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범죄 공화국…‘신상 박제’부터 ‘인분 테러’까지, 1분이면 된다
피해자는 일상 무너지고 ‘디지털 낙인’ 공포에 갇혀
수사기관은 뒷북 대응…플랫폼 범죄 확산 속도 못 따라가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스마트폰 화면을 몇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범죄는 일상이 된다. 마약을 주문하거나 타인의 신상을 유포하고, 원한 관계에 있는 이웃의 현관문에 오물을 투척하는 행위가 텔레그램 안에서는 하나의 '서비스'로 거래되고 있다. 앱 설치부터 범죄 접촉까지 걸리는 시간은 1분이 채 되지 않는다. 텔레그램은 이제 단순한 메신저를 넘어 범죄의 기획과 실행, 수익 창출이 동시에 이뤄지는 거대한 '범죄 인프라'로 진화했다.
텔레그램을 매개로 한 범죄는 사이버 공간을 넘어 오프라인 테러로 이어지기도 한다. 4월2일 부산에서 검거된 '보복 대행' 일당의 사례는 정보 생산과 실행의 분업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들은 텔레그램을 통해 의뢰인으로부터 표적의 정보를 넘겨받고, 1인당 10만~100만원을 받은 뒤 주거지를 찾아가 현관문에 페인트와 분변을 뿌렸다.
발주자는 원한이 있거나 단순히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은 불특정 다수였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왜 공격 대상이 되었는지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일상의 공포에 직면했다. 디지털 정보가 텔레그램이라는 플랫폼 위에서 상품화되고, 이것이 실제 폭력으로 연결되는 범죄 생태계가 완성된 것이다.

마약왕 박왕열도 텔레그램 통해 범행 지휘
이들이 범행 창구로 텔레그램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압도적인 '보안성' 때문이다. 보안의 핵심은 메시지 전송 구간 전체를 암호화하는 '종단간 암호화(End-to-End Encryption)' 기술에 있다. 암호 해독 열쇠가 서비스 운영사가 아닌 송·수신자의 기기에만 저장되는 구조여서, 업체 측조차 이용자의 메시지 내용을 열람할 수 없다. 수사기관이 업체 서버를 압수수색하더라도 유의미한 대화 기록을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이유다. 텔레그램이 서버 위치마저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는 점도 수사망을 피하는 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같은 폐쇄성은 텔레그램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의 보안 철학에서 비롯됐다. 두로프는 2015년 미국 IT 매체 테크크런치 주최 콘퍼런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IS)가 텔레그램을 테러 모의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지적에 "프라이버시는 테러와 같은 범죄에 대한 두려움보다 궁극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단언했다. 이어 "우리가 아니더라도 IS는 다른 소통 수단을 찾을 것이기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며 '보안 우선주의'를 강조했다.
문제는 텔레그램의 강점인 보안성이 우리 일상의 범죄에 그대로 악용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른바 '마약왕'으로 불리는 박왕열 사건이 단적으로 증명한다. 2016년 필리핀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3명을 살해한 혐의로 수감됐던 박왕열은 2019년 10월 탈옥에 성공하며 도피 생활을 시작했다. 주목할 점은 그가 도주 중 마약 유통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텔레그램에 '전세계'라는 최상위 채널을 개설한 뒤 '그레이엔젤' '하와이' '바티칸 킹덤' 등 하위 채널을 거느리는 방식으로 국내 판매망을 치밀하게 구축했다.
탈옥 직후인 2019년 11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시가 63억원 상당의 마약류 17.7kg을 국내로 밀반입한 박왕열은 국제화물특송 등을 통해 유입한 뒤 '던지기' 방식으로 마약을 유통시켰다. 그는 총 15명 규모의 체계적인 조직을 운영했으며, 총책을 필두로 국내 판매 총책·중간 판매책·계좌 관리책 등으로 역할을 세분화했다.
해외와 국내의 마약 가격 차를 활용하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박왕열은 수감 생활 중 확보한 인맥을 통해 공급망과 유통 노하우를 익힌 것으로 드러났다. 조직원 간 접촉을 철저히 금지하는 점조직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모든 지시는 보안 메신저인 텔레그램으로 하달해 적발될 위험을 최소화했다. 마약 유통 수익을 포함한 전체 범죄 가액은 약 131억원에 달한다.
취재진이 마약 판매상 4명을 접촉하고 텔레그램 채널 10곳에 잠입 취재한 것도 이러한 유통 실태를 직접 검증하기 위해서였다(48쪽 기사 참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00만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강력한 각성제인 필로폰은 물론, 헤로인보다 환각 효과가 50배 이상 강한 펜타닐까지 단 하루 만에 손에 넣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구매 과정에서 중요한 건 오로지 돈뿐이었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신원 확인 절차가 간단한 텔레그램의 특성이 마약 범죄의 온상, 나아가 거대한 암시장을 떠받치는 기반이 됐다 .
이 같은 텔레그램의 익명성은 단순한 거래를 넘어 물리적 폭력을 사고파는 '청부 테러'의 기반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보복 테러를 해주겠다"며 불특정 다수로부터 의뢰를 받아온 총책 정아무개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씨를 포함한 일당 3명은 텔레그램으로 접수된 의뢰에 따라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현관에 인분을 뿌리거나 낙서를 하는 등의 범행을 저질렀다. 이러한 양상은 특정 지역에 머물지 않고 전국 단위로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최근 서울과 경기도 군포·화성·파주 등 수도권은 물론 대구·부산 등지에서도 유사한 범죄 신고가 잇따라 접수됐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복수의 텔레그램 대화방이 이들 범행과 긴밀히 연관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시그널'로 디지털 이민 떠나는 범죄자들
범죄가 이토록 정교한 산업으로 진화하는 동안, 수사 당국의 대응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4월2일 인천 미추홀경찰서에 접수된 신상 유포 사건은 경찰의 미숙한 대응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다. 당시 담당 수사관은 텔레그램을 통해 불법 유통을 하던 조직을 수사하던 중 텔레그램 본사에 수사 협조 메일을 보냈다가 '회신 불가' 답변을 받았다. 경찰청 내 공식 국제 공조 시스템이 있었지만, 이를 몰랐던 탓에 시스템을 활용하지 못하고 독자적으로 나선 것이다. 결국 수사는 시작 한 달 만에 중지됐다.
수사가 공전을 거듭하는 사이, 범죄자들은 채널을 폐쇄하고 흔적을 지울 시간을 번다. 피해자 신고로 확보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이 경찰의 절차적 미숙으로 소진되는 구조다. 수사 역량이 파편화돼 표류하는 동안, 텔레그램 기반 범죄조직은 해외 IP와 국경 밖 서버 뒤에 숨어 활동 반경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수사망의 맹점을 간파한 범죄자들은 플랫폼 이동을 통해 한발 더 앞서가고 있다. 지난해 8월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가 개인정보 보호 정책을 변경하며 수사기관에 협조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히자, 범죄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대안 플랫폼' 찾기가 시작된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현재 '시그널(Signal)' '바이버(Viber)' '심플X(SimpleX)' 등이 유력한 대체지로 거론된다. "시그널은 메시지 자동 삭제 기능이 있고 텔레그램보다 보안성이 높아 마약사범들이 가장 선호하는 메신저로 자리 잡았다." 비수도권 지검 검사의 이 말은 수사기관이 이미 실태를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사기관도 고충을 토로하기는 마찬가지다. 범죄자들이 수시로 계정을 폐쇄하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추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경찰 관계자는 "잠입 수사를 하더라도 사법 공조를 통해 신원을 파악하고 채널이 유지돼야 운영자 검거가 가능하다"며 "방이 수시로 폭파되고 삭제되는 환경에서 실시간 팔로업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전했다.
제도적 뒷받침을 위한 국회 차원의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6월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은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텔레그램을 국내 책임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내용의 이른바 '해외 플랫폼 투명화법'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발의 후 1년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도 해당 법안은 소관 위원회 심사 단계에 묶여 있다. 국회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먼저 접수된 법안들을 순서대로 처리하다 보니 실제 통과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범죄의 진화 속도에 비해 입법과 수사의 시계는 여전히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DM이 쏟아졌습니다"
마약 유통이 사회 전반에 독버섯처럼 퍼지며 간접적 해악을 끼친다면, 이른바 '신상 박제'는 피해자의 삶을 즉각적으로 파괴하는 가학적 범죄다. 디지털 성범죄의 확산세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지난해 4월 발행한 '디지털 성범죄 대응체계 개선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 건수는 2018년 2289건에서 2022년 1만2727건으로 4년 사이에 5.5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피해자 다수는 유포 협박과 유포 불안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의 목소리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성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검사는 "텔레그램 내 성범죄물은 유포 속도가 워낙 빨라 피해자들에게 치명적"이라며 "사진이 순식간에 확산된 상태에서 해당 채널마저 폐쇄되면, 피해자는 자신의 기록이 어디서 어떻게 소비되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지옥에 갇히게 된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신상 박제 범죄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한 피해자와 어렵게 접촉했다. 취재에 응한 A씨의 증언은 텔레그램을 통한 범죄가 한 개인의 일상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갑자기 메시지(DM)가 쏟아졌습니다. 처음 보는 이들이 이미 저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말을 걸어왔습니다. 한 명에게 출처를 물었을 때에야 비로소 '신상 박제방'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제 사진과 이름, SNS 계정까지 낱낱이 공개된 것을 확인한 순간 손이 떨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프라인에서도 누군가 나를 알아볼지 모른다는 공포에, 태어나 처음으로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피해자의 삶이 무너지는 속도에 비해 국가의 시간은 무력할 정도로 느리게 흐른다. 이름과 얼굴이 온라인에 박제되고, 실제 자신의 거주지 현관문에 오물이 뿌려지는 공포는 채널이 삭제된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어 피해자의 곁을 맴돈다. 법은 피해가 쌓인 뒤에야 뒤늦게 따라오고, 텔레그램은 국경 밖에 서버를 두고 책임을 비켜간다. 그 빈틈에서 범죄는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자란다.

텔레그램 수사 '발목' 잡는 해외 서버-가상자산
텔레그램을 이용한 범죄에 대한 수사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는 데는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 텔레그램 서버가 해외에 소재해 사법 공조가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마약 사건 수사 경험이 있는 비수도권 지검의 한 검사는 "텔레그램이 국내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가 아니다 보니, 영장을 발부하더라도 실제 집행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토로했다. 영장 집행 전에 채팅방이나 계정을 삭제하면,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을 통한 익명 거래 방식이 보편화된 점 역시 수사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른바 '마약왕' 박왕열은 2019년 11월부터 2020년 10월경까지 텔레그램 마약류 판매 채널 '전세계'를 거점으로 각종 온라인 채널을 운영하며 약 58억5000만원의 수익을 비트코인 57.4개로 챙겼다. 범죄 수익의 은닉과 세탁이 가상자산을 매개로 해 사실상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텔레그램 기반 범죄에 실효적으로 대응하려면 다층적 접근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수사기관의 법 집행 과정을 최종 판단하는 사법부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다. 지난해 8월14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이아무개씨의 1심 판결문엔 피고인이 텔레그램을 범행 전반에 걸쳐 적극 활용한 정황이 곳곳에 적시됐다. 그는 텔레그램을 통해 공범의 마약 수입 범행에 가담했고, 마약류를 동영상으로 촬영한 뒤 이를 전송하는 데도 텔레그램을 이용했다.
이 때문에 텔레그램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 강화보다 수사기관의 인지 수사를 통한 적극적 개입이 현실적인 대책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텔레그램을 통한 범죄들의 정황은 수사기관이 이미 상당 부분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국정원의 첩보로 해경 마약수사대가 유통책을 검거한 사례도 있다." 마약류 밀수입 및 이른바 '드라퍼(운반책)' 사건을 다수 수임한 김태룡 변호사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국가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양질의 첩보를 입수하는 만큼, 초동수사 단계에서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과 유기적으로 협업한다면 마약 유통책을 조기에 검거할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김 변호사는 국제 공조 수사가 선결 과제라고 제언한다. 그는 "불상의 마약상들은 텔레그램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지 않은 채 전 세계 곳곳에 공급책을 마련해 마약을 공급하고 있다"며 "전 세계적 공조 수사 없이는 국내로 들어오는 마약을 모두 적발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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