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인데 건설 노동만" 러시아로 파병간 북한군이 알려주는 충격적인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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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의 시작, 선택받은 군인들

북한은 오래전부터 군인을 해외 노동 현장에 파견해 외화를 벌어왔다. 러시아 건설장 역시 대표적인 목적지였다. 이은평 씨는 군 복무 중이던 2014년, 러시아 파견 선발 공고를 접했다. 당시 그는 131부대 소속으로 핵실험 관련 설계와 건설에 참여하는 특수 임무 부대원이었는데, 부대는 파견을 위해 러시아어와 러시아 법, 생활 규칙을 집중적으로 교육했다.

매일 600개 단어를 외우는 고강도 훈련이 이어졌고, 영어 토플 시험처럼 러시아어 자격시험에 통과해야만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언어 능력만으로는 부족했다. 출신 성분과 가족 배경이 철저히 검증됐으며, 주변인 20여 명이 보증을 서야 비로소 선발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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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외 경험의 충격

2017년, 오랜 준비 끝에 러시아행 비행기에 오른 순간은 가문의 영광이자 마을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비행기 창문 밖으로 본 풍경은 기대와는 달랐다. 평양 상공은 암흑이었으나, 경유지 상하이는 불빛으로 가득했다. 그는 그 순간 ‘우리가 속한 세상’에 대한 의문을 처음 품었다.

러시아에 도착해 접한 현실은 더 혹독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건설장에서 벽돌을 나르고 집을 짓는 생활이 이어졌으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숙소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른 외국인 노동자와의 대화는 물론 휴대전화 사용도 금지됐고, 겨울철엔 찬물만 나오는 시설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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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다른 삶, 제한된 자유

러시아 파견 노동자들의 일상은 규율과 감시 속에 이어졌다.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은 기본이었고,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자정 이후에도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임금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당시 러시아 노동자들이 받는 월급의 두세 배 수준을 받았지만, 생활비와 북한 당국에 내야 하는 충성 자금 등을 제외하면 남는 돈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은평 씨는 파견이 북한 내 일상에 비하면 ‘자유인의 삶’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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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신분’으로 위장된 두 번째 파견

2017년 말, 대북제재 강화로 북한 노동자 전원이 귀국해야 했지만, 북한 당국은 곧 ‘유학생 비자’라는 우회로를 활용해 노동자들을 재파견했다. 이은평 씨 역시 외국 대학에 다니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다시 러시아로 향했다. 그러나 이번 생활은 더 열악했다.

보급품조차 지급되지 않았고 식사 제공도 없어 마트 쓰레기통에서 버려진 음식과 옷을 주워 생활해야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일한 위안은 해외 드라마와 영화였다. 그는 중고 휴대전화를 구해 ‘사랑의 불시착’ 같은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며 점차 북한 선전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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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탈출 결심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노동 환경은 더 악화됐다. 동료가 위궤양으로 쓰러졌지만 병원 치료를 거부당하는 모습을 본 이은평 씨는 북한 노동자가 단순한 ‘돈 버는 도구’로 취급된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는 “이대로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유엔 지부에 연락했고, 이후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숨어 지내는 생활이 시작됐다. 그러나 난민 심사 과정에서 북한 관리자를 마주치는 위험에 처하기도 했고, 추적을 피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결국 2021년, 여러 나라를 거쳐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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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없는 곳은 북한뿐”

한국에 정착한 뒤 이은평 씨는 북한 군인과 노동자들의 현실을 증언하며,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에 강제로 파병된 북한 청년들의 송환 문제에 목소리를 냈다.

그는 “못 사는 나라가 있다 해도, 적어도 선택할 자유는 있다. 북한은 내 몸과 내 생각조차 내 것이 아닌 곳”이라고 말했다. 그의 증언은 북한 파견 노동자들의 실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억압된 체제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의 절규를 생생하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