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국가안보실장이라는 극한 직업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6. 5. 31.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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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국가안보실장(왼쪽)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해 7월 워싱턴 DC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최근 만난 미 국무부 직원은 “장관 얼굴 한 번 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직원들이 ‘S’라 부르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대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무실 옆 백악관 사무실에서 일하기 때문에, 막상 제 식구들과는 좀처럼 스킨십이 없다는 것이다. 루비오는 미국 외교의 거목(巨木)이던 고(故) 헨리 키신저 이후 반세기 만에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겸임하고 있다. 직함이 몇 개 더 있어 ‘만능 장관’이라 불리는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총독, 그린란드 주지사 같은 새 모자를 씌우려 하고 있다.

한국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카운터 파트인 루비오 못지않게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한미는 지난해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 등에 합의했다. 국무부 차관이 방한해 2~3일 실무 회의가 열린다. 트럼프가 원잠 건조를 구두로 승인한 건 그 자체로 큰 성과지만 그 뒤로 진도가 생각만큼 나가지 않고 있다. 합의는 지난해 10월 이뤄졌는데 8개월이 지나서야 워킹 그룹을 꾸려 ‘킥오프’ 회의를 열겠다고 한다. 11월 중간선거 전까지 어느 정도는 못을 박아 불가역적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안보실은 몸이 달아 있을 것이다.

보수 정부에서 장관급 대사를 지낸 위 실장이 전전(前前)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캠프에 합류했을 때 외교가의 적지 않은 이가 의외라고 했다. 캠프에서 사실상 홀로 일하며 보고서를 올렸고, 외교·안보 그룹의 실질적 수장 역할을 한 ‘자주파’ 이종석 국정원장 측과 언론 기고를 놓고 미묘한 갈등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지난 총선에서 비례 최상위 순번을 받았고 초대 안보 수장 자리까지 꿰찼으니 적지 않은 서사가 있었을 것이다. 불과 3년 전 “자위대 군홧발이 한반도를 더럽힐 수 있다”고 말하던 이 대통령이 한일 협력에 이만큼 진심이고, 한미 관계도 예상보다 수월하게 관리할 수 있었던 건 팔할이 위 실장 공이라 생각한다.

다만 상대가 있는 외교에 정치의 잣대를 들이대려는 이들이 정권 도처에 있어 한편으로는 그의 입지가 위태로워 보인다. 네타냐후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검토를 지시한 대통령의 ‘사이다’ 발언 앞에서 위 실장은 하마스의 10·7 테러도 짚는 외교관의 언어로 일관했다. 그러자 여권 일각에서 그에게 ‘친(親)이스라엘’ 낙인을 찍으며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북한과 무조건 대화를 외치고, 전작권 전환이 ‘국방 주권을 되찾는 일’이라며 감성적 접근을 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위 실장과 ‘실용 외교’가 설 수 있는 공간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은 앞길이 구만리다. 내부의 무리한 저격과 정치적 공세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극한 직업을 맡은 위 실장과 루비오는 지금의 위기 속에서도 서로에게 위로와 신뢰를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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