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생일이 다가오면 형제 단체방이 먼저 바빠지는 집이 있다. 누가 식당을 예약할지, 케이크는 누가 살지, 용돈은 얼마씩 낼지를 정하다 보면 축하하려고 시작한 일이 어느새 서로 눈치를 보는 일이 되곤 한다.
처음에는 모두 한마음이었다. 하지만 형제들이 각자 가정을 꾸리고 며느리와 사위, 손주까지 생기자 상황은 달라졌다.
결국 한 가족은 “앞으로 엄마 생일은 각자 알아서 챙기자”고 정했다. 모두 편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몇 년 뒤 형제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이기 시작한 데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왜 맨날 나만 준비해?”…큰딸 한마디에 형제 단체방이 조용해졌다

엄마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가장 먼저 움직이는 사람은 큰딸이었다.
식당을 알아보고 동생들에게 시간을 물어보고 케이크까지 주문했다. 생일날에는 엄마를 모시러 갔다가 집에 데려다주는 일도 자연스럽게 큰딸 몫이 됐다.
처음 몇 년은 별말 없이 했다. 그런데 어느 해 동생이 “이번에는 조금 저렴한 식당으로 잡자”고 말하면서 일이 터졌다.
큰딸이 참았던 말을 꺼냈다.
“돈 몇 만 원이 그렇게 아까우면 네가 한번 알아봐. 나는 매년 시간 쓰고 엄마 모시러 다니는 건 안 힘든 줄 알아?”
동생도 기분이 상했다.
“누나가 하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왜 우리한테 그래?”
순식간에 생일 이야기는 사라지고 지난 몇 년간 쌓인 서운함이 단체방을 채웠다.
그날 밤 큰딸이 마지막으로 남겼다.
“내년부터는 각자 알아서 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도 주말마다 일정 있어요”…며느리 말에 아들도 결국 폭발했다

다음 해에도 엄마 생일이 다가오자 장남이 다시 모임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내가 난색을 보였다. 시어머니 생일뿐 아니라 명절과 어버이날, 각종 가족 행사까지 챙기다 보면 쉬는 주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아내가 “당신 형제들 모이는 날마다 왜 우리 가족까지 무조건 참석해야 하느냐”고 묻자 말다툼이 시작됐다.
그 이야기는 결국 형제들에게까지 전해졌다.
누나는 “그럼 오지 말라고 해”라고 했고, 동생은 “이렇게까지 싸우면서 모일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
마침내 장남이 말했다.
“그만하자. 엄마 생일은 각자 편한 날 찾아뵈면 되잖아.”
그렇게 매년 이어지던 엄마의 생일모임이 사라졌다.
처음 몇 해는 정말 편했다.
식당을 정할 필요도 없었고 누구는 오고 누구는 못 오는지 따질 일도 없었다. 돈을 똑같이 냈느냐는 문제로 얼굴을 붉힐 일도 없어졌다.
“엄마, 오늘 뭐 했어?”…전화기 너머 한마디에 아들이 말을 잇지 못했다

몇 년 뒤 엄마 생일날이었다.
아들은 바쁜 일이 있어 저녁이 되어서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생일인데 맛있는 거 먹었어?”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먹었지. 걱정하지 마.”
그런데 잠시 뒤 엄마가 웃으며 덧붙였다.
“동네 빵집에서 작은 케이크 하나 사 왔어. 혼자 먹으니까 며칠은 먹겠더라.”
아들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나는 낮에 전화했고 막내는 며칠 뒤 찾아가기로 했다고 했다. 형제들은 모두 엄마 생일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생일 당일 엄마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들이 누나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잠시 뒤 형제 단체방에 엄마가 예전에 생일상을 앞에 두고 웃고 있던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몇 년 동안 멈춰 있던 단체방이 그날 밤 다시 길어졌다.
다시 모인 이유는 생일상이 아니었다…사라지고 나서야 보인 ‘엄마의 자리’

다음 해 엄마 생일을 앞두고 큰딸이 먼저 단체방에 글을 올렸다.
“이번에는 그냥 같이 밥 한 끼 먹을까?”
예전처럼 비싼 식당을 알아보지도 않았다. 용돈을 얼마씩 낼지 정하지도 않았다.
집 근처 식당 하나를 예약하고 시간이 되는 사람만 오기로 했다.
엄마에게는 당일까지 말하지 않았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는 한자리에 앉아 있는 자식들을 보고 잠시 서 있었다.
“너희가 웬일이야?”
엄마가 웃었다.
그 순간 형제들도 알게 됐다.
몇 년 전 자신들이 없애고 싶었던 것은 엄마의 생일이 아니었다.
누가 더 많이 준비했는지, 누가 돈을 덜 냈는지, 며느리가 왜 안 왔는지, 사위가 왜 먼저 갔는지를 따지는 피곤한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 방식과 함께 가족이 한자리에 앉는 시간까지 없애버렸다.
식사가 끝난 뒤 엄마는 자식들이 계산하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말했다.
“내년에는 비싼 데 오지 마라. 그냥 얼굴만 보면 된다.”
큰딸은 대답 대신 엄마의 외투를 챙겼다.
장남은 식당 밖에서 차를 불렀고 막내는 엄마 옆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몇 년 전 같았으면 누가 얼마를 냈는지가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날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엄마 생일모임을 다시 시작한 이유는 거창한 효도 때문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아무리 모이고 싶어도 그 자리에 엄마를 앉혀놓을 수 없는 날이 온다는 것을, 형제들이 조금 늦게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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