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네 반찬을 5년 동안 날랐는데.." 지하주차장에서 본 며느리 모습에 돌아섰다

자식이 결혼해 따로 살아도 엄마의 마음은 늘 자식의 밥상에 가 있습니다. 바쁘게 사는 아들 부부가 끼니라도 잘 챙기길 바라며 반찬을 만들어 나르는 어머니들이 많습니다.하지만 그 정성이 받는 쪽에서는 전혀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5년 동안 아들네에 반찬을 날랐던 한 어머니가 지하주차장에서 목격한 장면을 전해 드립니다.

반찬 가게를 하던 어머니

인천 부평에 사는 홍순덕 씨는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그녀는 부평시장에서 20년 동안 반찬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순덕 씨의 깻잎장아찌와 멸치볶음은 시장에서도 소문난 맛이었고, 단골손님들이 멀리서도 찾아올 정도였습니다.순덕 씨는 그 가게로 외아들 성민 씨를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나물을 데치고 장을 담그던 손은 어느새 마디마디가 굵어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들이 "엄마 반찬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라고 말할 때면 모든 고생이 잊혔습니다.5년 전 아들이 결혼했습니다. 며느리 배수연 씨는 대기업에 다니는 깔끔한 성격의 여성이었습니다. 상견례 자리에서 며느리는 "어머님 반찬 솜씨가 좋으시다고 들었어요"라며 웃었습니다. 순덕 씨는 그 말이 무척 반가웠습니다.아들 부부는 송도의 신축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렸습니다. 둘 다 맞벌이라 늘 바빴고, 밥은 주로 배달 음식으로 해결한다고 했습니다. 순덕 씨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쓰였습니다.그 무렵 순덕 씨는 가게를 정리하고 은퇴했습니다. 시간이 많아진 그녀는 아들 부부를 위해 반찬을 만들어 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것이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주 목요일의 반찬 보따리

그날부터 순덕 씨는 매주 목요일마다 반찬 보따리를 들고 송도로 향했습니다. 김치, 장조림, 나물무침, 멸치볶음까지 대여섯 가지 반찬을 정성껏 만들어 통에 담았습니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길이었습니다.아들 부부가 회사에 있는 시간이라 순덕 씨는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아들 차 옆에 반찬을 두거나, 경비실에 맡겨 두고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며느리도 "어머님, 감사해요. 정말 맛있어요"라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며느리의 문자는 점점 짧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순덕 씨는 며느리가 바빠서 그러려니 생각하며 반찬 나르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가끔 아들이 조심스럽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엄마, 너무 힘드시면 안 하셔도 돼요." 순덕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엄마는 하나도 안 힘들다. 너희 밥 잘 먹는 게 엄마 낙이야."그렇게 5년 동안 순덕 씨는 거의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반찬을 날랐습니다. 무릎이 시큰거려 계단을 오르기 힘든 날에도, 한겨울 칼바람이 부는 날에도 보따리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도착한 날

올해 봄의 어느 목요일, 순덕 씨는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오후에 병원 예약이 있어 서둘러 반찬을 전해 주고 돌아올 생각이었습니다. 그날은 아들이 좋아하는 갈비찜까지 만들어 보따리가 유난히 무거웠습니다.지하주차장에 내려서니 아들 차 옆에 며느리의 차가 서 있었습니다. 평일 낮에 며느리가 집에 있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순덕 씨는 반가운 마음에 며느리를 부르려다 걸음을 멈추었습니다.며느리는 쓰레기 분리수거장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한 손에는 휴대폰을, 다른 손에는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습니다. 순덕 씨의 눈에 익숙한 반찬통들이 비닐봉지 사이로 보였습니다. 지난주에 순덕 씨가 가져다준 반찬통이었습니다.며느리는 통 뚜껑을 열더니 안에 든 반찬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그대로 쏟아 버렸습니다. 손도 대지 않은 깻잎장아찌와 멸치볶음이 쓰레기통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순덕 씨는 기둥 뒤에 서서 그 모습을 숨죽여 바라보았습니다.그때 며느리가 휴대폰에 대고 웃으며 말하는 소리가 주차장에 울렸습니다. 순덕 씨가 평생 잊지 못할 말이었습니다.

통화 속에서 들려온 말

"응, 또 버리는 중이야. 시어머니가 매주 갖다 놓는데 냄새나서 못 먹겠어. 시장 반찬 가게 하던 사람이라 그런지 짜고 촌스러워. 그렇다고 오지 말라고 하면 남편이 난리 날 거고."며느리는 통화 상대와 함께 깔깔 웃었습니다. "5년째야, 5년. 우리 집 음식물 쓰레기의 절반은 시어머니 반찬이야. 남편은 엄마 반찬 잘 먹는 줄 알아. 내가 맛있다고 문자만 보내 주면 되거든."순덕 씨는 들고 있던 보따리를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갈비찜 냄새가 보따리 틈으로 새어 나왔습니다. 그녀는 숨을 죽인 채 조용히 뒷걸음질 쳤습니다. 며느리와 마주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순덕 씨는 보따리를 끌어안고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랐습니다. 1층에 내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는 동안 다리가 후들거려 몇 번이나 벤치에 주저앉았습니다. 5년 동안 정성껏 만든 반찬이 모두 쓰레기통으로 향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순덕 씨는 보따리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창밖만 바라보았습니다. 갈비찜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날 그녀는 병원 예약도 잊어버렸습니다.

반찬 보따리를 멈춘 어머니

그다음 주 목요일, 순덕 씨는 반찬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주에도, 또 그다음 주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달쯤 지나자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요즘 반찬 안 보내시네요. 어디 아프세요?"순덕 씨는 잠시 망설이다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성민아, 엄마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힘들구나. 너희도 이제 너희 밥상은 너희가 챙겨라." 아들은 서운해하며 몇 번이나 이유를 물었지만, 순덕 씨는 끝내 주차장에서 본 일을 말하지 않았습니다.아들 부부 사이에 괜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속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순덕 씨는 한동안 부엌에 서는 것조차 싫어져 끼니를 대충 때우곤 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부평시장 옛 단골이 순덕 씨를 찾아왔습니다. "사장님, 그 깻잎장아찌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동네 복지관에서 어르신들 반찬 봉사 하는데 좀 가르쳐 주실 수 있어요?" 순덕 씨는 그 말에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습니다.그 뒤로 순덕 씨는 매주 목요일 복지관 주방에 섭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을 위해 반찬을 만들고, 봉사자들에게 비법을 가르칩니다. 어르신들은 "이렇게 맛있는 반찬은 처음 먹어 본다"며 빈 그릇을 내밀었습니다.

뒤늦게 찾아온 며느리

몇 달 뒤, 아들이 우연히 복지관 소식지에서 어머니 사진을 보고 순덕 씨를 찾아왔습니다. 아들은 그제야 아내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내가 지하주차장에서 어머니와 마주칠 뻔했던 그날, 경비원이 어머니가 다녀간 것을 아들에게 말해 주었던 것입니다.아들은 어머니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엄마, 정말 죄송해요. 저는 5년 동안 아무것도 몰랐어요. 엄마 반찬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맛있게 먹고 있다고만 생각했어요."며칠 뒤 며느리도 혼자 순덕 씨를 찾아왔습니다. 며느리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습니다. "어머님, 제가 정말 못된 말을 했어요. 사실 매주 반찬이 오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그걸 말씀드릴 용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엉뚱하게 뒤에서 흉을 봤어요."순덕 씨는 한참 동안 며느리를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습니다. "부담스러우면 그렇다고 말했으면 됐다. 음식은 버려도 사람 마음은 버리면 안 되는 거다." 며느리는 그 말에 눈물을 쏟았습니다.요즘 순덕 씨는 아들 부부에게 반찬을 보내지 않습니다. 대신 며느리가 원할 때 직접 찾아와 함께 반찬을 만듭니다. 며느리는 어설픈 손으로 깻잎을 한 장 한 장 재우며 말합니다. "어머님, 이제야 이 맛을 알겠어요." 순덕 씨는 그 말을 들으며 처음으로 며느리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자식을 위한 정성이라도 받는 쪽의 마음을 묻지 않으면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받는 쪽 역시 부담스럽다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뒤에서 흉보는 것보다 훨씬 나은 길입니다.주는 사랑도 받는 사랑도 대화가 있어야 오래갑니다. 오늘 이 이야기가 자식 부부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부모님들께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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