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뇌 통로에서 변이 단백질 차단, 치매 막을 새 길 열리나

이정아 기자 2024. 10. 25.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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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묵인희·김종일, 고려대 정석 교수
장과 뇌 연결하는 오가노이드 세계 첫 개발
알츠하이머병 유발 단백질 이동 밝혀
일러스트=챗GPT 달리3

국내 연구진이 줄기세포를 이용해 장과 뇌를 잇는 미주신경을 오가노이드(미니장기)로 세계 최초로 재현했다. 이 오가노이드를 통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단백질이 미주신경을 타고 장에서 뇌로 이동하는 것도 확인했다. 장에 있는 단백질이 뇌로 가는 길을 막고, 대신 치매약을 뇌까지 전달하면 알츠하이머병을 막을 새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대 의대의 묵인희, 김종일 교수와 고대 기계공학부의 정석 교수 연구진은 지난 22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소드’에 “역분화줄기세포를 이용해 내장 감각신경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사람 대장 오가노이드와 연결했다”며 “세계에서 처음으로 ‘장뇌축 세포 실험모델’을 구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뇌축은 위장관과 중추신경계 사이에서 생화학적 신호가 오간다는 것을 말한다. 연구진은 이를 오가노이드로 구현했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장기와 유사한 입체 구조로 배양한 것으로, 미니 장기(臟器)라고 불린다.

먼저 다 자란 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넣어 발생 시간을 거꾸로 돌려 초기 배아줄기세포 상태인 역분화줄기세포를 만들었다. 줄기세포는 원하는 새포로 자랄 수 있다. 연구진은 역분화줄기세포를 뇌 신경세포와 대장세포로 분화시킨 다음, 이들을 뇌와 장을 잇는 미주신경(迷走神經)과 대장 오가노이드로 만들었다.

연구진은 미주신경 오가노이드와 대장 오가노이드를 연결해 장과 뇌 사이에서 분자들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관찰했다. 장뇌축 세포 실험모델을 구현한 것이다. 연구진은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들이 미주신경을 타고 장에서 뇌로 이동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세포 안팎에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쌓이면서 뇌세포를 파괴해 생기는 질환이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원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면 오히려 신경세포에 손상을 준다.

타우 역시 신경세포의 구조를 유지하는 이음새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지만, 원래 위치에서 떨어져 나와 세포 내부에 쌓이면서 인지 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알츠하이머병 유발 유전자로 알려진 APOE4를 가진 사람은 이들 단백질이 장뇌축을 오가는 양이 더 많았고 이동 속도도 빨랐다. 장에 있는 알츠하이머병 원인 단백질이 미주신경을 따라 뇌로 가 조직을 파괴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전에도 학계는 장뇌축에 대한 연구를 했다. 대부분 연구는 혈류에 주목했다. 하지만 뇌에는혈뇌장벽(血腦障壁·Blood Brain Barrier)이 있어 커다란 분자가 뇌로 들어가지 못한다. 혈액을 통해 알츠하이머병 원인 단백질이 장에서 뇌로 갈 수 없다는 말이다.

묵인희 교수 연구진은 장뇌축을 연결하는 미주신경에 주목했다. 미주신경을 통해 뇌는 장 운동을 촉진하는 신호를 보내고, 장은 뇌에 필요한 호르몬이나 영양분을 올려 보낸다. 병의 원인 물질이 되는 아밀로이드 베타나 타우가 미주신경을 타고 장-뇌간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새로운 형식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개발할 길을 열었다. 묵인희 교수는 “연구를 하다 보니 미주신경이 뇌에 도달하는 부위에 혈뇌장벽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며 “알츠하이머병 약물을 미주신경을 통해 보내면 혈뇌장벽에 걸리지 않고 뇌까지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묵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타우 같은 물질이 뉴런(신경세포)에서 뉴런으로 퍼져나가는 경로도 확인했다”며 “이 경로를 이용해 치료제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약물을 뇌에 보내지 않고도 장에서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는 방법도 나올 수 있다. 묵 교수는 “장에 있는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을 없애면 뇌로 다시 올라가는 양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 Methods (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92-024-024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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