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에게 당연한 자리는 없다"…김태군·전상현의 초심

부상 복귀 후 공수에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KIA 포수 김태군. <KIA 타이거즈 제공>

그라운드는 전쟁터다. 매일 승리를 놓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한편으로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무대이기도 하다.

상대가 적이기도 하지만 생존을 위해 한솥밥을 먹는 동료 그리고 내 자신도 적이 된다.

살아남는 자가 ‘강자’가 되는 곳.

KIA ‘안방마님’하면 우선 떠오르는 선수는 김태군이다.

한준수가 뛰어난 타격과 패기로 입지를 넓히고 있지만 포수는 경험이 중요한 포지션이다.

2024시즌 한국시리즈 마지막 순간을 장식하기도 했던 ‘우승 포수’이자 산전수전 다 겪은 19년 차 베테랑 포수 김태군이 “낯설었다”고 말했다.

김태군에게 낯설게 다가왔던 것은 ‘재활군’이었다.

그는 지난 7월 1일 SSG와의 경기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4-4로 맞선 연장 10회 1사 만루에서 대타로 들어갔던 그는 유격수 앞으로 공을 보낸 뒤, 병살타를 막기 위해 전력 질주를 했다.

하지만 공이 먼저 1루에 도달했고 KIA는 끝내기 상황을 놓쳤다.

경기는 연장 11회 6-6 무승부로 끝났다.

중요했던 순간에 제 몫을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속 그는 낯선 재활군 신세가 됐다.

김태군은 “한 달 정도 빠진 게 처음이었다. 재활 장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몰랐다. 낯설었다”라며 재활 시간을 돌아봤다.

7월 20일 삼성전을 통해서 김태군은 다시 그라운드를 밟았다.

복귀전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한 그는 다음 경기에서는 크리스 페덱을 상대로 스리런을 날리면서 ‘천적 탄생’을 알렸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타석에서 뜨거운 타격감을 보여 준 김태군은 안방에서 역시 노련하게 또 공격적으로 투수들을 끌고갔다.

김태군은 복귀전에서 시라카와 케이쇼과 호흡을 맞춰 승리를 합작했고, 이어 네일의 승리 순간에도 함께했다.

쉽게 얻은 승리는 아니다.

6회까지 마운드를 지킨 네일은 10개의 피안타와 2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위기는 있었지만 6이닝 3실점으로 등판을 끝낸 네일은 12-3 경기의 승리투수가 됐다.

결과는 해피엔딩이었지만 과정은 치열했다.

강하게 투수를 이끌어 가면서 위기를 넘고 넘었던 김태군은 “네일도 짜증을 내더라”면서 웃었다.

공교롭게도 김태군이 빠져 있는 사이 KIA 선발진이 흔들렸다.

김태군의 분석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다. 고비는 무조건 오는데 그 시점에 고비가 온 것 같다”였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다고 하지만 경험 많은 포수의 부재가 아쉬웠던 시간이었다.

그런 흐름 속 사람들은 당연한 김태군의 자리를 생각했다.

김태군의 생각은 달랐다.

김태군은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 프로는 ‘내 자리’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 ‘누군가의 자리’ 이렇게 하면 나이, 연차 없이 퇴보하게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못질도 하고, 시멘틀도 발라주고, 영양분도 줘야 한다면서 웃던 김태군.

버티는 자가 강자인 그라운드이고, ‘잠시’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팀 전력과 선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되는 걸 수 없이 봤던 터다.

절대는 절대 없는 곳이라 천하의 김태군도 걱정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도 했다.

그가 머물렀던 함평 챌린저스 필드에는 꿈만으로 버티는 이들이 많다.

꿈이 정말 꿈으로 끝나기도 하는 곳. 매년 1군 무대 한 번 밟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선수들이 쏟아진다.

화려했던 무대에서 꿈을 이뤘지만 부상으로 긴 어둠 속에서 지내는 이들도 많다.

김태군은 보이지 않는 목표를 위해 피땀눈물을 쏟는 후배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됐다. 그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김태군도 가장 먼저 경기장에 나와 가장 늦게까지 준비를 하고 훈련을 하는 선수다.

그런 김태군이 뒤에 있던 후배들을 보면서 “행복하게 야구를 했더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초심으로 간절함으로 다시 그라운드를 마주하게 된 이유다.

18일 한화전을 통해 5시즌 연속 10홀드를 달성한 KIA 전상현. 통산 9번째 기록이다. <KIA 타이거즈 제공>

KIA 필승조 하면 우선 떠오르는 선수는 전상현이다.

불펜은 변화가 많은 자리다. 꾸준하게 오랜시간 자리를 지키는 게 쉽지 않다. 그곳에서 전상현은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150㎞가 넘는 강속구를 보유한 것도 아니고, 상대를 압도하는 체격의 소유자도 아니다.

하지만 전상현은 어느 자리에서든 전상현답게 역할을 해낸다.

이의리가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한 뒤 언급한 이름, 전상현이기도 했다.

8월 11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2점의 리드를 지키고 승리를 확정한 뒤 이의리는 전상현을 떠올렸다.

이의리(왼쪽)가 첫 세이브를 기록한 뒤 전상현에게 느낀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여울 기자

이의리는 “형들 떠올리면서 어떻게 했지 라는 생각으로 했다”라며 “상현이 형을 보면 멋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 올라가든 침착하고, 멀티를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전상현을 이야기했다.

모두 다 인정하는 전상현이지만 부상으로 오랜시간 자리를 비우고 있던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말대로 야구, 특히 불펜은 하면 할수록 어렵다.

그리고 내 자리가 비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전상현이라는 마운드 중심이 빠진 상황에서도 KIA 불펜은 어떻게든 돌아갔다.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상현은 “내 자리라고 하기 그렇지만 태군이 형이 이야기했듯이 프로는 누군가 빠지면, 누군가 자리를 차지하는 게 당연하다”라며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내가 없었을 때도 팀을 잘 돌아갔다. 내가 쫓기는 입장이었다”라고 떠나있던 시간을 이야기했다.

마음과 다르게 더딘 회복세는 전상현의 마음을 급하게 했다.

전상현은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려서 많이 힘들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길어지다 보니까 힘들고 그런 부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힘든 시간이기는 했지만 전상현도 김태군과 마찬가지로 ‘초심’을 생각하게 됐다.

화려한 조명 아래 바쁘게 돌아가는 1군 그라운드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듣고, 느꼈다.

전상현은 “어린 친구들도 많이 봤다.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또 생각하게 됐다. 다시 나를 돌아보는 시기였던 것 같다”고 언급했다.

김태군과 전상현을 빼놓은 KIA 전력을 생각할 수 없지만, 부상을 겪은 두 사람은 자신이 없는 그라운드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졸였다.

어쩔 수 없는 경쟁의 무대에서 당연한 생각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당연하지 않게 자신의 자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오늘의 김태군과 전상현을 만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