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희지·김정희·민영환···‘종이를 뚫는 필력’은 어떻게 가능한가
“전법필법·신경필법이 핵심. 서예 공부에 도움되길” 신>
서예를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잘 쓰고’ 싶어 한다. 스스로 만족하고 나아가 작품을 접하는 모두가 감동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서예에서 ‘잘 쓴다’는 말은 흔히 ‘기운생동’으로 상징된다. 동양의 전통 미학에서는 예술작품이 마치 살아 있어 움직이는 듯한 기운생동을 중요시했다. “글씨에서 기운이 느껴진다” “필력이 좋아 종이를 뚫고 들어간다” 등의 표현이다.
최근 서화감정가·서예가인 이동천 박사(57)가 <신(神) 서예>(라의눈)를 출간했다.
서예사에서 명필의 대명사이자 ‘서성’으로 불리는 중국의 왕희지를 비롯해 주의장, 저수량 등은 물론 신라시대 김생,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와 허목·이광사·강세황·민영환 등의 필법을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책에서 역대 서예 대가들이 남긴 작품과 자료 등을 연구·분석한 결과 이들의 필법에 비법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 비법을 저자는 크게 전번필법(轉飜筆法)과 신경필법(神經筆法)으로 요약한다.
전번필법은 말 그대로 붓을 굴리면서 뒤집는다는 의미다. 굴리고 뒤집으면서 붓의 앞면과 뒷면을 모두 사용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서예 대가들의 글씨에서 전번필법이 활용된 흔적들을 분석해 ‘붓면 도형 표시’라는 도판을 통해 설명한다. 붓을 어디에서 어떻게 굴리고 뒤집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전번필법만 잘 활용하더라도 글씨의 기세가 다양하게 변화하고 또 아름다움을 드러낸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경필법은 붓을 잡은 사람의 신경이 붓끝까지 연결된 것처럼 서로 통해야 된다는 의미다. 서예가의 정신적 집중력을 말하는 것이다. 전번필법이 붓을 굴리고 뒤집는 기술을 말한다면 신경필법은 서예가의 정신성을 강조하는 셈이다. 저자는 “붓글씨를 잘 쓰려면 대가들의 글씨를 많이 보고 또 부지런히 써봐야 한다는 것은 진리이지만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며 “무작정 대가들의 글씨를 연습하기 보다 도대체 어떻게 쓰여졌는지 분석하고 그 비법을 알면 더 잘 쓸 수있지 않겠느냐”며 책을 쓴 취지를 밝혔다.
책은 예서로 유명한 ‘사신비’(169년), 행서의 전형으로 잘 알려진 왕희지의 ‘난정서’(353년), 강건하고 힘있는 주의장의 ‘시평공조상기’(498년), 저수량의 ‘안탑성교서’(653년) 등의 글씨를 분석하는 재미도 있다.
저자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붓을 잡았고, 중국 유학을 통해 서화감정학과 고서화 보존처리 등을 배웠으며 중앙미술학원에 감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랴오닝성박물관 연구원을 지냈으며 이후 명지대 대학원 등에서 서화감정을 강의했다. 그동안 <미술품 감정비책> 등을 펴냈다. 특히 1000원권 지폐에 있는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를 비롯해 유명 작품들을 위작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낳기도 했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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