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30년 만에 설거지를 하길래.." 고맙기보다 무서워진 이유

결혼한 지 36년이 되었지만 남편이 설거지하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밥을 먹으면 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는 정도였고 집안일은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그런데 올해 예순여덟인 남편이 어느 날부터 저녁만 먹으면 말없이 고무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이 늦게라도 철이 드나 싶었는데 며칠째 같은 모습이 반복되자 이상하게 고맙기보다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설거지만 하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나도 농담을 했다.
"당신 갑자기 왜 이래? 뭐 잘못한 거 있어?"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설거지 한번 하는데 뭘 그렇게 물어."
그런데 며칠 뒤에는 세탁기 앞에서 나를 불렀다.

"여보, 수건은 이걸로 돌리는 거야?"
며칠 후에는 쌀통을 열어보더니 밥할 때 물을 어디까지 넣느냐고 물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이상해졌다.
30년 넘게 관심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집안일을 하나씩 배우고 있었다.

어느 날 냉장고에서 이상한 메모를 발견했다

장을 보고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작은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된장찌개는 된장 한 숟갈. 두부는 마지막.'
그 아래에는 더 이상한 것들이 적혀 있었다.
'세탁기 수건 코스.'
'관리비 매달 25일.'
'아내 약은 아침 식후.'
마지막 문장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몇 달 전부터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었다. 심각한 병은 아니었지만 남편이 내 약 먹는 시간까지 적어놓을 줄은 몰랐다.
그날 저녁 나는 결국 물었다.

"당신 요즘 왜 이러는 거야?"

남편의 대답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편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싱크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병원 다니는 거 보니까 갑자기 겁이 나더라."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며칠만 없어도 나는 밥도 제대로 못 하고 세탁기도 못 돌리잖아."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내가 평생 당신한테 너무 기대고 살았더라고."
남편은 내가 큰 병에 걸렸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어느 날 문득 아내가 항상 자기보다 건강하고 항상 자기 곁에서 밥을 해줄 것처럼 살아왔다는 사실이 무서워졌다고 했다.

"이제 당신이 아프면 내가 당신 밥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그러려면 지금부터 배워야지."
그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설거지 몇 번이 고마워서가 아니었다.
평생 당연했던 내 수고를 남편이 너무 늦게라도 처음 바라본 것 같아서였다.

그날 이후 남편은 저녁 설거지를 자기 일로 정했다. 처음에는 그릇 하나 씻는 데도 물을 한참 틀어놓고 빨래를 잘못 돌려 내 옷을 줄여놓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예전처럼 다시 빼앗아 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게 빠르다"고 말해버리면 남편은 평생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것 같아서다.

이 이야기는 실제 중년과 노년 부부 사이에서 있었던 여러 사연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실화다. 부부가 함께 늙는다는 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평생 돌봐주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서로의 역할이 바뀌어도 살아갈 수 있도록 조금씩 상대의 삶을 배워두는 일이기도 하다.

평생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현실적인 사랑은, 어느 날 당신이 아플 때 내가 당신 몫까지 살아낼 준비를 해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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