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올라 에어컨 틀기 무서워" 찜통 고시원 벗어나 지하철 피신

이지안(cup@mk.co.kr) 2023. 5. 2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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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두려운 에너지 취약계층
고시원 복도에 둔 공용에어컨
낮 30도 육박해도 가동 안해
쪽방촌 월세·관리비 40%↑
"취약계층 맞춤 지원책 시급"

◆ 에너지요금 후폭풍 ◆

최근 기자가 방문한 서울 영등포구의 고시원 내부. 방마다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아 입주자들은 선풍기로 여름을 버틸 준비를 하고 있다. 이지안 기자

"지하철을 타면 에어컨이 나오잖아요. 오늘 낮에도 소요산 끝까지 갔다가 지금 집에 돌아오는 길입니다."

서울의 낮 기온이 섭씨 27도까지 올라간 지난주 오후. 서울 영등포역 인근 고시원에 거주하는 박 모씨(52)는 초여름 날씨에 더위를 피해 지하철로 피신했다고 전했다. 그가 사는 고시원에는 공용 복도에 벽걸이형 에어컨 2대가 설치돼 있지만 아직 가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박씨가 사는 고시원은 월세 30만원으로, 개인 방에는 냉방기가 설치돼 있지 않다. 고시원 복도에 공용 에어컨 2대가 설치돼 있지만 냉방기가 가동되는 때는 여름철이 돼서야 그나마 한낮 시간대 잠시뿐이다. 해당 고시원 총무는 "에어컨은 6월 중순부터 틀 예정"이라며 "최근 전기요금이 올라 (에어컨을) 많이 사용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낮에 2~3시간 정도만 틀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9일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전기요금이 전년 대비 약 30% 인상되면서 서민층과 사회복지시설 거주자 등 에너지 취약계층의 고통이 한층 가중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여름은 평년보다 더 더울 것으로 예상된다. 예고된 무더위에 에너지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덜어줄 정부 대책이 추가로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올 2분기 전기요금 인상분이 지난 16일부터 반영되기 시작한 가운데 요금 고지서가 나오면 취약계층의 생계비 부담이 그만큼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쪽방촌에 사는 주민들도 이번 여름이 두려운 건 마찬가지다. 대표 쪽방촌인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거주하는 윤용주 동자동사랑방 공동대표는 예전에는 한여름에 에어컨을 틀어도 평소보다 7만~8만원 정도 더 내면 됐는데 올해는 10만원 이상은 내야 할 것 같다"며 "이 지역 월세가 25만원 선인데 최근에는 가스요금, 전기요금이 죄다 올라 비싼 곳은 35만원까지 인상됐다"고 말했다.

어린아이들 또한 온도에 민감한 대상 중 하나다. 온도에 취약한 어린아이들을 위해 냉방조절을 필수로 해줘야 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또한 오른 전기요금으로 인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어린이집은 사회복지시설에 해당돼 전기요금을 30% 감면받기는 하지만 줄어드는 원생 수와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인해 전기요금이 부담된다는 입장이다.

강원미 한국가정어린이집연합회 회장은 "어린이들이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가정어린이집은 대부분 방마다 에어컨이 설치돼 있다"며 "32평(105.78㎡) 기준으로 여름에 전기요금이 보통 한 달에 40만원 정도 나오는데 올여름은 이보다 훨씬 많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실제 전기요금이 오르며 요금을 제때 납부하지 못하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주택·일반용 전기요금 체납액(납기일 기준 2개월 경과 체납 고객 대상)은 704억2000만원으로 조사됐다. 전년 동기(635억3000만원) 대비 10% 가량 늘어난 수치다.

공공요금 인상으로 큰 부담을 느끼는 집단은 차상위계층인 것으로 파악됐다. 양다영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공요금 인상 시 차상위계층으로 불리는 중위소득 30~50% 구간 가구의 부담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조사 결과 소득계층별 부담 증가 정도가 가장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공공요금은 전기요금과 도시가스요금으로, 소득 1분위 가구의 부담이 소득 10분위 가구보다 2배 이상 크다"고 설명했다. 양 부연구위원은 "공공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에너지 취약계층이 최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이들에 대한 가구별 맞춤형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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