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통수 맞은 사전청약자, 돈벼락 맞은 LH
하루 2만명 가까이 이용하는 역이 허허벌판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파주 운정신도시의 운정중앙역입니다. 수도권 최대 호재로 꼽힌 GTX-A 역이 왜 아직도 이런 모습일까요?
‘GTX-A 뚫린지가 언젠데’ 아직도 허허벌판 운정중앙역

9월 말 찾은 운정중앙역 주변에는 아무것도 완성된 게 없습니다. 합쳐서 조 단위로 낙찰됐던 땅에는 풀만 무성할 뿐입니다. 9개월 전 시운전때 들러서 본 모습이랑 뭐 하나 달라진 게 없죠. 사실 예정대로 사업이 추진됐었다면 이 곳에는 6개 고층 주상복합이 내외부마감을 하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근 4년 전, 이 곳의 주상복합부지 6개는 민간 시행사 두 곳에 팔립니다. 3·4블록은 DS네트웍스라는 곳이 가져갔고, 1·2·5·6블록은 인창개발이라는 곳이 매입했죠.
GTX-A 초역세권인 위치인데다 주택시장 시황도 좋았기 때문에 경쟁이 굉장히 치열했습니다. 시장의 반응도 뜨거웠죠. 민간사전청약 조건으로 나왔기 때문에 6개월 뒤에 민간사전청약이 진행됐는데, 경쟁률이 수십대1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이 주상복합들이 실제로 세워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사업 자체가 줄줄이 취소됐죠. 사전청약을 받아 기다리던 당첨자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습니다.
낙찰가 1조 넘었던 땅, 왜 방치됐나?

이 사업들이 망해버린 이유는 결국 사업성에 있습니다. 시행사들이 땅을 너-무 비싸게 샀거든요. 이 땅들이 민간에 공급된 시기는 2021년 말. 그야말로 집값이 꼭지를 찍은 시점입니다.
자신감이 넘친 시행사들은 어마어마한 금액을 써서 낙찰을 받았는데, 3·4블록은 4,553억 원, 1·2·5·6블록은 총 7,260억 원을 써 냅니다. 이거 공급예정금액 대비 160~181% 수준입니다. 6개 부지 땅값만 1조 1,813억 원에 달한 셈이죠.
물론 앞으로도 계속 호황이었다면 어떻게 사업이 진행됐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후로 부동산 경기가 급락했죠. 엄청나게 비싸게 땅을 산 시행사는 사업을 할 수가 없어집니다.
이 대목에서 부동산을 좀 아시는 분들은 ‘분양가상한제 때문에 수익성 발목이 잡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반만 맞는 얘깁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비주거용지에 있었습니다.
공급공고를 보면 알 수 있죠. 당시 LH는 땅을 공급하면서 주거용지에는 캡을 씌워놓고 비주거용지를 경쟁입찰 시켰습니다. 과도한 토지대금을 분양가에 녹여서 비싸게 분양하는 걸 막기 위한 조치죠. 결국 3·4블록의 경우를 따져보자면 261억으로 예정된 땅을 2,303억 원에 가져간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죠? 주거용지 매입가격은 딱 정해져 있으니까 아파트 분양수익은 한정돼 있습니다. 결국 용적률 30% 내외의 비주거시설로 거의 아파트만큼 수익을 내야 되는데 아무리 호황이라도 그게 가능할리가 있나요. 그러니 시공사를 구할 수 없었던 겁니다. 분양가상한제 때문에 수익을 내기 어려웠다? 맞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취지와 그에 따른 제한이 분명한데 그 땅을 그렇게 비싸게 사면 안됐죠.
사업성이 박살나니 결국 사업은 멈춰버립니다. 2024년 6월에는 3·4블록 계약이 취소됐고, 이듬해에는 1·2·5·6블록도 계약이 취소됩니다. 사업을 하기 싫어서 중도금을 내다 마니까 연체이자만 계속 쌓이게 되는데, 이 연체이자가 계약금을 초과하는 지경이 되자 LH가 계약에 따라 공급계약을 해지해버린거죠.
낙동강 오리알 된 사전청약자… 허무하게 3년 날려

이 사업 관계자들은 희비가 교차합니다. 다들 힘든건 마찬가지였겠지만, 그 중에 제일 황당한 사람은 정해져있습니다. 사전청약자들입니다.
아무리 ‘사전’이고 계약금도 안냈다지만 제도에 따라서 청약통장도 썼는데 아파트 약속이 없는 일이 된 겁니다. 무슨 지주택 같은 사업도 아닌데 시행사의 실패를 함께 짊어지게 된 셈이죠.
대단한 탐욕을 부려서 당한 일이라면 억울하지라도 않았을 겁니다. 사전청약자들은 당시 정부의 ‘공급 시그널’에 순진하게 호응했을 따름입니다. 사실 청약하는 사람 중에 시행사 재무제표를 뜯어보면서 견실함을 평가하고 토지 낙찰가액을 분석하면서 “이 사업, 위험할 수 있겠는데?” 하고 청약할 지 말지 결정하는 사람은 없죠.
심지어 민간사전청약의 경우엔 작년 말까지는 구제책도 없었습니다. 난리가 나니까 비로소 국토부에서 구제방안을 냈죠. 피해자들의 지위를 보장하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그나마 상식적인 조치가 나오긴 했는데, 그래도 이걸로 다 해결됐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날려버린 기회비용은 어쩔 도리도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것만 기다리다가 지난 3년을 허공에 날려버리게 됐습니다. 비대위에서 정리한 내용에 따르면 노부모 부양 가족은 노부모가 돌아가시고, 신혼부부는 혼인기간 7년을 넘어서 애가 초등학교에 가게 생겼다네요.
만약에 그 사이에 파주에서 분양을 받았다면? 좀 일찍 분양 받았으면 이미 입주도 했습니다. 그 사이에 운정3지구에서는 공공분양 3개, 민간분양 13개 단지 분양이 끝나버렸습니다. 재도전의 기회는 없습니다.
2022년 하반기 이후로 조정이 길었으니까 아예 구축을 샀으면 속은 더 편안했겠죠. 당시 1블록이 전용 84㎡ A기준으로 분양가를 6억 8천만 원 정도 예상했었는데요. 같은 해 11월에 운정신도시아이파크 전용 84㎡A는 6억 7천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그냥 여기를 샀으면 3년 동안 전월세를 전전하지 않아도 됐던겁니다.
돈벼락 맞은 LH, 운정신도시에 환원? 글쎄…
사전청약자들의 분통이 터지는 가운데 LH는 노가 났습니다. 돈벼락을 맞았죠. 계약금을 싹 몰취했는데 6개 블록에서만 1,181억 원에 달합니다.
앉아서 3년을 날린 사전청약자들은 LH가 이걸 다 먹는게 맞냐고 화를 내고 있죠. 운정신도시에 어떤 형태로든 환원하는게 맞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LH 입장에선 이걸 쓸 근거가 없습니다. 법으로 정해져있으면 또 모를까 괜한 특혜 시비나 불러올 수 있죠. 차라리 땅장사라는 욕을 먹었으면 먹었지 LH가 적극적으로 호응할 가능성은 없어보입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재공급입니다. 3,4블록은 그나마 활로가 트였습니다. 시티건설이 예정가격 수준에 적절하게 낙찰을 받았죠. 올해 중 본청약이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현장에서는 곧 착공에 들어갈 태세입니다. 문제는 1,2,5,6블록입니다. 인창개발한테 당첨자 명단을 못받아서 재매각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네요.
고진감래 될 수 있을까? 또 한없이 기다려야

그럼 이후를 더 생각해보죠. 이 사전청약자들이 3년 더 기다린다 치면 이게 고진감래가 될까요? 그럴 가능성은 확실히 높습니다. 운정신도시의 금싸라기 땅이거든요.
지금 운정신도시 메인은 힐푸아(힐스테이트, 푸르지오, 아이파크)인데요. 운정중앙역에서 걸어서 다닐만한 거리긴 하지만주복 용지에 비해선 확실히 멉니다. 아이파크 전용 84㎡ 기준 7억원 대 시세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킨텍스원시티 전용 84㎡가 11~12억 원에 거래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운정중앙역 일대 주상복합 전용 84㎡도 현재 기준 10억까지는 기대해 볼 수 있겠죠.
사전청약자 입장에서 좀 열받을만한 부분은 그 사이에 공사비가 올랐다는 점입니다. 같은 집을 더 늦게 받는데, 더 비싸게 주고 사야하죠.
엄청 보수적으로 계산한다 치더라도 3년 사이에 기본형건축비가(2022.9.~2025.9.) 190.4만 원에서 217.4만원으로 올랐으니까, 대충 6억 8천만 원으로 예상되던 집이 최소 7억 3천만 원은 줘야 한다는 얘깁니다. 더 늦게 분양해서 내년에 입주할 운정3제일풍경채랑 우미린더센텀은 5억 5천에 분양했다는 사실은 잊어버리는게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엄청 이득이긴 합니다. 10억대도 넘볼 수 있는 아파트를 7억대, 많아도 8억 초반에 살 수 있을테니까요.
제일 큰 문제는 더 이상 사업을 신뢰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착공도 되지 않은 사업을 믿고 기다리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어쨌든 정부의 공급 시그널을 믿었던 대가로 3년을 날려버린 청약자들이 또 3년을 더 기다리게 생겼네요. 가혹한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