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세숑-세비녜의 코트 조명이 하나둘 꺼지던 밤, 채유정은 조용히 라켓을 내려놓았다. 마지막 교체 인사를 나누고, 파트너 이종민의 등을 두드린 뒤였다. 경기 결과는 32강 탈락. 스코틀랜드의 알렉산더 던–줄리 맥퍼슨 조에 1-2로 진 직후, 그는 자신의 SNS에 “국가대표로 뛰는 마지막 대회가 끝이 났다”는 문장을 올렸다. 말 그대로 깜짝 발표였다. 하지만 당사자의 말처럼 은퇴는 충동이 아니었다. “올해 들어 계속 생각해왔다”는 고백이 덧붙었다.

결정의 배경은 단순하고도 냉정했다. 지금 한국 대표팀에는 혼합복식(혼복)만을 위한 별도 선발전이 없다. 혼복 전문 선수가 국대 티켓을 얻으려면 여자복식 선발전으로 입장권을 따낸 뒤, 거기서 파트너를 찾아 혼복에 나서는 방식이다. 채유정은 “긴 시간을 혼복 선수로 달려왔고, 여자복식으로 도전하기엔 너무 힘든 여정이 될 것 같았다. 또다시 들어올 자신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선수로서 가장 현실적인 지점, 제도와 몸의 시간 사이에서 내린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이 멈춤은 가볍지 않다. 채유정의 15년은 한국 배드민턴이 혼복에서 다시 세계의 한복판으로 돌아오는 시간과 정확히 겹친다. 태릉선수촌에 들어선 10대 후반부터 그는 줄곧 “둘이 하나가 되는 기술”을 갈고 닦았다. 2017년 수디르만컵 우승 멤버로 트로피를 들었고,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단체전 금메달과 혼복 동메달로 태극마크의 무게를 증명했다. 그리고 2023년에는 서승재와 함께 세계선수권 혼복 정상에 섰다. 20년 만에 한국이 그 종목에서 다시 꼭대기에 올라선 날이었다. 결승 상대는 당시 세계 1위였던 중국의 젱시웨이–황야총. 누구도 쉬워 보지 않던 대결을 2-1로 비틀어 승리로 만들면서, 채유정은 ‘한국 혼복의 현재진행형’이라는 평가를 굳혔다.
올림픽에서도 그는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파리 올림픽 4강까지 올랐지만, 김원호–정나은 조와의 ‘한국 대 한국’ 맞대결에선 한 끗이 모자랐다. 동메달 결정전 역전 드라마도 끝내 자신의 편으로 당기지 못했다. 그날 코트에서 보였던 표정은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었다. 어떤 장면은 선수의 생애를 요약한다. 매 랠리마다 움직임을 줄이며 파트너와의 간격을 재고, 네트 앞에서 한 발 더 파고들던 버릇. 혼복의 본질인 동선과 템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한 선수라는 걸, 그 작은 습관이 보여줬다.

은퇴 소식이 전해지자 대표팀 후배들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세계 1위 안세영은 “너무너무 고생 많으셨다. 앞으로도 좋은 일만 가득하길”이라고 적었고, 서승재는 “함께해서 영광이었다. 덕분에 많은 걸 이뤘다”고 마음을 보탰다. 올해 함께 호흡을 맞춘 이종민 역시 “누나 덕분에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고 전했다. 채유정은 마지막 경기 직후에도 파트너를 먼저 챙겼다. “마지막 무대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범실이 많았다. 종민아 미안하다. 하지만 너는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다.” 그 말 속엔 묵직한 책임감과 애정이 동시에 묻어났다.
흥미로운 건 국경 너머의 반응이다. 중국과 일본 포털에는 그의 은퇴 소식이 곧바로 올라왔다. “한국은 안세영을 필두로 여자단식·여자복식이 강하지만 혼복은 제도적으로 반쪽 같다”는 비판부터 “한국 배드민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 가운데 한 명이 떠난다”는 아쉬움까지, 평가와 감상이 뒤섞였다. 사실, 채유정의 결정은 개인의 사정이면서 동시에 구조의 거울이기도 하다. 혼복은 올림픽 메달 분포에서 변수가 큰 종목이고, 세계 흐름도 빠르게 바뀐다. 그 변화에 맞는 선발·운영 체계가 없다면, 어느 순간 유망주들이 진입로를 잃는다. “여자복식으로 입장권을 따고 혼복을 겸한다”는 방식은 선수층이 두텁고 체력 자원이 풍부한 팀에게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혼복 전문성을 쌓아온 선수에게는 진입장벽이 된다. 채유정의 은퇴는 그 지점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그의 커리어를 숫자로만 읽긴 아깝다. 물론 성과는 화려하다. 세계선수권 금메달, 아시안게임 금·동메달, 수디르만컵 우승, 올림픽 4강. 하지만 그를 특별하게 만든 건 경기 ‘결’이었다. 채유정은 큰 체구가 아니라 코스와 템포로 승부했다. 셔틀콕이 라인을 스치듯 떨어지는 각, 파트너가 뒤에서 스텝을 바꿔 탈 때 앞에서 한 박자 더 버텨주는 간격 유지, 상대 포백 전환 순간을 읽는 시선까지. 혼복을 오래 본 이들은 안다. 저건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수천 시간의 코트 위 대화가 만든 결과다. 그래서 그는 ‘좋은 선수’이자 ‘좋은 파트너’였다.
마지막 무대였던 프랑스오픈 32강은 그 답안을 되풀이할 시간이 없었다. 1게임을 가져온 뒤 흐름을 내주며 역전패. 경기 직후 곧바로 은퇴를 알린 장면은 담담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대표팀 15년 생활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훈련했고, 경기를 뛰었다. 힘들 때마다 선생님과 동료, 팬들이 응원해줘서 버틸 수 있었다. 고맙다.” 고백의 문장은 길지 않았지만, 읽는 이들은 그 시간을 떠올렸다. 유니폼이 땀으로 젖은 날들, 원정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던 얼굴, 경기장 귀퉁이에서 테이프를 새로 감던 손. 스포츠가 남기는 건 결국 사람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이 작별이 ‘끝’만을 뜻하진 않는다. 채유정은 30살이다. 코트를 떠나도 배드민턴과 멀어지지 않을 나이다. 지도자, 멘토, 해설, 유소년 시스템의 설계자 등 그가 설 수 있는 자리는 많다. 더 중요한 건, 그의 눈이 본 것과 몸이 배운 것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하느냐다. 한국이 혼복에서 다시 일관된 경쟁력을 가지려면, “둘이 하나가 되는 법”을 어릴 때부터 배우게 해야 한다. 선발전의 구조, 파트너 매칭의 철학, 시즌 운영의 합리성까지 손봐야 한다. 채유정의 퇴장이 던지는 질문에, 배드민턴계가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의 채유정에게도 우리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스포츠는 언제나 결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메달이 없던 시즌에도 그는 대표팀의 표정이었고, 파트너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였다. 세계선수권 우승 세리머니에서, 파리의 비 오는 아침 워밍업에서, 그리고 프랑스오픈의 마지막 악수에서 그는 끝까지 자기답게 서 있었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쉽게 꺼낼 수 없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면, 정말 그렇게 살았다는 뜻이다.

라켓을 내려놓았지만, 그의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제 시작되는 역할이 있다. 혼복을 사랑한 한 선수가 제도와 현실 사이에서 내린 결정을, 우리 스포츠는 어떻게 기억할까. 한때 코트를 지배했던 그 템포와 간격, 배려와 결단이 언젠가 다시 한국 혼복의 표정이 되길, 그래서 다음 세대가 “그 길을 따라가면 된다”고 말할 수 있길 바란다. 굿바이, 채유정.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자리에서, 반갑게 안녕.
마지막으로, 그는 떠나며 파트너의 미래를 먼저 적었다. “종민이는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다. 제가 아니라 누구와 하더라도.” 끝까지 혼복 선수답다. 둘이 하나가 되는 법을, 떠나는 순간까지 잊지 않았다. 그 한 문장이 그의 15년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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