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el터뷰!) 영화 <성덕>의 오세연 감독을 만나다

한때 그녀는 '슈퍼스타K'로 이름을 알린 톱스타 뮤지션 정준영의 열성팬이었다. 정준영에게 기억되기 위해 한복을 입고 팬미팅을 갔을 정도로 열정적이었고, 이를 통해 예능 방송에도 출연하며 이름을 알린 유명 인사였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정준영은 큰일을 저질렀고, 아닐 것이라 믿었던 뮤지션의 잘못이 사실로 드러나자, 열성팬이었던 그녀의 10년 넘는 짝사랑은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었다. 좌절하고 방황할 수 있었던 시기였지만, 좋아하던 뮤지션 덕분에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꿈을 키워온 그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화과에 입학한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자신의 흑역사 시절이 담긴 그때의 흔적과 자신과 같이 좋아하던 오빠들로부터 배신당한 팬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을 내놓게 되었다.

<성덕>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큰 화제를 불러왔고, 신선한 소재와 시선으로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다큐 영화로 영화팬들 사이에서 재미있고 잘 만든 작품으로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은 팬에서 진정으로 성공한 '성덕'(성공한 덕후)이 되어 영화계의 라이징 스타 감독으로서의 앞날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쉽지 않은 자신의 상처를 훌륭한 작품으로 승화시킨 이 영화의 연출자인 오세연 감독을 직접 만나 영화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앞으로의 각오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참고로 그녀는 아직 한예종의 학생으로 젊은 20대 초반의 감독이다.
-영화 재미있게 봤다. 조금 노골적인 질문으로 시작하겠다. 자신의 연출 데뷔작을 본 소감과 냉정한 시각에서 평가하자면?
(웃음)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인데, 한편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나구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보는 내내 왜 이렇게 찍었나라는 후회도 들었지만, 그래서인지 애틋한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5점 만점에 4점?(웃음)
-영화의 제목이 등장하는 오프닝에서부터 MZ세대 다운 센스가 느껴졌다. 창원에 있는 절인 '성덕사'의 이름을 제목으로 활용한 센스가 돋보이는데, 이 한 장면을 위해서 정말 '성덕사'에 간것인가? 독특한 제목의 유래가 궁금하다.
(크게 웃음) 우선 성덕사에 가게 된 배경을 설명드리겠다. 원래부터 생각한 제목도 <성덕> 이었다. 내가 성덕이 되었으니, 긍정의 말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의 그 사건 이후 이제 나에게 성덕이라는 단어가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 말이 지닌 중의적인 의미를 제목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서 제목을 <성덕>으로 확정 지었다. 원래 제목이 나오는 오프닝 계획은 선덕여왕 신종 소리를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종소리를 사용하는 데 저작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실제 종을 칠 때 소리를 녹음하려 했는데, 유물 보존을 위해서 더이상 종을 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종소리를 담아야 했는데, 마침 창원에 있는 성덕사라는 곳이 우리 영화와 제목이 똑같았고, 거기에 종도 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이 소리와 장면을 담기로 했다. 마침 우리 할머니도 불교신자여서 나도 성덕사에 가서 기도도 드릴겸 가자고 했다. 결론적으로 오프닝은 의미 부여는 있지만 알맹이는 없는 장면이었다.(웃음)

-가장 많이 들어봤을 질문이다. 자신의 아픈 과거를 소재로 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로 기획했나?
이 영화가 왜 다큐멘터리여야 하나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이 작품은 반드시 다큐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 영화는 내 경험이면서, 실제가 지닌 파격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고, 그 과정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의지도 강해서 무작정 저질러 보자는 생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막무가내로 진행한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첫 작품을 연출하는 만큼 참고 대상이 필요했을 수도 있었다.
오만한 발언일 수도 있지만, 이 영화를 만들면서 레퍼런스가 된 작품은 없었다. 그저 나는 이 소재가 웃기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재미있고 발랄한 느낌으로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 점에서 보면 레퍼런스는 아니지만, 그나마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 있다면 넷플릭스에 있는 <서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같은 감각적인 작품을 만들기 바랐고, 아네스 바르다 감독님 영화 같은 위트 있는 작품, 빔 벤더스 감독님의 작품을 떠올리며 연출했다.

-영화를 기획하고 촬영하면서 지켜야 할 기준이 있었다면?
기획 당시부터 지키고자 한 것은 바로 웃음이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우리 입장에서 슬프고, 웃프고, 화나는 장면이 대다수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에 나온 사람들이 앞으로 그 사람 때문에 울지 않길 바라며 이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이 영화에 출연한 모든 이들은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아픈 기억을 웃으면서 나눴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다.
-다큐멘터리는 순조롭게 완성된 것 같지만, 실제 촬영 때는 순조롭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출연진이 카메라 앞에 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게다가 아직도 문제의 연예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맞다. 순조롭지 않은 과정이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셀 수 없이 많았다. 우선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하자면, 첫 촬영때 부터 카메라를 어떻게 작동시키는지 몰랐었다.(웃음) 당연히 키고 끄는건 알고 있었는데, 실제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촬영한 장면이 바로 정준영의 1차 공판 날이었다. 첫 장면에서 영상을 찍었는데 전혀 다른 모드로 촬영한 나머지 사운드가 들어가지 않는 실수가 발생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멘붕이 왔다. 그런 식의 문제들이 상당했다.
그리고 2019년 촬영해 2021년에 영화를 최초 공개했는데, 공개되자마자 일부 출연진이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지금 영화를 돌아보니 의외로 분노해서 감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더라.(웃음) 돌이켜보니 이 작업은 내가 변화하는 과정이었고, 내가 여정을 떠나는 길이기에 나 역시 출연진들처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출연진이 있다면?
영화를 찍으면서 나 자신도 많이 배우고 성장한 과정이 있었다. 특히 출연진 중 김은빈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덕분에 그런 감정을 느낄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이 덕질한 친구였는데, 우연히 그 친구에게
그 사람(정준영)이 앞으로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냐?"
라고 질문을 했었다. 당시 나는 분노가 가득 차 있던 때였다. 그런데 그 친구 입에서 나온 대답은 다소 의외였다.
그 사람은 벌을 받아야 겠지만, 결국에는 행복했으면 좋겠어"
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랐고, 큰 충격을 받았다. 범죄자지만 그 사람을 용서하는 느낌이어서 뭔가 통달한 사람을 만난 느낌이었다. 그 친구를 통해 뭔가 소중한 것을 배운 것 같아서 고마운 마음이 느껴졌다.
-정준영 & 승리 팬인 친구와 함께 굿즈 장례식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굿즈들과 작별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덕질 하는 분들이 꽤 마음아파 하시더라. 그러한 추억과 완벽히 작별한 이후 얻으신게 있다면? "그 덕에 지금의 내가 됐다”라는 영화 속 내레이션처럼 감독님은 이번 작업을 통해 어떻게 변화되었다고 생각하시나?
이 작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뭔가 큰 분노에 사로잡힐 때였다. 영화를 만들면서 내가 왜 그 사람을 좋아했는지 후회가 컸고, 쪽팔렸다. 그런데 내레이션의 말처럼 나는 성장한 부분이 분명 있었다. 그 사람을 좋아했기에 내가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좋아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영화화하면서 알게 되었다. 좋아할 때는 그 사람에게 집중했는데, 영화를 하게 되면서 그 마음이 뭐였을까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누군가를 좋아한 그 마음이 내 인생에서 큰 경험이 된 것이다.

-영화에서 '박사모'를 만나 맹목적인 애정과 연결 짓는 대목이 과감했다. 자칫하면 주제가 산으로 갈수 있어서 부담도 컸을 것이다. 해당 장면의 고충과 취재 장면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면?
사실 영화가 공개되고 나서 그 부분에 대한 의견이 심하게 갈렸다. '쌩뚱맞다'라는 반응이 더 많았다.(웃음) 그런데 내가 영화를 시작한 계기가 문제를 일으킨 연예인들의 팬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박사모'가 생각났다. 왠지 이 사람들이 나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직접 만나러 가보기로 했다. 거기에 모이신 어르신들을 보니 정말 콘서트 팬들처럼 도란도란 모여서 이야기하고 굿즈를 만들어 파셨는데, 그게 우리의 모습과 너무 기시감이 들었다.(웃음) 사실 나도 촬영하면서 겁이 났지만, 나는 우리가 본 것 그대로를 담고 싶었다.
당연히 우리같은 어린 사람들이 그곳을 방문하니 어르신들이 우리를 의심하려고 했고, 핸드폰 배경화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담아서 의심을 안 받으려고 했다. 어쨌든 위기를 잘 모면했고, 그분들의 행사에도 직접 참여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엽서까지 썼는데, 죄송한 마음이 컸다. 사실 나도 그분들을 뉴스에서 접할 때 싫어하고 이해도 할 수 없었는데, 막상 만나보니 그분들이 이해가 갔다. 그분들도 누군가의 팬이었다는 사실을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다 보니 그런 감정이 느껴졌다.
-정준영 사고 기사를 최초 보도한 기자와 과거에 설전을 벌이다 영화 촬영 과정에서 사과한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다. 그런 용기가 참 대단한 것 같은데, 이 장면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갑자기 그 기자분이 생각났다. 대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분에게 있어서 나는 대역 죄인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사실 정준영 보도가 나갔을 때 그분이 많이 공격을 받았다. 그러다 2019년 단톡방 사건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그 기자분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그분을 직접 만나 사과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모습을 영화에 담자고 생각해서 직접 장문의 사과 메일을 드렸다.
이후 인터뷰를 흔쾌히 승낙해 주셨고 내 메일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고 하셨다. 내가 상상한 기자님은 날카로운 이미지였는데, 막상 만나보니 너무 조곤조곤하시고 심지어 누구탓도 하지 않은 정반대의 분이어서 너무 놀라웠다.(웃음)

-<성덕>은 다양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으면 하나?
아까 굿즈 이야기를 하셨는데, 사실 나는 아직도 정준영 굿즈를 버리지 않았다.(웃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그와 관련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안 버렸다. 혹시 몰라서 안 버렸다기보다는 이걸 어떻게 분리수거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웃음) 그냥 버리면 환경오염을 유발하는것 같아서 버리지 않은 거였다. 절대 마음이 남아서 버린건 아니다.(웃음) 이처럼 이 이야기는 나의 실패하고 망한 이야기인 동시에 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이돌 산업이 발전하고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한국의 팬 문화도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에도 팬덤은 여전히 빠순이로 인식되고 있다. 그 점이 너무 불면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팬들이 어떤 생각을 가진 존재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건지를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어떻게 영화 연출계의 길을 걷게 되었나?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방송 쪽으로 가길 희망했다. 그전에도 여러 글을 쓰면서 예능 작가, PD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학교 공부를 하는 시기에 내가 영화의 도시 부산에 살고 있었고, 그때 청소년 영화를 접하게 되면서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카메라와 가까워지려고 했고, 거기서 독립영화를 알았다.
그러면서 주말에 청소년 영화 학교라는 곳에 가게 되었고, 그때 강의를 해주신 독립영화 감독님을 통해 영화를 배우게 되었다. 그러면서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인터넷 강의 보면서 영화도 보고, 평론도 하고, 시나리오도 공부했다. 덕분에 대학을 결정할 때도 영화쪽으로 하게 되었다.

-감독님에게 영향을 준 영화인이 있다면?
너무 많다. 제일 좋아하는 감독을 언급하자면 에드워드 양, 아네스 바르다 감독님인데, 시기에 따라서 좋아하는 감독과 영화도 새롭게 추가되고 있다. 그리고 홍상수 감독님 영화도 좋아한다. 그리고 장 뤽 고다르, 오즈 야스지로 감독을 참 좋아한다.
-영화를 보면 감독님의 어머님이 등장하시는데, 참 재미있고 멋진 분이시다. 어머님은 어떤 분이신가?
맞다. 내가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엄마가 나를 자유로운 영혼으로 놔두었다. 아무런 터치를 안했기에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던것 같다. 우리 엄마가 항상 이런 말을 했다.
세연아 엄마가 경제적으로 지원은 못해주지만, 정신적으로 지원해 줄게"
라고…(웃음) 이처럼 경제적 지원대신 과도한 관심과 애정속에 살고있다.(웃음)
-앞으로 어떤 연출자의 길을 걷고 싶으신가?
10년에 한편씩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닌, 꾸준히 만드는 영화 감독이 되고 싶다. 사실 이 영화는 엉망이라는 생각을 자주했다. <성덕>이 정말 잘된 작품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결국 차기작을 해야 알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성덕' 오세연이 아닌 '영화인' 오세연이 되고 싶다.
- 감독
- 오세연
- 출연
- 오세연
-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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