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계엄군에 맞서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압도적이고 강력한 불의를 눈 앞에 두었을 때 특히 국가 권력같이 도저히 개인이 싸워서는 될 것 같지 않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천안문의 탱크맨처럼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로이 바우마이스터 하버드대 심리학자에 의하면 '내가 나를 향해 내리는 부정적인 평가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나를 부끄러워하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매일이 지옥이므로)'이 사람들로 하여금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한강 '소년이 온다' 중
압도적이고 강력한 불의를 눈 앞에 두었을 때 특히 국가 권력같이 도저히 개인이 싸워서는 될 것 같지 않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천안문의 탱크맨처럼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어도 이들에게 싸워서 이길 수 있겠냐는 계산은 저항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 경우 보통 이길 수 없지만 그래도 행동하게 만드는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보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리스크를 지면서도 싸울 가치가 있는 중요한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지는 싸움을 하는 이유는 질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중요한 무엇이란 시대에 따라 또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다. 우리는 다 각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조금 또는 많은 위험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가치관이 달린 문제라고 해도 위험하면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이득일 것 같지만 사람이라는 존재는 어떤 가치관을 확립한 이상 거기에 맞게 살아가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 같고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회의감이나 죄책감에 시달리게끔 설계되어 있다.
마크 리어리 듀크대 심리학자에 의하면 자아의 주된 존재 이유 중 하나가 '이렇게 우리에게 그렇게 행동해도 되겠냐'며 자기 성찰/비판적인 잔소리를 해대는 것이다. 결국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떳떳하기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나 자신을 의심하고 캐묻는 자아의 비판적인 말들로부터 비교적 쉽게 자유로워지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고작 그런 이유로 위험을 감수하나 싶기도 하지만 이는 한편으로는 양심의 가책, 내적 질책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로이 바우마이스터 하버드대 심리학자에 의하면 '내가 나를 향해 내리는 부정적인 평가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나를 부끄러워하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매일이 지옥이므로)'이 사람들로 하여금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주된 원인 중 하나다.
나를 부끄러워하는 타인과는 절교하면 그만이지만 나를 부끄러워하는 나와는 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지옥을 피하기 위해 마치 자아의 스위치를 꺼버리듯 의식을 파괴하는 것이 극단적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후회’나 ‘부채감’ 등으로 영원히 고통받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은 나를 내적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위험이 존재하는 상황과 별개로 평상시에 투표를 통해 주권을 행사하는 행동 역시 투표를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키는 행동으로 본 사람들이 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투표에 더 많이 참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한편 사람들이 대체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지키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은 어떤 중요한 가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서서 변화의 바람이 불 것임을 알려주기도 한다. 여전히 희망이 있는 이유다.
Maffly-Kipp, J., Holte, P. N., Stichter, M., Hicks, J. A., Schlegel, R. J., & Vess, M. (2023). Civic hope and the perceived authenticity of democratic participation. 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 14(4), 419-427. https://doi.org/10.1177/19485506221107261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