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도 권력의 눈치를 본다…‘세월호 10주기 다큐’ 중단한 KBS

한겨레 2024. 2. 2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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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와 4·16연대 등 관계자들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불방 결정을 비판하며 방영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왜냐면] 이재연 | 방송작가

시간 참 빠르지요. 한국방송(KBS) 다큐인사이트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가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했을 때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벌써 10년이나 지났구나….’ 그 뒤에 생략된 많은 말들,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모를 말들 속에는 아마 이런 말도 담겨 있었을 겁니다. ‘아이들이 살아있었다면, 이제 3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겠구나.’

저도 그랬습니다. 10여년 전, 저는 시민들이 모여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업사이드 다운’에서 글·구성을 맡았습니다. 세월호에 타고 있던 성빈이, 고운이, 세호, 다영이가 어떤 아이들이었는지 아버지들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대형 참사의 희생자 중 한 명이 아닌, 하나의 우주였음을 남기고자 했지요. 또한 세월호 참사는 개인이 벌인 악행이 아니라, 선체 증축을 돈의 논리로만 생각했던, 무리하게 화물을 실었음을 알고도 넘어간, 책임지지 못할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전원 구조되었다는 오보를 낸, 눈 뜨고 아이들을 잃어야만 했던 우리 모두의 실책이라 생각했습니다.

10년이 지났습니다. 이인건 피디에게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반갑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마음 아픈 그 사건을 다시 돌이키고 싶지도 않았고, 자료화면과 슬픈 음악으로만 이어지는 영상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10주기를 추모했다는 명분만 세우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됐습니다. 하루하루 온갖 사건이 터져 나오는 대한민국에서 언제까지 감성팔이를 할 거냐는 일부 사람들의 비난이 잘못되었다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은 이기적이니까요. 해소되지 않은 슬픔을 반복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습니다.

생각이 바뀐 건 피디가 건넨 책을 읽은 후였습니다. 세월호 생존자 유가영씨가 쓴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에는 오늘을 살아내는 인간의 생명력이 담겨 있었습니다. 여느 20대 중후반의 청년들처럼 고민하고, 좌절하고, 우울해하다가도 다시 힘을 내보려 아등바등하는 평범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 이야기가 세월호 10주기를 맞는 우리에게 일종의 위로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함께 나눌 만한 가치가 있다고요.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방송을 미루어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의문이 생긴 건 그래서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8주기를 맞은 재작년,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 바 있습니다. 9주기를 맞은 작년엔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유가족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확정한 판결에 대해 상고를 포기하며 ‘국가 책임이 명백히 확인된 이상, 빨리 피해 회복을 확정하는 게 맞다’고 말했지요. 세월호 참사는 정치적 입장을 불문하고 모두 함께 기억해야 할 상처임을 명시한 것이라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10주기를 앞둔 지금, 갑자기 총선을 이유로 방송을 미루라니요.

한국방송 다큐인사이트는 프리랜서 방송 작가인 제게도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성여 1, 2부’,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에 관하여’ 등을 만드는 과정에서 10초짜리 인터뷰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에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지, 오해를 불러일으키진 않을지 토론하고 서로를 설득했습니다. 집요하게 논의하는 과정에서 신뢰가 쌓였습니다. 미디어가 범람하는 시대, 오랫동안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조심스럽게 결론을 도출해 나누고자 하는 노력이 자랑스럽고 소중했습니다.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도 그렇게 제작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일방적인 통보로 제작 중단 사태를 맞이했습니다. 유가족들은 10년 전처럼 방송사 앞에서 눈비를 맞으며 촛불 시위를 합니다. 저는 이 일이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랍니다. 새파란 생명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사고가 있었다고, 끔찍한 사고였음에도 슬퍼하는 데 눈치를 봐야 했다고, 심지어 10년이 지난 후에도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 입을 틀어막혔다고 기록되길 바랍니다. 작가는 글을 써야 작가라고 하지요. 방송을 통해 말하던 저는, 방송을 잃게 된 지금 이렇게나마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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