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심리적 트라우마의 층위

김은아 근로복지공단 창원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 2024. 12. 2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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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근로복지공단 창원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

요 몇 주 간 가슴이 뛰고, 자다가 자주 깨며, 마음이 불안하다는 지인들이 늘어난 것 같다. 계엄, 통행금지, 심지어 전쟁까지 다양한 정치적 격변기를 경험하며 살아온 연배의 사람들은 지난 비상계엄 선포 이후 개인에 따라 다양한 수위의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횟수가 증가하는 것이 당연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떤 이는 이를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에 비견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경험이 비교적 적은 젊은 연령층에서도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SNS를 보는 게 두렵다” 등 다양한 심리적 외상인 ‘트라우마(trauma)’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정신의학적 설명에 의하면,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은 개인의 감정을 송두리째 압도하고 삶을 위협하는 수준의 사건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재난 폭력 전쟁 사고 등과 같은 극심한 외상 사건에 직면하면 누구나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며 이는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반응이다. 2022년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에 의하면, 한국 청장년은 평균 4.8개의 트라우마를 경험했는데 89.9%가 일생 동안 적어도 1개 이상의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즉, 일생을 살면서 거의 대부분의 청장년은 한번 이상 심리적 트라우마를 경험한다는 뜻이다.

트라우마란 용어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층위로 은유되기도 한다. 사랑의 실패를 두고 ‘첫사랑 트라우마’라고 표현하거나, 학창 시절의 극심한 시험 스트레스를 ‘입시 트라우마’로 칭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는, 사회적 사건을 거론하며 ‘IMF 외환위기 트라우마’처럼 집단적인 기억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했던 후회를 빗대어 XX 트라우마라고 부르는경우도 많은데, 최근 정치권에서 말하는 ‘탄핵 트라우마’라는 표현도 한 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신건강의 층위에서 심리적 트라우마는 이러한 실패에 대한 은유묘사, 후회되는 기억의 표현 이상의 의미인데, 심각한, 삶 전체를 뒤흔드는 치명적인 경험인 경우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진행될 수 있다. 심각한 트라우마는 사건을 경험하는 순간뿐만 아니라 사건이 지나간 후에도 다양한 감정의 변화, 재경험, 회피반응, 과각성(過覺性) 반응 등 심리적 증상을 일으킨다. 드물게는 공황발작, 환청, 기억력 저하, 우울증 등을 보이기도 한다.

일부는 PTSD로 이어져 악몽, 회피 행동, 과민 반응 등의 증상을 동반하여 중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태가 된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전쟁에서 생존한 군인들, 추락이나 절단 등 산업재해를 직접 겪은 노동자와 현장을 보았던 동료들, 사고현장을 직업으로 방문해야 하는 경찰관 등이다. 진료실을 방문한 한 소방관은 매주 매달 맞게 되는 사고현장이 심리적 트라우마가 되어 PTSD가 생겼고, 수년간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불면 무기력 불안 등이 잘 관리되지 않을 때가 있어 어려움을 상담했다. 세월호 사고가 가족 사회에 주었던 타격은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광주민주화 운동에서 피해자의 경험, 가족의 경험, 가해자로서의 기억은 심리적 트라우마로 작동했을 수 있는데, 이번 계엄선포 이후 과거 국가폭력의 심리적 재경험, 과각성 등의 증상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러한 극심한 외상 사건의 경험 후에는 이를 극복하고 다시 예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다수는 회복해 나가지만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의 8~20%에서는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PTSD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의 치료는 크게 심리치료와 약물치료가 있는데. 심리치료는 인지행동치료,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요법, 상담을 통한 정신치료 등이 있다. 심리적 트라우마를 경험한 뒤 일상생활이 힘들거나 혼자서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노동자의 심리적 트라우마 지원을 위해 전국 13개소의 직업트라우마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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