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시장 부진에도… 혼자 웃는 탱커선
러·우 전쟁 여파에 겨울 앞두고 강세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 컨테이너선과 드라이벌크선(건화물선) 모두 운임이 고점 대비 4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진 것과 달리 탱커선(액체화물선) 운임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 노선의 운임은 지난해보다 3배까지 치솟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가 중요해지면서 재고 비축 수요가 커진 영향으로 보인다.
22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팬오션은 올해 3분기 건화물선 부문과 컨테이너선 부문 모두 2분기보다 영업이익이 줄었으나, 탱커선 부문은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팬오션의 탱커선 부문은 올해 3분기 연결기준 매출 868억원, 영업이익 356억원을 기록했다. 전 분기보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8.6%, 67.9% 증가했다. 팬오션의 탱커선 사업은 2020년 4분기부터 지난해 4분기까지 5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올해 1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한 뒤 수익성이 지속해서 커지고 있다.
KSS해운의 케미컬선 부문도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61억원으로 집계됐다. 대한해운의 탱커선 부문 역시 올해 3분기까지 232억원의 영업이익을 내 지난해 동기보다 2.6%가량 늘었다. 탱커선은 원유와 석유제품, 화학제품 등을 운반한다. 코로나19 기간 원유와 석유제품 물동량이 줄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엔데믹(풍토병화)과 함께 다시 탄력을 받았다.
4분기 들어서도 탱커선 시장은 활황이다.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운임의 기준으로 쓰이는 중동~중국 노선의 운임 지수(WS)는 이달 현재 112.8이다. 올해 평균의 2배, 지난해 평균의 3배 수준이다. VLCC의 일평균 수익(TCE)도 8만달러를 넘어섰다. 연초엔 매일 적자를 기록했다. 제품운반선 역시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싱가포르 노선의 중형 탱커선(MR) 운임 지수는 33.6으로 지난해 동기의 4배 수준이다. 일평균 수익도 4만달러 선을 회복했다.
탱커선 시장 강세의 배경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첫 손에 꼽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對)러시아 제재를 진행하면서 대체 공급선 찾기가 활발해졌다. 특히 유럽연합(EU)이 가까운 러시아가 아닌 미주 등에서 원유를 공급받으면서 톤마일(화물의 중량과 이동거리를 곱한 값)이 상승했다.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비축 물량을 늘리는 영향도 있다. 중국은 원유 안전재고 비축에 나서면서 이달 말 선적 기준 1100만배럴 규모의 탱커선 수요가 발생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제품을 나르는 중형 탱커선 수요가 지난 8월부터 급증해 운임을 끌어올렸다”며 “최근에는 겨울을 앞두고 대형 원유운반선을 중심으로 운임이 뛰고 있다”고 설명했다.
탱커선 시장의 나홀로 강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를 두고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영국의 해운분석업체 MSI는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조치 완화에 힘입어 2023년 원유 수입량이 7.9%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에 따라 노후 선박을 중심으로 해체량이 늘어, 탱커선 공급량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MSI의 탱커선 해체량 전망치는 ▲VLCC 2022년 595만DWT(재화중량톤수) → 2023년 1416만DWT ▲수에즈막스 2022년 230만DWT → 2023년 506만DWT ▲케미컬선 2022년 374만DWT → 2023년 541만DWT 등이다.
탱커선이 운송하는 원유나 석유제품 등의 수요가 경기에 민감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강세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해운사 관계자는 “당분간 금리 인상이 이어지고 경기 활력도 떨어질 가능성이 커 탱커선 스폿 운임도 결국 꺾일 것으로 보고 있다”며 “불황을 대비해 현금 유동성을 관리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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