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면 주차의 달인 Mrs. 오타니
다저스 주차장의 사진 한 장
오늘 얘기는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한다.
‘뉴스 포스트 세븐’이라는 매체가 있다. 일본의 (온라인) 대중지다. 이곳에 실린 이미지다. 어느 주차장이다. 곱게 자리한 흰색 슈퍼카의 자태가 보인다.
촬영자와 촬영 시기는 표시되지 않았다. 매체는 이곳을 다저 스타디움이라고 소개한다. 선수 전용 주차 공간이라는 얘기다. 차량의 소유주는 오타니 쇼헤이(30)라고 밝혔다.
맞는 것 같다. 일치하는 게 많다. 그는 포르셰의 브랜드 홍보대사다. 이전에도 같은 차종을 모는 모습이 몇 번 목격됐다.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때는 3~4개의 모델을 매일 바꿔 타면서 출근하기도 했다. (전부 자차는 아니고, 홍보용인 것으로 짐작된다.)
주차장 풍경도 그럴듯하다. 벽면에는 번호가 붙었다. 다저스 선수들의 백넘버다. 그 자리에는 17번이 달렸다. 꽤 비싼 번호다. 포르셰 1대를 답례하고 받은 숫자다. 옆자리 57번은 불펜 투수 라이언 브레이저의 등번호다.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그런데 매체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이 차의 운전자는 오타니가 아니라, 부인 마미코(28) 씨라는 추정이다. 즉, 아내가 몰고 와서 세워놓은 것이라는 말이다.
아내는 운전석, 남편은 조수석
괜한 얘기는 아니다. 충분한 근거가 있다. 얼마 전에 목격된 장면이다. 틱톡을 비롯한 몇몇 SNS에서 화제가 된 동영상이다.
어느 날의 퇴근 모습이다. 게시물 올린 사람의 멘션이다. ‘우승 결정 후의 구단 주차장’이라고 돼있다. 시기 상으로 이번 월드시리즈는 아닌 것 같다. 정규 시즌 혹은 디비전 시리즈가 끝난 뒤라고 짐작된다.
부부가 나란히 주차장으로 걸어 나온다. 반려견 데코핀도 함께 있다. 짐이 많다. 양손에 가득 들고, 차 앞에 멈춰 선다.
매체 ‘뉴스 포스트 세븐’의 사진 속 그곳과 같은 장소다. 17번이 벽에 걸린 자리다. 차량 모델은 비슷하다. 다만, 색상이 다르다. 흰색이 아닌 블랙이다. 아마 각자의 취향인가 보다. 이 부부에게 슈퍼카 1~2대가 더 있다고 놀랄 일은 아니다.
우선 뒷좌석에 짐을 싣는다. 그리고 차에 탄다. 그런데 자리가 묘하다. 남편은 조수석 문을 연다. 운전석으로 가서 핸들을 잡는 것은 부인이다. 곧바로 시동이 걸리고,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매체는 이걸 ‘내조’의 영역이라고 해석한다. 피곤한 남편을 위해 아내가 운전석에 앉는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일본인 메이저리거의 부인들이 몇 명 소환된다. 다나카 마사히로(전 양키스)의 아내 사토다 마이 씨는 영양학 관련 자격증을 땄다. 이치로(전 매리너스)의 부인 유미코 씨는 자산관리 회사를 설립했다. 그런 것처럼 마미코 씨가 남편을 충실히 돕는다는 말이다.
결혼 전 생활까지 언급된다. “마미코 씨는 도쿄 시내에서 부모, 조부모와 함께 거주했다. 가족이 타는 메탈릭 블루의 준중형차가 있었는데, 이걸 운전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있다. 꽤 능숙한 솜씨였다는 이웃의 목격담이다.” (뉴스 포스트 세븐 보도 중에서)
운전과 별로 친하지 않은 남편
사실 남편은 운전과 별로 친하지 않다. 일본에서는 면허도 없었다.
돈 문제가 아니다. (니폰햄) 입단 계약금도 1억 엔(약 9억 원)이나 받았다. 보통이라면 차부터 욕심 낸다. 그러나 그는 바른생활 청년이다. ‘오로지 야구에만 전념하겠다’는 올곧음이다.
하긴. 내내 숙소에서 생활했다. 딱히 외출도 없다. 야구장 오가는 일이 전부다. 구단에서 제공하는 버스나 차량이면 충분하다. 혹은 제공되는 택시 티켓을 쓰면 된다. 회사와 계약을 맺고, 구단이 후불하는 방식이다.
2016년 말이다. (퍼시픽)리그 MVP를 수상했다. 부상으로 고급 승용차를 받았다. 그의 나이 22세 때였다. 하지만 시동도 못 걸어봤다. 엄한 아버지의 훈계 탓이다. “진짜 큰 인물이 되거라. 그럼 운전해 주는 사람이 생기게 돼 있다.”
미국 진출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면허가 없었다. 통역(미즈하라 잇페이)이 운전하는 차량을 이용했다. 첫 해 캠프 때는 현대 쏘나타를 타는 모습이 찍혔다(2018년). 덕분에 우리 네티즌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받기도 했다.
면허를 딴 것은 그로부터 2년 가까이 지나서다. 2019년 9월에 무릎 수술을 받았다. 재활 치료 말고는 별로 할 게 없었다. 본인의 말이다. “그때 운전면허증을 따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딱 이틀 준비해서 필기시험을 통과했다.”
이듬해 봄이다.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검은색 전기차(테슬라)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내리는 건 초보 티가 역력한 운전자다. 스마트키 닫힘 버튼을 누르고, 몇 번이나 차를 돌아본다.
미국은 전방 주차, 일본은 후방 주차
일본은 오른쪽이 운전석이다. 차선도 반대다. 미국과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규칙도 다르다. 정지(STOP) 표지판, 빨간 신호에서 우회전 같은 경우는 일단 멈춰야 한다. 좌회전 방식도 생소하다. 웬만한 큰 도로에서도 비보호가 허용된다.
주차하는 법도 다르다. 미국 사람들은 앞으로 들어간다. 흔히 말하는 전면 혹은 전방 주차다. 뒤로 대는 후면(후방) 주차는 아시아권 운전자들이 흔히 쓰는 방식이다. 좁은 공간을 활용해야 하는 환경 탓이리라.
일본도 비슷하다. 처음 운전을 배울 때부터 가르친다. 후방 주차가 예의라는 인식이다. 그래야 공간을 절약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다저스 주차장만 봐도 알 수 있다. 동영상 속 다른 차들은 모두 전면이 벽을 향했다. 이 부부의 차만 반대 방향이다.
운전문화 자체도 낯설다. 미국이라고 모두 신사적이지는 않다. 특히 LA 같은 대도시는 더 하다. 끼어들기, 추월, 과속은 흔한 일이다. 운전 중 분노(Road Rage)는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아무튼.
외지인이, 그것도 여성이, 적응하기 쉽지 않다. 그게 일본 매체의 시각이다. 그래서 더 값진 내조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한동안 그 운전석에는 다른 사람이 앉았다. 일본인이지만, 미국에서 성장했다. 전 통역 미즈하라 잇페이다. 아마 전면 주차에 익숙한 인물이리라.
지금은 다르다. 아내가 핸들을 잡는다. 단정하고, 깔끔한 후면 주차의 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