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브랜드가 트렌드를 만드는 방법

영국 출신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도전으로 내년을 맞이한다. 

영국 패션과 영국스러움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자부심과 공감성 수치가 뒤섞인 재밌는 관계다. 패션인에게 불리한 인프라와 브렉시트가 불러온 비참한 인플레이션, 신자유주의와 식민 지배에 기반을 둔 국가적 유산에도 불구하고 영국 출신 디자이너들은 영국인답게 이 악물고 미소를 지으며 묵묵히 훌륭한 컬렉션을 만들고 있다.

이 애증의 관계에 암울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영국 패션계에서 디자이너들은 영국스러움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다. 영국인의 자부심은 오랫동안 영국 패션의 일부이자 필수 요소였지만 이런 식으로 쓰인 적은 없다. 영국에 대한 경의는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와 그의 야단스러운 펑크 추종자처럼 감사와 비평을 겸하는 이중적인 형태를 띄어 왔고, 21세기에는 웨일즈 보너(Wales Bonner)나 비앙카 손더스(Bianca Saunders)가 그랬던 것처럼 식민 시대가 남긴 디아스포라가 쌓아 온 부(富)를 강조하는 식의 학문적인 접근 방식이 대표적이었다. 우리가 최근에 목격한 것은 영국적인 삶에 대해 다양하고 민주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진정한 자부심이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필요했던 균형 있는 해석이 담겼다. 버버리(Burberry)가 다이너를, 팔라스(Palace)가 바버샵을 찾은 것처럼 영국 브랜드들은 제 방식으로 전통을 활용하고 있다.

요크셔 출신인 다니엘 리(Daniel Lee)는 지난 1년간 버버리의 지극히 영국적인 역사를 충실히 되돌아보며, 새 컬렉션을 공개할 때마다 패션 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스코틀랜드 전통 패턴을 닮은 악명 높은 타탄체크를 따뜻한 컬러웨이와 함께 다시 불러들인 선택은 대담했지만, 그의 디렉팅은 전반적으로 신중했다. 다니엘 리는 2023년 가을-겨울 컬렉션의 핫워터보틀과 숄, 2024년 봄-여름 컬렉션의 프레피 스웨터 베스트 등 계급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아이템을 영국의 상징으로 풀어냈다. 그의 캠페인은 카노(Kano), 매리 베리(Mary Berry), 진 캠벨(Jean Campbell) 등 셀러브리티 문화의 노동 계급 영웅부터 패션계 귀족에 이르는 이들을 불러들였다.

최근에는 런던 북부의 유명 식당 노먼스 카페와 협업하기도 했다. 저렴하지만 생기 있는 영국식 카페의 전통을 이어받아 “달걀 2개, 베이컨 2개, 소시지 2개” 옆에 호스페리 로고를 배치한 접시는, 마치 모두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사랑하는 것처럼 모두가 버버리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본드 스트리트 역을 버버리 스트리트 역으로 바꾸고 런던의 일부가 됨으로써 영국을 위한, 영국에 의한 브랜드를 자처하던 때에도 같은 분명 같은 의도였을 테다. “과거 버버리가 민족국가 외부로부터 영국의 비전을 찾았다면, 다니엘 리의 비전은 영국 내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포용적이다.” ‘The Changing Face of Burberry(2002)’의 저자 시안 웨스턴(Sian Weston)의 말이다. “2024년 봄-여름 쇼를 방문한 이들에게 따뜻한 차와 에클스 케이크를 내어 주는 등의 식으로, 그는 편안함과 기쁨의 감각을 전한다.”

팔라스도 버버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영국스러움에 대한 기존 아이디어를 뒤흔들었다. 팔라스가 제시하는 영국스러움은 튀르키예계 영국인인 설립자 겸 디자이너 레프 탄주(Lev Tanju)의 성장 과정을 반영해 젠체하는 면이 덜하다. 2021년 해러즈 백화점 콜라보레이션을 떠올려 보자. 많은 이들에게 해러즈 백화점은 호화로운 상류사회의 삶을 상징한다. 이곳은 퍼스널 쇼퍼의 본거지이며 영국 유명 인사를 비롯해 다이애나비 등 왕가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 온 곳이다. 팔라스는 이 문화적 신화를 활용해 대중에 호소했다. 군주제를 반대하거나 웅장한 전시를 싫어하는 이들에게도 해러즈를 해러즈로 만들던 굉장한 광경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취향이 어떻든 간에 영국인이라면 이 적갈색 궁전에 달콤한 추억 하나씩은 갖고 있으니 말이다.

해러즈를 비롯해 고집 있고 예스러운 홈웨어 브랜드 웨지우드(Wedgwood), 고전적인 신발 브랜드 트리커스(Tricker’s) 등, 탄주의 어린 시절 기억에 남아 있는 브랜드들은 자연스럽게 팔라스의  파트너가 되었다. “어린 시절, 십 대 시절부터 내 안에 뿌리내린 브랜드들이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웨지우드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곤 하셨다. 요식업을 하셔서 접시는 중요했다. 해러즈는 1990년대에 생겨난 소매점들의 고지 같은 곳이었다. 프리커스는 20대에 더퍼(Duffer) 매장에서 일하던 시절 내가 동경하던 이들이 즐겨 신던 브랜드였다.” 탄주의 말이다. 그가 이런 유명 브랜드와의 협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건, 영국적인 경험을 대중화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화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인이 운영하는 런던의 바버샵을 배경으로 한 최신 바버(Barbour) 캠페인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영국 상류층의 야외 활동을 책임지던 브랜드를 ‘보통 사람’과 연결했다.

웨지우드의 또 다른 파트너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Charles Jeffrey Loverboy)도 오늘날 영국인답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찰스 제프리는 고풍스럽고 단조로운 웨지우드의 그릇을 그만의 펑크 무드로 해석했다. 그는 17세기 찰스 1세 시대의 캐롤라인 스타일을 비틀어 정교하고 키치한 터치를 더한 와이드 벨트 시퀸 튜브탑과 터쿼이즈 샤기 스커트로 왕과 귀족의 역사를 재조명했다. “이 컬렉션을 준비하는 동안 여왕이 서거했고 우리는 선택의 여지 없이 갑자기 왕을 뽑아야 했다. 리즈 트러스(Liz Truss)의 당선과 함께 정치적인 격변이 있었고 내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혼란스러웠다.” 제프리가 말했다. 그는 냉소적인 영국인의 영원한 버팀목, 풍자를 곁들여 뉴 캐롤라인, 즉 현대 영국인을 위한 유니폼을 만들었다. “우리는 캐리커처, 만화, 조롱을 이용해 상류층을 비판하는 데 아주 익숙하다. 나는 러버보이가 유쾌한 어릿광대라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든다.”

물론 앞서 언급한 브랜드들의 노력은 영국스러움이 의미하는 바를 재정의하는 많은 시도 중 일부일 뿐이다. 영국적이라고 여겨지는 많은 것이 실제로 영국적이지 않으며, 지배적인 영국 문화는 여전히 소외 집단을 배제한다. 마틴 로즈(Martine Rose)가 잉글랜드 여자 축구 대표팀의 유니폼을 디자인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런던을 런던답게 만드는 이주민 문화를 기념하며 지역 커뮤니티에 경의를 표하던 2024년 봄-여름 컬렉션도 마찬가지다. 로즈가 쇼를 찾은 이들에게 제공한 스텔라 아르투아 역시 (벨기에산이지만) 그 높은 도수로 영국식 블록코어 감성을 갖는 맥주로 유명하다. 스테판 쿡(Stefan Cooke)의 2024년 봄-여름 컬렉션은 영국 상류층 특유의 조용한 럭셔리 아이템, 멀버리(Mulberry) 핸드백을 큼지막한 리본과 액세서리로 장식해 절제된 우아함에 묘한 재치를 더했다.

따라서 지금 패션계에서 영국적인 것이 곧 트렌드라는 결론을 낼 수 있겠다. 다만 90년대 후반 블레어 정부의 어설프고 포괄적인 쿨 브리타니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트렌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영국스러움과 그것이 수반하는 복잡다단한 문화적 수수께끼를 꾸준히 따라갈 필요가 있다. 안일하게 진부한 전형을 복제하는 것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영국의 현재를 해부하는 동시에 더 밝고 풍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영국의 옛 속담처럼 돈을 벌게 될(be quids in) 거다.

에디터 Joe Bobowic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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