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 삼척의 해안 절벽 한쪽에는 오랫동안 지도에만 존재하던 공간이 있었다. 군사적 이유로 60여 년간 일반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구간이다. 이곳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19년, 긴 통제의 시간을 지나 초곡용굴촛대바위길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오랜 시간 닫혀 있던 만큼, 풍경은 인위적인 손길보다 자연의 결이 먼저 느껴진다. 데크 아래로는 기암괴석이 이어지고, 그 너머로는 동해의 수평선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걷는 동안 시야를 가리는 구조물이 거의 없어, 바다와 마주하는 감각이 유난히 또렷하다.
93억 원이 만든 660m, 모두를 위한 해안 산책로
이 해안길에는 총 93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길이는 약 660m, 그중 512m는 무장애 데크로 조성됐다. 휠체어와 유모차도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경사와 폭을 최소화한 설계가 특징이다.

단순히 ‘보기 좋은 길’에 그치지 않는다. 중간중간 전망대와 광장이 배치돼 있어, 걷다가 멈춰 서서 바다를 바라보기에 좋다. 빠르게 통과하는 길이 아니라, 천천히 머무는 동선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통제 덕분에 남은 해안의 원형
이 길이 특별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출입 금지’의 역사 때문이다. 1950년대 이후 군사경계지역으로 묶이면서 개발에서 비켜났고, 그 덕분에 해안 지형은 거의 손대지 않은 상태로 보존됐다.

촛대바위, 거북바위, 사자바위로 불리는 암석들은 수천만 년 전 형성된 고생대 지층이다. 삼척지질공원의 핵심 지질 명소로 분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위적으로 만든 풍경이 아니라, 자연이 그대로 남아 만든 장면이라는 점이 이 길의 가장 큰 매력이다.
유리 바닥 위에서 마주하는 바다
탐방로의 끝자락에는 이 길의 하이라이트가 기다린다. 길이 56m, 높이 약 11m의 출렁다리다. 중앙부에는 유리 바닥이 설치돼 있어, 발아래로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을 그대로 내려다볼 수 있다.

다리 위에 서면 바다와의 거리가 극적으로 가까워진다. 긴장감은 있지만 위험하지 않고, 오히려 풍경에 집중하게 만드는 구조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다시 데크길이 이어지며, 원점으로 돌아오는 순환형 동선이 완성된다.
무료 개방이지만, 자연 앞에서는 천천히
초곡용굴촛대바위길은 입장료가 없다. 인근 공영주차장 역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연중 약 20만 명이 찾지만, 길이 짧고 회전율이 좋아 과도한 혼잡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다만 날씨 변수는 꼭 확인해야 한다. 강풍이나 풍랑 특보가 발효되면 안전을 위해 즉시 통제된다. 특히 겨울철에는 바닷바람이 강해 체감온도가 크게 떨어지므로, 방문 전 기상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다.
해안 데크길을 걸을 때 필요한 건강 포인트
이 길은 평탄하지만, 바닷바람과 습기로 인해 체력이 빠르게 소모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겨울 해안 산책 시 방풍 기능이 있는 겉옷과 미끄럼 방지 신발을 권한다. 데크 표면은 비나 이슬에 젖으면 다소 미끄러울 수 있다.

또한 바다 풍경에 집중하다 보면 보행 속도가 일정해져 종아리와 발목에 피로가 쌓이기 쉽다. 중간 전망대에서 잠시 멈춰 스트레칭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관절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짧은 길이지만, ‘천천히 걷는 것’이 가장 좋은 건강 관리다.
닫혀 있던 풍경을 걷는 경험
초곡용굴촛대바위길은 규모로 압도하는 여행지는 아니다. 대신, 오랫동안 허락되지 않았던 공간을 직접 걷는 경험을 선물한다. 60년의 시간이 만든 고요함과, 바다가 바로 곁에 있다는 감각이 동시에 남는다.

동해가 가장 맑게 보이는 날, 굳이 서두르지 않고 이 길을 걸어보자. 길이 끝난 뒤에도 풍경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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