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화학 업계 위기 /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공장 가동률을 극한으로 낮추고 최대한 버티고 있지만, 현재 상황이라면 이르면 3월 말부터 셧다운이 시작됩니다. 남은 기업들도 4월 중순이 마지노선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한국 석유화학 업계가 생존 위기에 몰렸다. 이곳을 통해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는 하루 170만 배럴에 달한다.
석화업계가 사용하는 나프타의 절반은 수입에 의존하며, 그 중 54%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그러나 2주 넘게 공급이 끊기면서 업계 전체가 연쇄 셧다운 공포에 떨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여천NCC를 시작으로 롯데케미칼, LG화학 등 주요 석화업체들은 이미 고객사에 ‘불가항력’ 가능성을 통보했다. 이는 전쟁 등 통제 불가능한 외부 요인으로 계약 이행 책임을 면제받겠다는 의미다.
한 석화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업체가 고객사에 불가항력을 선언했는데 조만간 현실화할 수 있다”며 “에틸렌 공급이 중단될 확률이 높다”고 경고했다.
비축량 2주 소진 임박… 가동률 10% 낮춰 시간벌기

호르무즈 해협 / 출처 : 연합뉴스
석화업계가 통상적으로 비축하는 나프타는 약 2주치에 불과하다. 과거 한 달치를 보유했지만, 유가 급등락을 겪으며 재고자산 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소 수준으로 운영해온 결과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지 보름이 지난 현재, 일부 업체는 이미 한계치에 도달했다.
업계는 셧다운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가동률을 극한까지 낮췄다. 기존 65~75% 수준이던 가동률을 10%포인트 낮춰 55~65% 수준으로 조정했다. 생산량을 줄여 원료 소진 속도를 늦추는 ‘버티기 전략’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시간을 조금 벌 뿐이다. 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전 중동에서 한국으로 오는 수송선 일정을 감안하면 일부 기업은 3월 말, 남은 기업도 4월 중순이 마지노선”이라고 설명했다.
4월 중순까지 버틸 수 있는 기업은 정유사를 계열사로 둔 일부 대기업뿐이다.
국내 나프타 사용량의 약 절반은 수입에 의존하며, 전체 나프타 사용량의 54%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나머지 약 50%는 국내 정유사에서 공급받는데 원유 반입 자체가 막혀 국내 조달도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에틸렌 쇼크, 조선소·플라스틱까지 도미노 위기

제조업 / 출처 : 연합뉴스
석화업계의 셧다운은 단순히 한 업종의 문제가 아니다.
나프타를 분해해 만드는 에틸렌은 ‘산업의 쌀’로 불리며, 조선·플라스틱·자동차 등 제조업 전반의 필수 소재다. 에틸렌 공급이 중단되면 한국 제조업 전체에 공급망 쇼크가 발생한다.
특히 조선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에틸렌은 선박 철판 가공·절단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데, 한국조선해양플랜트산업협회는 이미 정부에 절단용 에틸렌 물량 확보 지원을 요청했다.
일부 조선업체는 기존 거래처 외 업체에도 접촉해 에틸렌 공급 가능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 플라스틱 업계 역시 공급 중단 위기 상황에 처하며 물량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은 중동에서 원유의 70.7%를 수입하며,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아시아 3위(하루 170만 배럴)에 달한다. 중국(540만 배럴), 인도(210만 배럴)에 이어 일본(160만 배럴)보다도 많은 규모다.
정부 비축분도 ‘불확실’… “숨만 붙어있는 상태 될 것”

제조업 / 출처 : 연합뉴스
석화업계가 마지막으로 기대는 것은 정부 비축분이다. 정부는 7개월분의 원유를 비축하고 있지만, 이 중 석화업계로 얼마나 배분될지는 미지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 비축량 중 얼마나 석화업계로 올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며 불확실성을 토로했다.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공장 가동 중단이다. 셧다운이 발생하면 추후 재가동에 막대한 비용이 들고, 폭발 등 안전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한 관계자는 “조금만 이대로 가면 석화업계는 정상적인 생산은 못하고 숨만 붙어있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설상가상으로 나프타 가격은 급등했지만, 글로벌 수요 부진으로 제품 가격에 원가를 전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또한 중국·일본 등 아시아 경쟁국들도 동시에 대체 물량을 찾고 있어 단발성 거래만 가능한 실정이다.
업계는 “중동 불확실성으로 장기 계약이 불가능해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며 “미-이란 전쟁 종식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