹여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습니다. 오후에는 데리고 와서 간식을 챙기고, 놀이터에서 같이 놀고, 저녁밥까지 지어 놓고 아들 내외를 기다렸습니다. 지유가 열이 나는 밤이면 복례 씨가 밤새 물수건을 갈았습니다.
며느리는 매달 50만 원을 "어머님 수고비"라며 봉투에 넣어 주었습니다. 복례 씨는 그 돈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아들 내외의 성의라 여기고 받아 두었습니다.
주말에 대전 집으로 내려가면 복례 씨는 녹초가 되어 하루 종일 누워 지냈습니다. 손목에는 파스를 붙이고 허리에는 찜질팩을 올렸습니다. 친구들이 "그 나이에 무슨 고생이냐"고 혀를 찼지만, 복례 씨는 "손주 크는 거 보는 재미에 산다"며 웃어넘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며느리의 말투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어머님, 반찬이 너무 짜요." "어머님, 지유한테 사탕 주지 마시라고 했잖아요." "어머님, 그 옷은 촌스러워서 안 입혀요." 복례 씨는 그때마다 "그래, 알았다" 하고 넘어갔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서울 사돈댁이 오는 날이면 집 안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사돈어른은 커다란 장난감과 백화점 옷을 한 아름 안고 왔고, 며느리는 그날만큼은 들뜬 얼굴로 친정 부모를 맞았습니다. 지유는 사돈 내외를 "서울 할머니"라 부르며 품에 안겼습니다.
그런 날이면 복례 씨는 부엌에서 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사돈어른은 식탁에 앉아 "사부인 덕분에 우리 유나가 회사를 다니네요" 하고 웃었지만, 그 말은 어쩐지 고마움보다는 일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래도 복례 씨는 지유를 보며 버텼습니다. 지유는 할머니가 끓여 주는 된장국을 제일 좋아했고, 잠들 때는 꼭 할머니 팔을 베고 누웠습니다. "할머니, 나 학교 가면 할머니가 입학식에 꼭 와야 해." 지유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복례 씨는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5년이 흘렀습니다. 올봄, 지유가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복례 씨는 대전 시장에서 손녀에게 줄 연필 세트와 예쁜 필통을 미리 사 두었습니다. 입학식 날 입을 옷도 장롱에서 꺼내 다림질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입학식 전날 밤, 며느리가 복례 씨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며느리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말을 꺼냈습니다.
"어머님, 내일 입학식은 저희 엄마 아빠가 오시기로 했어요. 어머님은 집에 계시면서 점심 준비 좀 해 주세요."
복례 씨는 영문을 몰라 되물었습니다. "지유가 할머니도 꼭 오라고 했는데, 나도 같이 가면 안 되겠니?"
며느리는 난처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습니다. "어머님,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는 할머니가 키운 애라고 하면 좀 그렇게 봐요. 사진에 어머님이 나오시면 친구 엄마들이 다 알게 되잖아요. 이해해 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복례 씨의 손이 떨렸습니다. 5년 동안 지유를 키운 사람은 자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며느리에게는 남에게 숨기고 싶은 흠이었던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아들 내외와 사돈 내외는 지유의 손을 잡고 학교로 갔습니다. 복례 씨는 혼자 집에 남아 손녀가 좋아하는 잡채와 불고기를 만들었습니다. 점심 무렵 며느리의 휴대전화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습니다. 교문 앞에서 사돈 내외와 아들 내외가 지유를 가운데 두고 활짝 웃는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아래에는 '온 가족이 함께한 입학식'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복례 씨는 그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휴대전화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작은방으로 들어가 5년 동안 쓰던 옷가지와 이불을 하나하나 개어 가방에 담았습니다. 식탁 위에는 차려 둔 점심상과 함께 짧은 쪽지 한 장을 남겼습니다.
[지유야, 입학 축하한다. 할머니는 대전 집에 간다. 성민아, 이제 지유는 사돈댁에 부탁해라.]

그날 저녁, 아들의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엄마, 갑자기 왜 그러세요. 내일부터 지유 하교는 누가 해요?" 복례 씨는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성민아, 엄마는 5년 동안 너희 집 가족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보니 나는 사진에 나오면 안 되는 사람이더구나. 사진에 나올 수 없는 사람이 너희 집 살림을 맡을 이유는 없지 않겠니."
아들은 한참 말이 없다가 "유나가 그런 말을 했어요?" 하고 되물었습니다. 아들은 그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밤 아들은 아내와 크게 다퉜다고 했습니다. 며느리는 "요즘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며 끝까지 자기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버텼습니다. 복례 씨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도 다시 세종으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5년 만에 처음으로 대전 집 안방에서 늦잠을 잤습니다.
며느리는 친정어머니에게 하교를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사돈어른은 2주 만에 손을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세종까지 오가는 길도 멀었고,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었습니다. 사돈어른은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부인이 이걸 어떻게 5년을 하셨니."

한 달쯤 지난 주말, 아들 내외가 지유를 데리고 대전 집을 찾아왔습니다. 며느리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고개를 숙였습니다. "어머님, 제가 철없이 큰 상처를 드렸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복례 씨는 며느리를 앉히고 장롱에서 통장 하나를 꺼냈습니다. 5년 동안 매달 받은 수고비 50만 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 둔 지유 이름의 통장이었습니다.
"이 돈은 지유 대학 갈 때 쓰라고 모아 둔 거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다시 너희 집에 들어가 살지 않겠다. 일주일에 두 번, 지유가 보고 싶을 때 내가 찾아가마. 그날은 손님으로 대접해 다오. 나도 이제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
며느리는 통장을 받아 든 채 눈물을 쏟았고, 아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지유만이 할머니 품에 안겨 "할머니, 왜 안 와? 보고 싶었어" 하고 칭얼거렸습니다.

그날 저녁, 복례 씨는 아들네 식구와 함께 동네 단골집에서 두부두루치기를 먹었습니다. 매콤한 양념에 졸인 두부를 칼국수 사리에 비벼 먹는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아들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엄마,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복례 씨는 웃으며 손녀의 입에 두부 한 조각을 넣어 주었습니다.
며칠 뒤 대전 집으로 지유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할머니 사랑해요. 입학식에 할머니 없어서 슬펐어요. 운동회에는 꼭 와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복례 씨는 그 편지를 냉장고 문에 붙여 두고 볼 때마다 웃었습니다.
고전 소설 『박씨전』 속 박씨 부인은 못생긴 얼굴 때문에 남편과 시댁에게 박대를 받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집안을 지키고 끝내 그 진가를 인정받습니다. 집안을 떠받치는 사람의 수고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쉽게 잊히고, 때로는 감추고 싶은 것으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자식을 돕는 일은 부모의 기쁨이지만, 그 도움이 존중받지 못할 때는 멈출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내 수고를 스스로 귀하게 여길 때 자식도 그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손주를 돌보는 일도, 내 삶을 돌보는 일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올가을 복례 씨는 복지관 친구들과 대청호 오백리길을 걸었습니다. 호숫가를 따라 단풍이 붉게 번졌고, 잔잔한 물 위로 가을 햇살이 반짝였습니다. 복례 씨는 오랜만에 가벼운 걸음으로 호수를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출처 : '박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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