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전 사람들이 되살아났다”...금방이라도 말 걸어올 듯한 저 표정, 정체가 [퇴근 후 방구석 공방]

이승환 기자(presslee@mk.co.kr) 2024. 10. 1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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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방구석 공방- 73화 ‘강제모’]

‘삶‘을 담은 피규어
호랑이 사냥꾼
“1897년에 찍힌 사진이라고 하는데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몇 시간 동안 보고 있었어요. 이 사람들이 ‘호랑이 사냥꾼’인데 이 중에 누군가는 호랑이에 물려죽지 않았을까? 복장은 왜 이렇게 단출할까? 당일치기로 호랑이를 잡으러 갔나? 이런저런 상상을 하면서요. 그리고 15년 뒤에 우연히 다시 이 사진을 보게 된 거예요. ‘이건 만들어야겠다’ 맘 먹은거죠.“
호랑이 사냥꾼, 3D 렌더링과 출력물
“사진이다 보니 뒷모습에 대한 정보가 없잖아요. 상투는 어떻게 틀어졌는지, 망건의 매듭법은 어떻게 되는지? 봇짐이라도 메고 있을 테고 짚신은 빨리 닳아 버릴 테니 한 켤레가 더 있을 것 같고. 뒷면을 상상하면서 만들었어요. 젤 앞에 있는 할아버지는 오랜 시간 호랑이 사냥을 했을 텐데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은 자신만의 노하우 있는 베테랑이기 때문이겠죠. 그런 부분에서 더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호랑이 사냥꾼
“히스토릭 피규어라 하면 전장에서의 모습들을 표현하는 것들이 많고 다 멋있고 좋긴 한데 저는 그 당시에 서민들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호랑이 사냥꾼을 만들면서 거의 동시대에 아메리카 대륙 쪽에서는 어떤 생활을 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는데 12살짜리 남자아이가 탄광에서 찌든 모습으로 찍힌 사진이었어요. 울림을 주더라고요.”
호랑이 사냥꾼
“호랑이 사냥꾼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라는 그런 표정. 제작 당시 제 딸이 12살이었어요. 그 또래의 아이가 탄광에서 숯검정을 뒤집어써 가면서 돈을 벌고 있어요. 그리고 왼쪽 주머니에는 담배가 꽂혀 있어요. 충격이었죠. 이 나이의 아이가 이렇게 찌들어 있을 수 있나…. 원래 사진을 보면 얼굴에 검댕들이 많이 묻어 있는데 채색을 하면서 일부러 안 묻혔어요. 이 소년이 피규어로나마 깨끗한 얼굴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던것 같아요.”
탄광 소년(Tipple Boy) 원화 사진과 강작가의 피규어
“사진에는 안나왔지만 옆에는 도시락이 있는데 그 시대에 탄광에서 일하는 소년들이 어떤 도시락을 사용을 했을지 조사를 해서 추가해줬어요. 어려웠던 부분은 머리에 쓰고 있는 랜턴이었어요. 기름을 넣어서 앞부분에 불을 붙여 사용하는 랜턴인데 어떤 구조로 모자에 꽂히는지 등등 자료를 찾는 게 어려웠던 부분이었죠. 이렇게 사진 한 장이 저한테 많은 이야기를 전해줄 때 만들게 되네요.”
Done
“이 소녀 피규어 제목은 ‘Done’이예요. 끝났다는 의미의 Done이죠. 일본에서 로봇 전시회가 있어서 출품용으로 로봇을 만들고 그 로봇에 타고 있는 남매를 만들고 있었는데 불안함과 슬픔이 가득한 눈빛이 여자아이에게서 계속 보이는 거예요. 그 느낌이 괜찮아서 따로 흉상으로 만들게 되었어요.”
Done, 렌더링과 피규어의 후면
“전쟁 속에서 두려움 앞에 서 있는 아이.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만들고 몸은 움츠리고 있어요. 미래적인 느낌을 주고 두려움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해 방독면을 들려주었고 이 아이의 마음을 조금 안정시켜줄 수 있는 곰인형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불안감을 표현했어요. 인상이 굉장히 잘 나와서 제품화했는데 의외로 일본에서 반응이 좋았어요.”

“일본 모델러들은 ‘돈짱’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얼마 전에 중국에서 카피를 해서 팔고 있는 걸 보게 됐는데 뭐 막을 방법도 없고 그냥 그만큼 매력있는 피규어라서 카피까지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항아리장수 원화 사진과 3D 렌더링
“항아리 장수 사진을 보면 항아리를 가득 짊어지고 고단할 만도 한데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어요. 그게 인상적이었어요. 아마도 사진을 찍는다는 걸 알고 멋쩍게 웃지 않았을까요? 3D 렌더링을 할 때는 항아리까지 짊어진 그대로 렌더링했는데 저 웃음을 보니 항아리를 다 팔고 기분 좋게 퇴근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주고 싶어서 항아리를 생략했어요.”
항아리장수
강제모 작가의 피규어 작품들
‘킷배싱‘의 매력에 빠지다
“어릴 적 장난감을 사기 어려운 형편이었거든요. 거기에 대한 응어리 때문인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맥퍼른토이라는 피규어, 프라모델들을 엄청나게 모았었어요. 그러다 노블 그래픽스 ‘마시넨크리거’를 접하게 된 거예요. 마시넨크리거가 여러 킷들과 주변 사물들을 조합해 새로운 모형을 만들어 내는 ‘킷배싱’ 기법으로 제작 됐는데 너무 매력적이더라고요. 심지어 스타워즈 우주선들도 킷배싱으로 제작되었다는 얘기를 듣게 되면서 빠지게 되었죠.”
‘STARWARS’ Kit Bashing 킷배싱으로 스타워즈 비행선을 디자인 중인 제작자들, 카메라 스트로브 손잡이로 만든 라이트 세이버
밀레니엄 팔콘이나 x-wing 등 스타워즈의 탈 것들을 보면 실제 탱크, 헬기 프라모델에서 따온 부분들이 그대로 보이고 다스베이더의 라이트 세이버 같은 경우는 카메라 스트로보 배터리 팩을 그대로 갖다 만들었어요. 저는 이걸 보고 되게 충격을 받았었어요. 너무 성의가 없잖아요. 다른 라이트 세이버는 또 다른 회사 스트로브 배터리 팩을 쓰는 식이었어요. 이게 킷배싱이예요.”
마시넨크리거 P.K.A.의 동체로 쓰인 휴즈헬기 프라모델
“바로 하비샵에서 마시넨크리거 킷을 쓸어담다시피 구매해서 쌓아놓고 만들어보고 개조를 시작하면서 킷배싱을 하게 되었어요. 원작자 ‘코우 요코야마‘가 만든 걸 보고 저도 따라서해보기도 하구요. 휴즈 헬기로 이 P.K.A. 라는 걸 만들었다는 정보를 얻으면 저도 휴즈 헬기를 사서 쪼개보고 넣어보고 팔도 붙여보면서 여러 시도를 해보는 걸 즐겼었어요.”
마시넨크리거 원작자 ‘Kow Yokoyama’와 함께한 강제모 작가
“마시넨이 조형적인 매력도 있었지만 채색의 매력도 굉장히 강하거든요. 다크한 웨더링이 들어간 도색이 굉장히 잘 어울려요. 그렇게 킷배싱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 만들었다는 얘길 들을 정도가 되었을 때 2004년 일본 관동지역에서 마시넨크리거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대뜸 참가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어요. 일본에서는 국내 행사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에서 오겠다고 하니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일본 모형 잡지에 소개된 강제모 작가의 대상작
“당시 일본에서는 마시넨크리거 마니아들 사이에서 킷배싱은 너무나 당연한 거여서 정말 신선한 작품들이 많았고 많이 배웠죠. 조형이나 채색이나. 그다음 해에도 참여를 했는데 ‘P.K.A.’라는 기체를 개조해서 컨테스트에서 정말 운 좋게 대상을 받게 됐어요. 이렇게 2005년도 12월달 일본 모형 잡지에 실리게 됐었죠.”
일본 관동 마시넨크리거 전시회를 마치며 스텝들과 함께 한 강제모 작가
“그렇게 10년째 되던 해 관동 마시넨크리거 전시회가 막을 내렸는데 10년을 정리하는 전시다 보니까 약간 뭉클하더라고요. 아쉬움에 첫 회부터 친하게 지냈던 모델러들, 스태프들과 사진을 찍기 위해 모였는데 저를 가운데 몰아넣고 둘러싸고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모형이 이어준 인연들인 거죠.”
킷배싱은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
“저는 프라모델을 구입하게 되면 런너들로 다른 조합을 만들어 봐요. 좌우 대칭되는 부분이 있으면 넓게도 펴보고 반대로도 붙여보고 꺾어 붙여보기도 하면서 맘에 드는 모양을 찾아갑니다. 괜찮다고 생각되면 그때부터 작업이 시작됩니다. 빈 곳을 채우기 위해서 전체적인 형태에 어울릴 구성 요소들을 찾습니다.”
코브라 헬기 키트를 이용해 만든 ‘NO.04 Roadster Bivio‘
“키트를 사서 박스를 열어봤는데 부품을 보고 영감을 받은 거예요. 코브라 헬기의 부품인데 좌우 대칭으로 배치가 되어 있었어요. 런너의 위아래를 바꿔서 조합을 해보니 모양이 뭔가 ‘날 것처럼 생겼다’, ‘탈 것처럼 생겼다‘라는 느낌을 받게 됐어요.”
NO.04 Roadster Bivio
“전체적인 부품의 구성이 이질감이 들지 않게 고르는 것도 중요해요. 예를 들어 건프라같이 매끈한 면이 많은 바디에 갑자기 ‘스팀펑크’ 느낌의 파이프가 달린다든지 톱니바퀴가 나오면 이질감이 상당하겠죠. 이 이질감이라는 것도 사람 마다 다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용납이 되는 사람도 있고 절대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그 진폭이 좁은 편이에요.”
[Ma.K] Oskar (feat. Apple Mouse)
“스팀펑크 스타일 디자인에 디젤펑크 부품을 절대로 섞지 못하는 타입인거죠. 디젤 펑크로 스타트를 했으면 디젤 펑크로 끝을 내려고 노력을 하는 편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STAG
“대부분의 모델러들이 킷배싱을 처음 접하게 되면 굉장히 재밌어하는데 어느 순간 미학적인 부분을 고민하게 되거든요. 그건 많은 장르에 대한 정보를 인지하고 있어야 가능하다고 봐요. 제가 대학에서 디자인 강의를 할 때도 학생들한테 늘 하는 얘기가 ‘많이 봐라’예요. 많이 보고 눈에 익히고 체득이 돼야지 본 적 없는 디자인이 머릿속에서 나오기는 어렵거든요. 킷배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GAPPA
“킷배싱의 두 번째 방법은 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구체화하는 방법인데 우선 스케치해서 구체화해놓고 맞는 부품을 찾아가는 거죠. 맞는 부품이 없어서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해요. 제가 ‘AFFEN’을 만들 때 앞바퀴를 연결해주는 축에 맞는 부품을 구하질 못해서 몇 년이 미뤄지다 때마침 괜찮은 부품을 찾게 되었는데 대포류의 다리가 양쪽으로 펼쳐져 있고 대칭 구조를 가지고 있는걸 보고 번쩍한 거죠. 그렇게 완성하게 되었어요. 최근에는 3D 프린터를 사용하게 되면서 그런 부분에서 많이 자유로워졌죠.”
AFFEN
“나름 제가 탄생시킨 녀석이기 때문에 이름을 지어주는 재미도 있어요. 차량이든 이족 보행 로봇이든, 탐사선이든 이름을 지어줘서 아이덴티티를 강하게 해주는 것도 되게 즐거운 일이더라고요. 완벽한 디자인과 구성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누가 봐도 그럴싸하게 만드는 게 저의 목표고 지향점입니다. 이게 실제 있을 것만 같고 달릴 수 있을 것만 같고 날 수 있을 것만 같게 말이죠.”
비행기와 소방차가 만나 탄생한 ‘Roadster Cyprus’
‘곤브로’
“모형은 제 취미생활이고 본업은 디자이너예요. 지금은 일과 취미의 경계가 무너져가면서 일에서도 모형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요. 이런 디자인과 모형관련 일을 하는 곳이 ‘곤브로’입니다. 박물관에 가면 모든 유물이 유리벽 안에 보존되어 있고 볼 수만 있잖아요. 그것들을 3D로 복원하고 프린팅 과정을 거쳐 입체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관람객들이 직접 만져보면서 작동원리를 체험할 수도 있고 시각장애인들은 촉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교보재로 사용되는 거죠.”
국립고궁박물관 과학문화관에 전시되어있는 3D 복원 유물 - 강제모 作 앙부일구, 측우기와 측우대, 혼천의, 자격루 수수호
“유물들이 달랑 사진 한장있는 경우도 있고 관련 문서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어 실물로 볼 수 없는 것 들까지 복원하는 중입니다. 3D 프린팅 기술로 문화재 모형이 많이 만들어지면 사람들이 문화재를 좀 더 친숙하고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보람된 일이죠.”
Swadder
“또 ‘그런줄이나’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제 모형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노하우를 공개하고 있어요. 노하우 공개에 대해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그냥 다같이 함께 즐기고 싶어요. 저희 또래는 프라모델을 만들고 모형을 만드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20~30대는 ‘만든다’라는 즐거움에 대한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맘도 있거든요.”
Giant Robo
“적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포기하는 사람들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노하우를 다 공유하고 싶네요. 즐거움은 나눠야죠.
‘곤브로’ 작업실에서 강제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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