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 박물관, 전통과 기술을 만나는 곳
잘 만들어진 자동차라면 무릇 아름다워야 한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한데, 경외감을 느끼기 위해 그 뒤에 있는 메커니즘을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마니아라면 조금 못생긴 자동차라고 해도 그 차의 잠재 능력을 알아본 뒤 '이때의 메커니즘은 지금도 쉽게 따라잡을 수 없지'라면서 우쭐거릴 수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면까지는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자동차를 보여주면 될까? 해답은 다수이지만, 필자는 아우디를 추천하고 싶다.
아우디 박물관은 2000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특이하게 원형으로 다듬어진 박물관 건물은 독일의 건축가인 군터 헨(Gunter Henn)이 디자인했는데, 독특한 형태의 '부가티 아틀리에'를 디자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부분의 면이 유리이기 때문에, 햇빛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 박물관을 열고 들어서면, 다양한 레이스에서 활약하거나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아우디의 자동차들이 그때 모습 그대로 엘리베이터에서 계속 돌고 있다.
박물관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부터 다르다. 층을 누르면, 그 층에 전시된 자동차가 처음 만들어진 연도를 표시한다.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것처럼 숫자가 움직이므로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아우디는 본래 아우디(AUDI), 데카베(DKW), 호르히(HORCH), 반더러(WANDERER)의 4개 회사가 1932년에 합병된 것이기 때문에, 그전에 제작된 모델들은 당연히 각각의 엠블럼을 달고 있다. 그런 역사도 잘 전시해 두고 있다.
대부분의 자동차들은 여러 각도에서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자동차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해 자동차를 반으로 자른 것 같은 모델들도 있다. 독일의 어두운 과거를 담은 군용 모델도 있는데, 모두 그때의 라이프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들이다. 칭찬이나 미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이 어떤 것인지만 알려줄 뿐이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박물관의 역할은 충분하다.
이 박물관은 연간 약 40만 명이 방문한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담은 아우디의 역사를 보고 나면, 박물관 내에 있는 선물 가게에서 아우디의 기념품도 구매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간단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다. 만약 먼 독일까지 왔다면, 반드시 한 번은 잉골슈타트에, 그리고 박물관에 들르기를 바란다. 아우디의 역사와 진화를 감상해도 좋고, 그 아름다운 자태만을 감상해도 좋다. 누구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아우디 프런트 로드스터(AUDI FRONT ROADSTER)
아우디의 역사를 잘 안다고 해도 이 차는 처음 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차는 팔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1935년에 단 두 대만 제작되었고, 살아남은 자동차는 없다. 그러면 이 차는 어디서 왔을까? 아우디가 프레임과 엔진은 갖고 있었고, 당시 촬영했던 사진과 함께 개인 코치빌더에게 복원 작업을 의뢰한 것이다. 그 결과 당시 사람들을 유혹했던 모습으로 복원이 되었고, 그 뒤로 계속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아무리 아우디라고 해도 유실된 자동차는 있는 법이다. 단지 그 모델을 다시 살리느냐 그대로 역사 속으로 보내는가의 차이는 있다.
아우디 100(AUDI 100)
1965년에 아우토 유니온을 완전히 인수한 폭스바겐은 자동차 개발을 금지시켰다. 잉골슈타트 공장의 생산 능력을 이용해 비틀을 만드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우토 유니온의 개발 책임자는 아우디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비밀리에 엔지니어들과 합심해 아우디 100을 개발했다. 결국 폭스바겐은 이 모델의 양산을 승인했고, 현재는 아우디의 운명을 가른 아주 중요한 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파생 모델인 아우디 100 쿠페는 그 디자인도 인정받았고, 독특한 루프 라인은 이후 아우디 A7이 물려받았다.
아우디 A2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자동차지만 이 자리에 소개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아우디가 A8을 통해서 다듬은 알루미늄 차체 기술을 이 차에 듬뿍 적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엔진에 따라 다르지만 공차중량이 1톤이 채 되지 않았다. 1.2ℓ 디젤 엔진을 탑재한 버전의 경우 경유 3ℓ만 있으면 100km를 주행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자동차 자체는 꽤 좋았지만, 알루미늄으로 인해 가격이 높았고 다른 자동차와 플랫폼 공유도 되지 않아 많이 팔리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 차의 디자이너는 여러 브랜드를 거쳐 현재는 현대차그룹에서 일하고 있다. 바로 '루크 동커볼케'다.
데카베 NZ 350(DKW)
아우디 역사에서 데카베는 결코 떼놓을 수 없다. 모터사이클로 검증된 2행정 엔진을 자동차에도 사용했기 때문이다. 1929년 대공황으로 인해 아우디의 고급 차 수요가 급락하자, 데카베는 모터사이클 기술을 응용해 새로우면서도 저렴한 소형 앞 바퀴 굴림 자동차를 만들었다. NZ 350은 그런 데카베의 기술을 끝까지 담은 모터사이클로, 베스트셀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군용으로도 개조되었는데, 혹독한 전장에서 신뢰성 높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NZ 350은 지금도 뛰어난 핸들링 능력을 보여주며, 전 세계 클래식 모터사이클 수집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데카베 F 89 L 슈넬라스터
(DKW F 89 L SCHNELLASTER)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우디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 진행됐다. 신뢰성이 높으면서도 기본적인 것은 갖추고 저렴한 모델이 필요했다. 복구도 필요했으니 밴이 이상적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차가 바로 이 '슈넬라스터'다. 객실 앞쪽에 있는 앞바퀴, 공기역학을 고려한 보닛, 앞바퀴 구동 방식과 횡방향으로 배치한 엔진 등으로 인해 현대적인 미니밴의 선구자로도 불린다. 슈넬라스터는 1954년부터 자회사를 통해 스페인에서도 생산됐고, 이로 인해 데카베는 스페인에서 '밴'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다. 한국에서 '봉고'가 대명사가 된 것과 비슷하다.
아우디 스포츠 콰트로
아우디가 사륜구동으로 유명해지도록 도와준 것이 바로 '아우디 콰트로'다. 그리고 이를 한층 더 역동적으로 다듬은 모델이 바로 '아우디 스포츠 콰트로'다. 1983년에 처음 공개됐고, 1984년부터 1985년까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단 220대만 만들었다. 아우디는 생각 외로 이 차를 간단하게 만들었는데, 아우디 80 세단과 아우디 콰트로를 적절하게 혼합했기 때문이다. 탑재한 5기통 엔진은 알피나(Alpina) 출신의 엔지니어가 다듬었는데, 최고출력 302마력을 발휘하면서도 24시간 동안 7300rpm을 계속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NSU RO 80
아우토 유니온에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곳이 바로 NSU다. RO 80은 합류 전 제작한 모델인데, 공기역학적으로도 우수했던 것은 물론 당시 혁신이라고 여겨졌던 로터리 엔진(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반켈 엔진'이라고도 한다)을 탑재했다. 지금까지 아우디가 사용하고 있는 슬로건인 'Vorsprung durch Technik(기술을 통한 진보)'은 이때부터 등장한 것이다. 아쉽게도 로터리 엔진은 당시 수명이 짧았고,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정작 로터리 엔진의 명성을 드날린 곳은 NSU가 아니라 일본의 마쓰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