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 맛 나는 팔도강산

나종익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동산과 지역 이야기 (12)

‘흑백요리사2’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두 번째 시즌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인 시도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흑수저 요리사와 백수저 요리사가 맞붙은 첫 번째 대결이었다. 우리나라 각 지역을 대표하는 식재료를 주제로 한 진검승부는, 단순한 요리 대결을 넘어 지역의 얼굴을 보여주는 무대처럼 느껴졌다. 방송을 보며 미리 예상했던 식재료도 있었지만 ‘이 지역이 이 식재료로 유명했나?’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장면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지역과 음식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또 낯설다.

진행 이형우 기자 | 글 자료 나종익 대표(㈜유한회사 메타포홀딩스)
이번 호에서는 우리나라 각 지역의 식재료와 음식 이야기를 통해 동네가 품고 있는 또 다른 얼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혹 흑백요리사2를 아직 못 본 분이 계시거나 혹시 볼 예정이신 분들은 살짝 주의하시길 바란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메추리 고기를 먹는다고?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아는 백수저 이준 셰프와 흑수저 ‘삐딱한 천재’가 맞붙은 흑백 대결에서, 두 사람은 공통으로 의령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듯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필자는 당연히 ‘마늘’을 떠올렸다. 하지만 공개된 의령의 특산물은 의외로 ‘메추리’였다. 메추리는 그동안 알로만 소비되는 식재료라고 생각해 왔기에, 고기로 활용된다는 사실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물론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시절에는 닭 사육이 쉽지 않아 메추리 고기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요즘 일상에서 메추리 고기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다. 필자의 경험 부족일 수도 있겠지만, 이미 파인다이닝 업계에서는 비둘기 고기를 활용한 요리가 적지 않다고 한다. 다만, 국내에서 비둘기 고기를 안정적으로 구하기 어렵다 보니 메추리 고기가 그 대체재로 활용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마 이준 셰프와 삐딱한 천재가 메추리 고기에 익숙해 보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의령의 메추리일까.
의령군 화정면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메추리 농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2012년경 왕메추리 사육에 성공하며, 수율이 높은 식용 메추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식용으로 육종된 의령 왕메추리는 기존 산란용 메추리보다 크기가 3~4배에 달하고, 맛 또한 뛰어나 삼계탕의 대체 식재료로도 활용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의령 왕메추리는 의령의 또 다른 특산물인 마늘을 먹고 자라, 콜레스테롤 함량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 번쯤은 먹어볼 만하지만 먹는 것만 먹는 필자의 짧디짧은 입맛에 메추리 고기는 아직 좀 어렵게 느껴진다. 메추리 고기를 좋아하셨던 분들이나 도전해보고 싶으신 분들은 의령에 가서 메추리 고기를 드셔보시는 것을 추천 드린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흑수저 ‘요리괴물’과 백수저 송훈 셰프는 창원 미더덕을 주제로 한판 승부를 벌였다. 처음에는 다소 의아했다. 창원이라고 하면 중공업 도시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원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미더덕이라는 식재료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현재의 창원시는 2010년, 창원·마산·진해 세 도시가 통합되며 탄생했다. 통합 과정에서 ‘마창진시’, ‘산해원시’같은 이름도 거론됐지만 최종적으로 ‘창원시’라는 이름을 택했다.
오늘날의 창원은 중공업 이미지가 강하지만, 과거의 마산은 아귀와 미더덕으로 잘 알려진 해산물의 고장이었다. 특히,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만은 미더덕의 대표 산지로, 전국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곳이다. ‘창원 미더덕’이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졌을 뿐, 만약 ‘마산 미더덕’이라고 했다면 고개를 끄덕였을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도시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바다와 식재료는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문경 약돌돼지는 이미 잘 알려진 지역 특산물이다. 이 약돌돼지의 시작에는 ‘페그마타이트(거정석)’라는 다소 낯선 광물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남북한을 합해 약 8곳의 페그마타이트 광산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도 문경시 가은읍에서 생산되는 페그마타이트에는 특수 물질과 유효 성분이 특히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광물은 그동안 치약이나 샴푸, 화장품 등 생활용품에 주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새로운 가능성을 찾던 이들이 모여 페그마타이트를 축산에 접목하는 시도를 시작했다. 돼지 사료에 페그마타이트를 갈아 넣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해당 사료를 먹고 자란 돼지는 육질과 풍미, 영양 면에서 뛰어난 돼지고기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약돌돼지’는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았고, 문경의 대표 특산물로 인정받게 된다. 이후 문경에서는 약돌돼지를 시작으로 약돌송어, 약돌사과, 약돌오이 등 페그마타이트를 활용한 다양한 지역 특산물이 연이어 탄생하고 있다.
문경의 슈퍼스타가 약돌돼지라면,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산청군의 유명인사는 바로 흑돼지다. 산청에서 언제부터 흑돼지를 키웠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험준한 산악 지역인 산청군 특성상 먹을거리가 부족했기에 재래식 화장실 아래에 흑돼지를 집집마다 키웠다는 설이 존재한다. 1980년대 이후 시골 농가의 환경이 개선되면서 더 이상 흑돼지는 키우지 않았지만, 1990년대 흑돼지 영농조합을 설립하면서 한국형 버크셔(토착 재래종과 아메리카 버크셔의 교잡종)가 탄생하게 됐다. 심지어 산청은 구제역이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는 청정 지역으로 산청 흑돼지는 면역성이 뛰어나다고 하니 건강한 돼지고기를 맛보러 산청으로 떠나보자.
산청 흑돼지(출처: 축산신문)
콩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라니…
파주는 수도권에서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가 많은 도시다. 자유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평양’, ‘개성’이라는 이정표가 등장하고, 그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면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 구간과 함께 반드시 유턴하거나 우회전하라는 안내를 마주하게 된다. 이곳이 바로 임진각공원 인근이다. 임진각공원에서 평화곤돌라를 타고 임진강을 건너면 닿는 곳이 콩으로 유명한 장단면이다. 오늘날에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이 지역에서, 한반도 농업사에 의미 있는 사건이 시작됐다. 1913년 일제강점기, 파주 장단 지역에서 한반도 최초의 콩 보급 품종인 ‘장단백목’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장단면 일대가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장단콩의 명맥은 끊어지는 듯했다. 전환점은 1970년대 통일촌 사업이었다. 이 사업을 계기로 장단콩 재배가 다시 시작됐고, 1990년대에는 장단콩 브랜드 육성 사업을 통해 생산량과 인지도가 본격적으로 확대됐다.
장단콩이 오늘날까지 높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환경적 이유도 크다. 전쟁 이후 민간인 출입이 제한되며 청정한 자연이 보존됐고, 배수가 잘되는 마사토 토양에 더해 주변 지역보다 낮은 기온과 큰 일교차는 콩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냈다. 파주로 드라이브를 자주 가는 필자는, 그 길의 끝에서 늘 장단콩 두부나 청국장을 한 봉지씩 들고 돌아오곤 한다. 파주에서 그냥 오기엔 어쩐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다. 민통선 안쪽에는 장단콩을 활용한 콩라떼나 장단콩 아이스크림 같은 메뉴도 있다고 한다. 아직 맛보지는 못했지만, 분단의 역사와 청정한 자연이 만든 콩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라니 괜히 더 궁금해진다. 다음번 파주 드라이브의 목적지는 어쩌면 커피가 아니라 콩일지도 모르겠다.
국민 관광지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강원도 속초. 속초에 간다면 꼭 한 번 맛봐야 할 식재료가 바로 참골뱅이다. 흑백요리사에서는 ‘속초 참골뱅이’로 소개됐지만, 실제로 참골뱅이는 속초에만 국한된 식재료는 아니다. 동해안을 따라 전반적으로 잡히는 해산물이다. 다만, 속초라는 지역의 이미지와 만나면서 하나의 대표 식재료로 자리잡았을 뿐이다. 한국인의 골뱅이 사랑은 세계적으로도 독특하다. 전 세계 골뱅이 소비량의 약 90%가 한국에서 이뤄진다고 하니 말이다. 한때 영국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는 골뱅이가 많이 잡혀도 소비처가 없어 버려지기 일쑤였는데, 한국에서 골뱅이를 많이 먹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현재는 전량 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고 한다. 시인 최원준의 칼럼 〈동해안 골뱅이〉에 따르면, ‘골뱅이’란 원래 다슬기나 우렁이처럼 껍데기를 가진 고둥류를 통칭하던 동해안 지역의 말이었다. 동해안에서 워낙 흔하게 잡히다 보니, 이 표현이 전국으로 퍼져 오늘날 우리가 쓰는 ‘골뱅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설명이다.
박대는 그 생김새로 인해 오랫동안 ‘하찮은 생선’이라는 놀림을 받아왔지만, 사실 군산 등 서해안을 대표하는 귀한 특산물이다. 이름의 유래도 ‘문적박대’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외모가 독특하지만, 보기와는 달리 담백하고 부드러운 살이 많은 훌륭한 맛을 지녔다. 최근 지하철 1호선 광고에 등장한 군산 박대 캐릭터가 큰 화제를 모았는데, 실제 박대의 외형을 절묘하게 살려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자아냈다.
MZ 손길이 닿은 특산물 홍보 방식
요즘 지역 특산물을 홍보하는 방식은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더 이상 “부여에 오셔서 알밤 드세요”같은 정공법은 잘 먹히지 않는다. 대신 놀리고, 비틀고, 한 번 웃기고 나서 기억에 남기는 방식이 대세다. 컴포즈커피의 ‘이 밤의 끝을 부여 잡고’처럼, 지역 이름은 이제 설명이 아니라 농담이 되고 밈이 된다.
‘창녕하면 마늘이야’, ‘군산 박대’역시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진지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차라리 대놓고 말장난을 선택하는 쪽이 훨씬 반응이 좋다. ‘창녕하면 마늘이야’는 젊은층이 익숙한 이미지 문법을 활용했고, ‘군산 박대’는 플랫 디자인의 캐릭터를 통해 친숙함을 앞세웠다. 특산물을 대단한 무언가로 포장하기보다, ‘우리 동네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는 태도가 오히려 설득력을 얻는다. 요즘 소비자, 특히 MZ세대는 설명보다 태도에 반응한다.
이 흐름을 가장 영리하게 활용한 사례가 맥도날드의 ‘한국의 맛’ 프로젝트다. 창녕 갈릭 버거, 보성 녹돈 버거, 진도 대파 크림 크로켓 버거, 진주 고추 크림치즈 버거, 익산 고구마 모짜렐라 버거에 이어 나주 배 칠러, 한라봉 칠러, 영동 샤인머스캣 맥피즈, 순천 매실 맥피즈까지. 지역 이름은 더 이상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브랜드가 됐고, 그 결과는 3,000만 개 판매 돌파라는 숫자로 증명됐다. 이쯤 되면 특산물 홍보를 넘어 지역 브랜딩의 교과서에 가깝다.
충주시 홍보맨과 산척 고구마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충주시 홍보맨은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됐듯, 대한민국 지역 홍보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이다. 누군가는 “공공기관이 너무 가볍다”고 말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 장난스러움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할 때다. 웃음 뒤에 남는 것은 의외로 또렷하다. “아, 충주”, “아, 산척 고구마.” 기억에 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성공이다.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일본이 떠오른다. 미식의 나라답게 일본은 음식에 유난히 진심이다. 미슐랭이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지만, 도쿄에 약 180개, 서울에 32개의 미슐랭 레스토랑이 있다는 숫자는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그 차이는 실력 이전에 태도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지역 특산물과 장인 정신을 오랜 시간 공들여 지켜온 나라와, 유행에 맞춰 너무 빠르게 바뀌고 변해온 우리의 차이다.
부여밤을 활용한 신메뉴 출시를 기념해 선보인 디지털 캠페인 영상의 한 장면(출처: 컴포즈커피)
창녕 마늘 홍보 게시물(출처: 루리웹)
스토리가 담긴 음식 한 그릇, 지역을 소환하다
결국 음식은 맛으로 시작하지만 기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의 대부분은 재료 그 자체보다 그 재료가 태어난 동네와 그곳에 쌓인 이야기에서 만들어진다. 흑백요리사2가 흥미로웠던 이유도, 단순히 누가 더 잘 요리했는지가 아니라 한 접시 뒤에 숨은 지역의 얼굴을 다시 보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화려한 포장이나 더 빠른 유행이 아니라, 오래 붙잡고 갈 수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웃기든 장난스럽든 때로는 느리더라도 그 지역만의 맥락과 태도가 담겨 있다면 음식은 자연스럽게 브랜드가 되고, 동네는 기억 속에 남는다. 지도 위의 이름은 바뀔 수 있어도, 땅과 사람 그리고 그곳에서 자라난 재료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결국 동네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동네가 무엇을 먹고 살아 왔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알고 난 뒤에 먹는 한 끼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맛으로 다가온다.
스토리가 있는 음식 한 그릇에서 시작하는 동네 이야기, 어쩌면 지방 소멸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군산 박대의 플랫 디자인 캐릭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