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에서 드러난 미국과 일본의 속내

남문희 편집위원 2024. 5. 9.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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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위대 창설 이래 미군은 유사시 미군 주도의 지휘통제권 확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일본의 반격능력 보유 선언은 미군 중심 지휘권 일체화의 결정적 계기가 되고 있다.
2021년 5월15일 일본 육상자위대와 미국 해병대 군인들이 일본 미야자키현 에비노의 기리시마 훈련장에서 프랑스 육군이 참여한 가운데 3개국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AP Photo

창설 70주년을 맞는 일본 자위대에는 건널 수 없는 루비콘강이 있다고 한다.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 사이를 일컫는 말이다.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선통신의 암호체계를 달리했다. 마치 서로 다른 나라 군대처럼 서로 통신을 하려면 암호 번역이 필요했다. 육상자위대 무선체계는 미군과 연동돼 있다. 해상자위대는 그마저도 안 되어 있었다. 미군이 끊임없이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중국과 일본 군 고위급 간 부정기 모임 때의 일이다. 중국에서 인민해방군 간부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막료장이 통신체계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는 육상자위대와 통신체계가 다르다.” 그러자 중국 인민해방군 단장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는 안심했다. 해상자위대가 중국을 침략하는 일은 없겠다.” 인민해방군이 알고는 있었는데 일본이 확인을 해준 것이다.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 육군과 해군 간의 반목과 비협조는 유명하다. 오죽했으면 도조 히데키 당시 총리대신이자 육군대신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이 겪은 피해 규모를 제대로 몰라 히로히토 일왕이 따로 그에게 알려주었을까. 육군과 해군은 각각 독자적인 지휘체계를 유지했다. 정보 공유도 없어 상대방에 심어둔 스파이를 통해 전황을 파악할 정도였다.

메이지유신 당시 앙숙이었던 조슈번(지금의 야마구치현)이 육군을 만들고 사쓰마번(지금의 가고시마현)이 해군을 만든 이래 벌어진 일이다. 시간이 흘러 지역 간 갈등은 약화됐지만 그 뒤로는 육군과 해군이 나뉘어 대립했다. 그런 대립이 바로 얼마 전까지 계속돼왔다. 중재를 하려 하면 양측 모두 ‘우리는 그만두겠다’고 하는 통에 그동안 미군도 어쩔 수 없었다. 통신체계가 통합된 게 최근 5년 이내라고 한다. 비로소 주일 미군이 자위대와 소통에 지장 없이 연합작전을 펼 수 있었다.

미군을 난처하게 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현 자위대에는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의 카운터파트가 없다. 자위대 서열상 최고위직인 통합 막료장이 총리와 방위 장관의 보좌역에 더해, 미국 통합 참모본부 의장과 인도태평양 사령관의 카운터 파트너를 겸하고 있긴 하다. 엄밀히 말해 통합 막료장은 자위대 최고사령관인 내각 총리를 보좌해 총리의 전략적 지도를 자위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유사시 신속한 판단을 내리고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과도 밀접한 연락체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총리 관저의 빈번한 호출에 응하느라 제대로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리 해리슨 전 태평양사령관은 자위대 통합 막료장 면전에서 “당신은 나의 파트너가 아니다”라며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다고 한다.

군대 보유를 금하는 평화헌법의 영향도 있겠지만 화려한 외양 속에 감춰진 자위대의 실상은 기형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 사병이 없는 하사관 위주 군대라는 점도 특이한 일면일 것이다.

상설 통합사령부 창설, 어떻게 가능했나

자위대를 ‘싸울 수 있는 군대’로 만들기 위한 미군의 노력이 통했는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육상·해상·항공자위대를 총괄하는 상설 통합사령부를 만든다는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반목하여 암호체계도 달리했던 군대가 하나의 지휘체계를 갖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통합사령관의 지휘 아래 실질적인 지휘통제가 가능해질 터이니 그동안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들이 가졌던 불만도 해소될 것이다.

4월10일 워싱턴 미·일 정상회담은 바로 이것 때문에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위대가 상설 통합사령부로 지휘체계를 일원화하기로 한 만큼 그에 상응해 미군 지휘체계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현재 작전지휘권은 없이 주일 미군 지위협정의 운용 조율 등 제한적 역할만 하고 있는 주일 미군사령부에 실질적인 작전권과 지휘통제권을 부여해서 조만간 창설될 자위대 상설 통합사령부와 지휘통제를 일원화하겠다는 게 바로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미국의 속내다.

4월1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AP Photo

지휘통제의 일원화라는 말에 일본 측은 여전히 유보적 태도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야시 관방장관은 이날 회견에서 미·일 정상이 미군과 자위대 지휘통제 연계를 강화하기로 합의한 것과 관련해 “자위대 통합 작전사령부가 미군 지휘통제 아래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자위대 활동은 일본의 주체적 판단하에 헌법과 국내법에 따라 이뤄지며, 자위대와 미군은 독립된 지휘 계통으로 행동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자위대와 미군은 독립된 지휘 계통에 따라 행동한다’라는 말은 기시다 총리가 일본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의 질의 때마다 반복해서 한 얘기다. 그러나 70여 년간 두 국가처럼 운영되던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가 갑자기 통합사령부를 받아들이게 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미·일 간 지휘체계의 일원화 역시 필연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위대의 상설 통합사령부 창설 방침이 처음 공표된 것은 2022년 12월16일 일본 각의를 통과한 안보 3문서에서였다. 이 중 가장 상위법인 ‘국가방위전략’ 가운데 ‘자위대 체제 정비의 방향’ 항목에서 ‘육해공 자위대의 일원적 지휘를 행할 수 있는 상설 통합사령부를 창설한다’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문구 바로 뒤에 ‘육해공 자위대의 각각이 스탠드오프 방위능력의 강화를 행한다’라는 문구가 이어지고 있는 점이다. 즉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문구가 앞뒤로 이어진 셈이다. 그러나 실상 상설 통합사령부와 ‘스탠드오프 방위능력’이라는 말은 동전의 양면처럼 표리관계이자 원인과 결과처럼 한몸의 관계이다.

‘스탠드오프(stand-off) 방위능력’이란 적의 위협권 밖에서 적을 타격하는 원격 공격 능력을 의미한다. 순항미사일이나 기타 장거리 타격체계로 적이 자국을 공격하기 전에 적의 원점을 공격하여 사전에 차단하는 능력이다. 일본이 이때 통과된 안보 3문서에서 보유를 선언한 ‘적 기지 공격능력(반격 능력)’은 바로 이 스탠드오프 방위능력을 주로 활용하여 일본에 대한 침공을 원거리에서 억제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이 앞으로 행사하겠다는 적 기지 공격 능력은 억지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거부적 억지에 해당한다. 징벌적 억지가 전면전을 각오하고 상대방의 대도시 등 민간 시설까지 공격 대상에 포함하는 데 비해 거부적 억지는 주로 군사시설을 타격 대상으로 삼는다. 즉 상대방이 미사일을 쏘면, 초기에 그 원점이 되는 미사일 기지를 원거리에서 타격하고 제압해 상대방의 공격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함으로써 공격을 단념시킨다고 해서 거부적 억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문제는 일본이 보유하겠다는 적 기지 공격 능력의 대상은 일본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해외의 군사기지다. 예를 들어 중국 어느 지역의 미사일 기지가 일본 본토를 공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하자. 이때 정확히 판단해서 대응해야 하는데 일본 자위대의 정보판단 능력이나 표적 설정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부분은 미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일본 내각이 안보 3문서를 통과시킨 지 사흘 만인 2022년 12월19일 일본 지지통신은 “반격 능력에 대한 상대방의 미사일 발사 등 징후나 다른 나라 영역 내 군사 목표 움직임은 미군의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반격 능력 행사의 전제가 되는 상대방 공격 착수의 판단을 잘못하면 국제법이 금지하는 선제공격이 될 우려도 부정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일체화하는 가운데 전수 방위(방어를 위해서만 무력을 사용하는 일) 개념과 모순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떻게 할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고도 덧붙였다.

따라서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와의 긴밀한 정보공유 체계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10월25일 일본 임시국회에 자위대 상설 통합사령부 설치 예산안이 상정됐는데, 설치 목적에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와 조절기능 강화’가 첫 번째로 올라간 것이다.

‘스탠드오프 미사일’ 등장이 낳은 변화

인도태평양사령부와 조절 기능을 강화한다는 말은 일본의 적 기지 공격권이 미국의 통합 방공미사일방위(IAMD) 망에 편입돼 이뤄진다는 것을 뜻한다. IAMD는 쉽게 말해 미사일방위와 적 기지 공격을 믹스하여 모든 항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겠다는 것으로, 미국 측은 IAMD 망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선 미군과 동맹국 군 사이에 ‘끊김 없는(seamless) 융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 ‘융합’의 자위대 측 심장부가 상설 통합사령부라는 얘기다. 이런 구조로 본다면 앞으로 주일 미군사령부의 권한이 어떻게 강화되고 자위대 상설 통합사령부와 외적인 관계가 어떠하든 미군과 자위대 간 지휘 통합의 일원화 내지 일체화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자위대 창설 이래 미군은 유사시 미군 주도의 지휘통제권 확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멀리는 1952년과 1954년 요시다 총리와 미군 측이 맺은 “전쟁이 나면 자위대는 미국 지휘하에 싸운다”는 밀약, 1963년 한반도 유사 상황을 상정한 삼시(三矢) 연구에서 등장한 작전조정소 개념에서부터 최근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2015년 가이드라인에 따른 ‘동맹 조정 메커니즘’ 설치에 이르기까지, 한·미 연합사령부와 유사한 일원화된 지휘체계 구축을 위한 시도를 계속해왔다. 평화헌법에 따른 비판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 정치권에선 이제까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 기지 공격을 위한 스탠드오프 미사일이라는 하드웨어가 지휘통제의 일원화라는 방향으로 소프트웨어를 규정하고 바꿔나가고 있는 것이다.

스탠드오프 미사일이라는 하드웨어 등장에 따른 변화는 미·일 간 지휘통제 영역 이전에 사실상 두 개의 국가처럼 운영되던 자위대 내부 관계와 지휘체계까지 바꾸고 있다.

앞의 ‘국가방위전략’ ‘자위대 체제 정비의 방향’ 내용 중 ‘육해공 자위대의 각각이 스탠드오프 방위능력의 강화를 행한다’라는 문구를 다시 주목해보자. 이 문구에 따라 앞으로는 1000㎞ 이상으로 사정거리가 늘어난 12식 미사일을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가 모두 보유하게 된다. 이 밖에 고속활공탄, 극초음속 미사일, 토마호크, F35 탑재용 JSM, F15 탑재용 JASSM 등을 자위대별로 나눠 갖게 된다. 과거처럼 자위대가 최대 사정거리 200㎞대의 단거리 미사일만 보유하던 시대가 아닌 것이다. 타국과의 전쟁을 상정한 무기체계에서 무기 하나하나의 공격 목표와 시점 등에 대한 일원화된 통제가 필요해졌다.

또한 지휘체계 역시 통합 막료장 같은 애매한 포스트가 아닌 실질적인 통합사령관의 역할이 긴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결국 2022년 10월 통합 억지와 통합 방공미사일방위를 주 내용으로 한 일련의 전략문서 발표를 통해 미국이 추구해온 대중 신냉전 체제 구축이 미군 지휘통제와 일원화된 자위대의 등장으로 반환점을 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문희 편집위원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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