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에 CJ 최연소 임원, 얼굴 마사지 빠져 12억원 들여 개발한 것
피플파이 롤링핑거 개발노트
해외에 진출한 우리나라 배우들의 사진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한국에서 촬영된 사진보다 다리는 짧게, 얼굴은 크게 보이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한국에선 사진 얼굴 크기 보정이 흔한데 외국에선 그대로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유독 얼굴 크기에 민감하다. ‘얼굴이 작다’는 말을 칭찬으로 쓰고, 얼굴이 큰 것을 콤플렉스로 여기는 이가 많다.
최근 급속도로 성장하는 뷰티 디바이스 시장에서도 ‘얼굴 크기’는 화두다. 피플파이 김왕기 연구소장(61)은 2015년부터 얼굴 마사지 기기를 개발했다. 손으로 문지르듯 피부 깊숙한 곳까지 떨림을 전해줄 수 있는 기기 ‘롤링핑거’를 만들었다. 김 소장을 만나 뷰티 디바이스에서 느끼는 손맛의 매력을 들었다.
◇마사지사의 손맛 구현한 피플파이 롤링핑거
피플파이 롤링핑거는 뭉친 얼굴 근육을 풀어주는 뷰티 디바이스다. 고주파, LED 등 간접적인 방법 대신 물리적인 운동에너지를 얼굴에 직접 전달해 준다. 5개의 돌기가 있는 펜타롤러가 회전하면서 얼굴 근육을 운동시키고 처진 볼살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리는 원리다. 눈가 주름 완화, 어깨·목 근육 마사지에도 활용할 수 있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세안 후 마사지할 부위에 전용 마사지 크림을 도포하고 롤링핑거의 전원을 켜 가져다 대기만 하면 된다. 수동 기구처럼 손을 위아래로 움직일 필요가 없다. 얼굴에 대고만 있으면 롤러가 알아서 움직이며 피부를 마사지해 준다. 회전 속도를 1~3단계로 조절할 수 있고 생활 방수가 가능해 사용 후에는 물로 세척하고 보관하면 된다.
◇마케팅계에 한 획을 그었던 과거
1986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인사팀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뗐다. 이후의 경력은 온통 마케팅이다. 식품·생활화학 분야의 마케팅을 담당하다 2002년 39살에 CJ 최연소 임원이 됐다. 2005년에는 CJ마케팅실 총괄을 맡았다. “즉석밥의 선두 주자인 ‘햇반’부터 ‘다시다’, 세탁세제 ‘비트’, 화장품 ‘식물나라’ 등을 알리는 CF의 기획·제작에 참여했습니다. 소비자와 대중의 호응을 얻어 대한민국 광고대상을 받기도 했죠.”
마케터로 지나온 시간 동안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노하우의 공유’였다. “선배들에게 배우거나 경험으로 익힌 노하우들이 많은데 후배들에게 이어지지 않는 게 너무 아쉬웠어요. 매주 목요일마다 천리안 홈페이지에 하고 싶은 말들을 썼습니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케팅 노하우와 사례들을 생각나는 대로 끄적였죠. 이 글이 입소문이 나면서 출판사 담당자의 귀에까지 전해졌나 봐요. 그때 썼던 글을 엮어 ‘목요일의 목어’라는 제목의 마케팅 에세이집을 출간했습니다.”
마케팅 업계에 한 획을 그었던 그의 현재 직함은 연구소장이다. 피플파이 느낌연구소에서 아이디어 상품의 기획·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제1원칙은 온리원(Only one)입니다. 이미 알려진 제품엔 관심이 없어요. 하나를 만들더라도 이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원칙이죠. 그렇게 세상에 내놓은 제품으로는 우리나라 최초 온팩인 ‘허브온팩’, ‘허리온팩’ 시리즈와 움직이는 빨래 건조대 ‘스윙’이 있죠.”
가장 최신작은 얼굴 근육 마사지기 ‘롤링핑거’다. “2000년대 초반에 백화점에서 바디케어 제품 프로모션 행사를 기획한 적이 있어요. 아무리 비싸고 좋은 화장품을 쓰더라도 결국 사람이 손으로 주물러줄 때 가장 확실한 효과를 보더군요. 당시 기준으로 경락 마사지 1회에 10만원대로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시중의 7000원짜리 롤러 마사지기를 써봤지만 사람 손맛은 못 따라오더군요. 롤링핑거는 손맛을 제대로 구현한 마사지기라고 자부합니다.”
◇얼굴 근육 마사지기 롤링핑거 개발노트
1. 머릿속 아이디어를 이미지로 구현
2015년 2월 4일 롤링핑거의 첫 원형스케치를 남겼다.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스케치 하단에 날짜와 각인을 새겼기 때문이다. “이런 기록은 제 오랜 습관입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직접 그림으로 그리고, 주요 기능과 핵심 소재를 써 뒀어요. 첫 스케치가 그대로 완제품이 되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래도 기록 자체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초반에 만들고 싶었던 제품의 본질을 잊지 않게 해 주죠.”
롤링핑거의 본질은 물리적인 마사지를 간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동그랗게 회전하거나 평면으로 회전하는 것, 초음파 진동 등을 활용한 마사지기는 있었어요. 하지만 실제 마사지샵에서 관리받을 때처럼 피부를 물리적으로 끌어올려 주는 기능을 해내는 기기는 없었죠. 이 핵심 가치를 기반으로 스케치를 개선해 나갔습니다.”
2. 나사 모양 하나에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
스케치를 바탕으로 본격 개발에 착수했다. 2023년 5월 첫 시제품 T1으로 작동 메커니즘을 확인하고 롤러의 돌기 개수를 확정했다. “롤러의 돌기를 3개, 4개, 5개로 제작해 봤더니 5개일 때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빠른 마사지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어 개선·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반영해 T2, T3, T4, T5를 차례로 제작했죠.”
모든 부품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이를테면 T3에서 T4로 넘어갈 때 연결부의 끄트머리를 정사각형에서 직사각형으로 바꿨습니다. 실제 환경을 가정해 테스트를 했을 때 정사각형 시제품의 경우 쉽게 마모가 되더군요. 모서리가 원에 가까울수록 금방 깎여나가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죠. 직사각형으로 바꾸니 연결부가 더 단단히 맞물려 더욱 오래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기어 7개의 유격 문제, 작동 시 소음 문제 등을 하나씩 잡아나갔다. “처음엔 기어의 내구성을 이유로 메탈 소재를 고집했는데요. 단단하긴 했지만 소음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었죠. 그렇다고 전부 플라스틱으로 하자니 소리는 부드러워지지만 쉽게 부러질 것 같아 불안했습니다. 결국 7개 중 일부는 메탈, 일부는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다음 그 전체를 덮을 수 있는 덮개를 덧댔어요. 그렇게 최종 버전으로 2023년 12월 초도 생산에 들어갔죠.”
3. 소비자를 만나기 전, 최종 가혹 테스트
롤링핑거와 시너지 효과를 낼 전용 크림인 스키놀로지 크림도 개발했다. “크림을 개발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끈적임’입니다. 롤링핑거가 피부에 잘 미끄러지듯이 굴러가도록 하려면 오래 문질러도 끈끈해지지 않아야 하죠. 더불어 내열성도 확인했습니다. 마찰이 빨라져 온도가 올라갔을 때 경화 변성되지 않는 성분으로만 구성토록 했죠. 6개 후보를 추린 다음 내부·소비자 테스트를 거친 다음 최종 크림을 완성했습니다.”
소비자를 만나기 전 최종 테스트가 남아 있었다. 이름하여 ‘가혹 조건 테스트’. “소비자는 저마다 사용환경이나 습관이 달라요. 어떤 조건에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한 이유죠. 기기 생산 공장에서는 모터 스피드 테스터만 있다고 하기에 직접 테스터를 제작했습니다.”
말 그대로 가혹한 조건을 설정했다. 일반적인 사용 압력은 70g 내외이지만 테스트에서는 이의 4배인 280g 이상으로 설정했다. 그마저도 실험을 거듭할수록 압력이 높아져 최대 410g의 압력이 가해진 경우도 있었다. “테스트 결과 280g 압력에 가장 빠른 속력인 3단계로 설정하고 360회 사용했을 때에도 기어 상태와 소음 상태가 정상임을 확인했습니다.”
4. 제품 알리기 위한 무상 교환 프로모션
얼굴 근육 마사지기 롤링핑거를 완성했다. 1회(5분) 사용 시 1만번 근육을 터치해 주는 펜타롤러를 통해 뭉친 얼굴 근육을 물리적으로 풀어주면서 피부 속 스프링을 복원해 주는 뷰티 디바이스다. 2024년 3월 소비자를 대상으로 기존 사용 기기 무상 교환 이벤트를 열었다. “LED, 고주파, 초음파 등의 원리를 이용한 기존 뷰티 디바이스가 다양한데요.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을 반납하면 롤링핑거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이벤트였죠.”
소비자에게 받은 타 뷰티 디바이스에는 반납한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 반납 일정을 써 붙였다. “언제고 연락이 오면 다시 교환해 드리기 위해서죠.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연락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롤링핑거는 20만원대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2~3배에 달하는 가격의 디바이스를 선뜻 반납한 분들이 많아요. 이런 프로모션을 통해 소비자에게 롤링핑거를 알리고, 소비자는 다양한 뷰티 디바이스를 경험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죠.”
◇10년산 묵은지의 매력
롤링핑거의 개발 비용은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2년간 롤링핑거 외에도 움직이는 빨래 건조대 ‘스윙’ 등 3~4가지 제품을 동시에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 들인 비용은 약 12억원이다. “원형스케치를 그릴 때만 해도 개발은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금형 만드는 데만 2억~3억원이 필요하고 초도 생산비용까지 마련하려면 살림살이가 빠듯했으니까요.”
돌이켜보면 롤링핑거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순간부터 꼬박 10년 뒤에야 세상의 빛을 본 제품이다. 김 소장은 10년이란 시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CJ 마케터 시절 국내 최초 즉석밥인 ‘햇반’도 10년 넘게 잠자고 있던 아이템이었어요. 한참을 아이디어 단계에 머무르다가 마침내 시장에 출시되자, 오래지 않아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죠. 오래 묵은 김치가 더 깊은 맛을 내는 것처럼 롤링핑거도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