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은 당연한 구직자 평판조회, 회사 모함 판치는 한국만 논란
전·현직 종사자 기업평가 정보 취득은 당연시, 기업의 구직자 평가정보 시도는 색안경
최근 기업들 사이에선 채용 전 지원자에 대한 평판 조회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소한의 사전 검증 작업조차 ‘뒷조사’로 보는 시각이 많다 보니 채용에 더욱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의도적으로 회사를 옮겨가며 피해를 끼치는 인물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조차 공유되지 않아 기업들의 시간적·경제적 피해가 상당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보 부족으로 인한 채용 실패는 기업은 물론 소속 직원, 나아가 전체 고용시장의 악재로 평가된다.
대(大)이직 시대 직장인 찬반 뜨거운 쟁점 평판 조회 ‘독일까 약일까’
‘경력직 지원자의 평판 조회’를 둘러싼 찬반 논란은 직장인들의 해묵은 이슈 중 하나다. 찬반 양측 모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보니 오랜 기간 결론 없이 논쟁만 지속돼 왔다. 우선 찬성 측에서는 지원자의 주장을 다 믿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실제 업무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평판 조회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펼쳤다.
한 취업포털에서 639개사 인사채용 담당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판 조회가 필요한 이유로 △인성, 인간관계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 29.15% △이력서, 면접만으로는 정확한 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20.99% △이력서(경력기술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20.12% 등을 꼽았다.
반대 측이 주장도 아예 근거가 없진 않다. 같은 조사에서 ‘불필요하다’고 주장한 이들은 그 이유로 △평판을 우려해 회사에서 부당한 일이 있어도 말 못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생긴다 32.16% △소수에 의한 평가라 오히려 정확하지 않다 31.6% △이직 소문이 퍼질 위험이 크다 19.73% △이력서, 면접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5.68% 등을 언급했다.
특히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방식으로 평판 조회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반대 측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같은 조사에서 평판 조회를 경험해 본 적 있다는 이들 중 ‘평판 조회 실시 여부’를 ‘안내받지 못했다’는 이들이 34.29%에 달했다. ‘지원자 동의 없이 진행’(31.61%)은 평판 조회를 경험한 이들이 가장 불편하게 여겼던 사안이다.
평판 조회 찬성 쪽으로 기우는 무게추 “부족한 스펙, 평판으로 채울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이직이 활발해지면서 팽팽했던 찬반 논란이 서서히 찬성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반대의 목소리가 존재하긴 하지만 ‘적절한 절차’를 전제로 한 평판 조회에 대해서는 “꼭 나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면접, 스펙 등 부족한 부분을 극복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특히 많았다.
얼마 전 경력직으로 이직에 성공했다는 강모 씨는 “대학이나 학위가 다른 경쟁자에 비해 뒤처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합격 통보를 받아 조금 놀랐다”면서 “채용 과정에서 평판조회에 동의를 했는데 아마 그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평판 조회라는 것에 대해 다소 부정적 인식이 있긴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무기가 됐다”며 “이미 해외에서는 평판조회가 거의 필수처럼 여겨지는 만큼 우리나라도 널리 활용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경력직은 물론 신규직 채용에 있어서도 평판 조회가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경력직의 경우 헤드헌팅 업체 등을 통해 평판 조회를 의뢰하는 식이고 신규직은 대학 시절 담당교수 등을 통해 대략적인 정보를 취득하는 경우가 많다. 한 헤드헌팅 업체 관계자는 “최근 미국 기업의 한국 인재 수요가 늘면서 평판조회 의뢰도 부쩍 늘었다”며 “시장이 커지면서 평판 조회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업체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평판 조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채용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평판 조회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목소리도 일부 존재했다. 고위 임원과 달리 중간 관리자급의 경우 주변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평판 조회를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니 기업 입장에선 적절한 인재를 찾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종국엔 채용을 포기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스펙은 화려하지만 주변 평판이나 업무 스타일 등에서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뢰로 많다”며 “팀워크가 중요한 부서나 팀에 그런 사람들이 중간 관리자로 들어오게 되면 사실상 그 부서나 팀은 식물 상태가 된다고 봐도 무방한데 개인의 성격이나 성향은 서류나 면접에서 파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아직 일반 사원의 평판 조회에 있어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보니 기업 입장에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결국 중간 관리자급의 경력직 채용을 포기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퇴직자의 근거 없는 주장에 상처 받는 회사와 소속 직원들 “최소한의 방어 장치 필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에서도 평판 조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최근 SNS, 온라인 커뮤니티, 채용 플랫폼 등을 통해 전·현직자의 기업 평가 정보가 퍼져나가고 있는데 기업 입장에선 부정확한 정보를 퍼뜨려도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평판 조회가 활성화되면 최소한 사실과 다르거나 부정확한 정보를 퍼뜨리는 것만큼은 스스로 자제할 것이라는 게 중소기업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한 중소기업 인사팀에 재직 중인 황수진 씨(36·여)는 “예전에 상습 지각에 업무 시간에 개인적인 볼 일을 보는 등 근태 문제가 많았던 한 직원이 있었는데 얼마 안 가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했다”며 “그런데 그 사람이 나간 후 한 기업평가 플랫폼에 우리 회사에 대해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와 직원들 전체가 황당했던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그 사람이 게시물을 올렸다는 물적 증거는 없지만 시기적으로나 글의 내용적인 부분, 또 기존에 회사 직원들과의 카톡 대화에서 쓰는 문체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했다”며 “평판 조회가 일상화되면 악의적 비방이나 근거 없는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주장 때문에 회사나 소속 직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례가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