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베팬알백] ④ 김동주 잠실구장 첫 장외홈런 이야기

『두산 김동주(24)가 잠실구장 개장 이후 공식경기 첫 장외홈런을 기록, 파워배팅의 진수를 보여줬다. 김동주는 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fn.com 2000 프로야구 롯데와의 홈경기에서 1-1로 맞서던 3회 1사 1루에서 기론의 두 번째 볼을 강타, 좌측 지붕을 완전히 넘기는 150m짜리 대형 홈런포를 터뜨렸다.』 <연합뉴스 2000년 5월 4일자>
2000년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초로 평양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국·내외적으로 최초의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야구 역시 그랬다.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되고 SK 와이번스가 인천을 연고로 새롭게 창단돼 첫 시즌을 맞이했고, 시드니올림픽에서는 한국야구가 사상 최초로 올림픽 메달(동메달)을 획득하는 새 역사를 쓰기도 했다.
야구팬들이 2000년 야구의 추억을 떠올릴 때,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최초의 역사가 있다. 바로 두산 베어스의 거포 김동주가 기록한 잠실구장 최초 장외홈런이다. [베팬알백-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시즌2-두산 베어스 시대’ 4번째 주제는 2000년 5월 4일 그날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 최기문, 기론 그리고 김동주가 만났을 때
“요즘 감 좋더라.”
“에이~, 왜 그러세요.”
“던질 데가 없어~.”
2000년 5월 4일 잠실구장. 롯데 선발 포수 최기문은 두산 4번타자 김동주가 타석에 들어서자 농담처럼 한마디를 툭 던졌다.
둘은 절친한 사이였다. 최기문이 1996년 OB 베어스에 1차지명돼 먼저 입단했고, 김동주가 2년 뒤인 1998년 1차지명 선수로 OB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다. [베팬알백] ③장에서 설명했듯이, 최기문이 1998년 10월 23일 롯데 왼손투수 차명주와 트레이드되면서 헤어지게 됐지만 둘은 1년간 베어스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돈독한 정을 나눴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에서 사사로운 정이 개입할 순 없다. 최기문은 어떻게 해서든 상대 4번타자 김동주를 잡아야만 했다. 더군다나 3회초 롯데가 먼저 1점을 뽑고도 3회말 돌아서자마자 동점을 내준 터였다. 두산 선두타자 정수근이 롯데 선발투수 에밀리아노 기론을 상대로 우중간 3루타를 치고 나간 뒤 장원진이 우전 적시타를 때려 1-1 동점이 됐다. 1회 2루타를 날린 3번타자 타이론 우즈가 3구 삼진으로 물러났다.
여기서 김동주를 맞닥뜨렸다. 김동주는 입단 3년째를 맞이해 완벽한 선수로 기량이 무르익고 있었다. 실제로 2000년에 생애 처음으로 30홈런과 100타점 고지(31홈런-108타점)를 넘어섰다. 타율도 0.339로 2위(1위는 현대 박종호 0.340)를 차지할 만큼 장타력과 정교함을 갖춘, 클러치히터로서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한 2000년이었다. 골든글러브(3루수 부문)를 처음 탄 해이기도 했다.

“기론도 2000년 초반 롯데 에이스에 가까울 만큼 공이 좋았어요. 그런데 김동주 페이스도 한참 좋았던 시기로 기억해요. 데이터상으로 몸쪽에 약점이 있는 걸로 돼 있었고, 그래서 바깥쪽보다 몸쪽 바짝 붙이는 공으로 승부하려고 했었죠.”
당시 롯데 포수였던 최기문은 “20년도 넘은 일이지만 그날 그 상황만큼은 기억이 생생하다”며 복기를 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기론.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외국인 투수였다. 보통 외국인 선수라면 위압감이 느껴져야 하지만, 다소 동정심을 유발하는 마른 체격과 외모의 소유자. 메이저리그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미국 마이너리그와 독립리그에서 활약하던 투수였다. 1999년 퇴출된 마이클 길포일을 대신해 부랴부랴 롯데에서 연봉 4만 달러에 영입했던 대체 외국인 선수였다.
남들처럼 번듯한 선발 보직도 받지 못했다. 첫해에는 24경기에 등판했지만 선발(5경기)보다 주로 불펜에서 대기하며 마운드의 마당쇠 역할을 했다. 때론 패전처리로 나서기도 했다. 그러면서 5승(3구원승)1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3.30을 기록했다. 당시 “같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펠릭스 호세의 말동무만 해줘도 롯데는 본전 뽑는다”는 말이 있었을 만큼, 기론은 외국인 투수로서 존재감이나 위압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1999년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하면서 인생 역전. 삼성과 플레이오프 7차전까지 혈투를 벌인 가운데 기론은 시도 때도 없이 등판해 ‘고무팔’을 휘둘렀다. 한국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롯데가 한화에 1승4패로 물러났는데, 그 유일한 1승의 승리투수가 바로 기론(3차전 구원승)이었다.
그러면서 2000년 롯데와 재계약에 성공했다. 연봉도 두 배나 뛴 8만 달러. 가난한 집안의 15남매 중 7번째 아들로 태어난 기론은 선발투수로 거듭났다. 구속은 140㎞를 갓 넘는 수준이었지만, 양상문 투수코치의 지도 아래 스프링캠프에서 체인지업을 더욱 날카롭게 가다듬은 뒤 4월까지만 3승1패를 거두며 롯데 에이스로 맹활약하고 있었다.

◆ 장외홈런이 터지던 순간
타석에 등장한 김동주는 여차하면 방망이를 휘두를 기세였다. 당시 키 180㎝에 100㎏의 거구. 허벅지 둘레가 웬만한 사람 허리와 맞먹는 30인치. 두산의 특급 외국인타자로 자리 잡은 타이론 우즈가 “리노(Rhino·코뿔소)”라는 별명을 붙였을 만큼 김동주의 파워는 남달랐다. 당시 우즈가 유일하게 인정하던 한국 타자였다.
초구는 볼. 최기문은 가냘픈 몸매로 마운드에 서서 사인을 기다리는 기론에게 손가락 하나를 펼쳐 보이며 2구째 공을 몸쪽으로 바짝 붙이라는 사인을 냈다. 기론은 순박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긴 고무팔을 휘둘렀다.
아뿔싸. 몸쪽이긴 했지만 홈플레이트 보더라인으로 바짝 붙이지 못했다. 공이 몸쪽에서 약간 가운데 쪽으로 몰렸다. 게다가 높은 코스였다. 먹잇감을 포착한 ‘코뿔소’의 방망이가 바람을 갈랐다.
“딱!”
방망이에 맞는 순간, 타구는 둔탁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미사일처럼 날아갔다. 왼쪽 파울폴 한참 위로 지나가는 초대형 타구. 모두의 시선이 잠실의 검은 밤하늘에 하얀 점을 그리며 사라지는 유성을 뒤쫓았다.
그러나 공이 어디까지 날아갔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포수 최기문도, 투수 기론도, 양 팀 덕아웃의 선수단도, 기자들도, 타자 김동주마저도…. 야구 중계방송에서 타구 궤적을 찾는 데 이골이 난 카메라맨도 공을 놓치고 말았다.
‘혹시?’ ‘설마? ’장외홈런?’…이라고 추측만 할 뿐.
잠시 후, 3루 선상에서 타구를 쫓던 3루심이 오른팔을 빙글빙글 돌렸다. 홈런이라는 신호. 이때가 저녁 7시25분이었다.
김동주는 환호하며 그라운드를 돌았다. 스코어는 3-1.

“나이스 배팅!”
롯데 포수 최기문은 김동주가 홈플레이트를 밟는 순간 오히려 축하 한마디를 건넸다. 포수를 하면서 그렇게 엄청난 비거리로 날아가는 홈런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롯데 김명성 감독(작고)이 덕아웃에서 뛰쳐나왔다. “파울이 아니냐”는 항의. 당시엔 비디오판독 시스템이 없었다. 신사다운 풍모로 좀처럼 항의를 하지 않는 김 감독이지만, 워낙 중요한 승부처였기에 항의 시간이 길어졌다. 심판진과 4분간이나 옥신각신. 결국 판정이 번복될 수 없자 7시29분에 덕아웃으로 철수했다.
“사실 방망이에 맞는 순간 공이 사라져 버렸어요. 속으로 ‘이게 뭐야?’ 했죠. 홈런은 홈런인데 설마 장외? 잠실구장 외야 관중석 맨 뒤를 보면 담장 사이에 공간이 있어요. 처음엔 그 사이로 지나간 게 아닌가 싶었어요. 제가 포수로 앉아서 기념비적인 홈런을 몇 개 맞았는데 2003년 이승엽 56호 홈런(투수 이정민)도 있었고, 김동주 장외홈런도 빼놓을 수 없죠.”
최기문은 이제는 추억이 된 그날의 장면을 되새기며 미소를 지었다.
“감독님이 나오셔서 심판들한테 항의를 하다가 나중엔 저한테 ‘파울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렸어요. ‘홈런 맞습니다’라고. 포수 위치에서 보는 게 정확한데, 파울폴 한참 위였지만 안쪽을 지나갔어요. 마지막에 왼쪽으로 휘어지면서 사라지더라고요. 그러자 감독님도 덕아웃으로 들어가셨죠. 솔직히 홈런 맞은 건 아프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동주가 홈에 들어올 때도 제가 ‘나이스 배팅’이라고 인정해줬어요.”
문제는 기록원들이었다. 타구가 잠실구장 밖으로 사라져 버린 것. 곧이어 장외홈런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1982년 잠실구장 개장 이후 장외홈런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엔 요즘 같은 과학적인 거리 측정 시스템이 없었다. 그날 잠실구장 기록을 담당한 KBO의 이종훈 김태선 공식기록원은 공식기록지에 ‘150m’를 적어 넣었다.
잠실구장 홈플레이트에서 구장 건물 바깥쪽까지 거리(구장외측간거리)가 123.268m. 외야스탠드 지붕의 높이는 19.058m. 이를 토대로 추정 비거리를 그렇게 뽑았다.
아무튼 KBO 역사에서 공식 기록지에 홈런 비거리가 150m로 새겨진 것은 역대 4번째였다. 원년이던 1982년 4월 8일 MBC 청룡의 선수 겸 감독 백인천이 OB전에서 동대문구장을 넘기는 장외홈런으로 처음 추정 비거리 150m를 기록했다. 이어 1987년 10월 27일 삼성 장효조가 잠실구장에서 펼쳐진 OB 베이스와 플레이오프 5차전 때 오른쪽 외야 관중석 상단에, 1997년 8월 1일 삼성 양준혁이 사직구장에서 펼쳐진 롯데전 때 오른쪽 스탠드 맨 꼭대기에 꽂히는 홈런으로 비거리 150m를 기록한 바 있다.
즉각 언론과 팬들이 의문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동주의 잠실 장외홈런이, 장효조와 양준혁의 외야 관중석 상단에 떨어진 홈런 비거리와 어떻게 같을까’라는 상식적인 물음. 어쩌면 기록원의 목측으로 홈런 비거리를 뽑는 일도 훗날엔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과 낭만으로 남을지도 모르지만 그땐 그랬다.

◆ 김동주가 말하는 장외홈런의 추억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김동주는 2013년을 끝으로 은퇴한 뒤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김동주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어린 아마추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장외홈런을 친 뒤 23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나 그날의 손맛과 홈런 궤적은 그도 잊을 수 없다.
김동주는 “지금도 그날의 느낌이 살아난다”며 웃더니 기억의 나이테 속에 켜켜이 저장된 퍼즐 조각들을 맞춰나갔다.
“그해 기론은 롯데 에이스급이었어요. 공이 좋았어요. 저는 그 시절 전형적으로 잡아당기는 풀히터(pull httter)여서 당시 타격 훈련을 할 때도 오른쪽으로 밀어치는 연습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요. 근데 그 타석에서는 몸쪽을 노리고 있었어요. 기론이 몸쪽 승부를 잘하는 투수였거든요.”
그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맞는 순간 홈런이라고 직감할 만큼 제대로 맞았다는 느낌은 들었는데, 처음엔 파울인지 페어인지 몰라 1루로 뛰어나가지도 못했죠. 당시 3루심이 강광회 심판이었을 거예요. 맞아요. 강광회 심판. 저도 타구 궤적을 놓쳤는데 3루심이 홈런 제스처를 하더라고요. 그때 홈런인 줄 알고 뛰기 시작했죠. 사실 처음엔 장외로 넘어간 줄도 몰랐어요. 장내 방송이 나오고 덕아웃에서 누군가가 얘기해줘서 알았어요.”
김동주의 괴력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 고려대 4학년 시절이던 1997년 8월, 일본 오사카돔 개장 기념으로 열린 국제친선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나간 김동주는 일본의 에이스 우에하라 고지(훗날 메이저리거가 된다)를 상대로 전광판 최상단을 때리는 홈런을 날렸다. 당시 이 타구의 비거리는 162m로 기록됐다. 오사카돔이 개장되자마자 한국의 한 선수 방망이에서 초대형 홈런이 터지자 일본 언론도 대서특필했다.
김동주는 이에 대해서도 기억이 나는지 슬며시 웃었다.
“저도 당시 홈런을 쳐 놓고 놀랐어요. 그렇게 멀리 날아갈 줄은 몰랐거든요. 그렇지만 아마추어 시절에는 알루미늄 배트를 썼잖아요. 프로에 들어와서 나무방망이로 잠실구장 장외홈런을 쳤고, 그 이전에 아무도 잠실구장 장외홈런을 못 쳤다고 하니 더 얼떨떨했던 것 같아요.”

◆ 100원짜리 꿈과 맞바꾼 장외홈런볼
“홈런볼을 찾습니다. 김동주 선수의 홈런공을 가져오시는 분에겐 푸짐한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잠실구장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카랑카랑 흘러나왔다. 이 방송 목소리는 지하철 잠실종합운동장역 일대에도 울려 퍼졌다. 동시에 두산 직원들이 야구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기념비적인 홈런볼을 찾기 위한 대작전이 시작됐다. 영구보존할 가치가 있는 공이었다.
“잠실구장 장외홈런이 처음이라 구단에서도 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직원들이 밖으로 뛰어나갔어요. 당시엔 잠실종합운동장역 일대에 포장마차도 있었고, 좌판을 깔고 김밥이나 물을 파는 분들도 많았거든요. 다행히 홈런볼에 맞아 다치신 분은 없었어요. 주변분들에게 공이 떨어진 지점을 묻고 공의 행방을 수소문했었죠.”
김승호 두산 운영팀장(당시 두산 홍보팀 과장)의 얘기다. 주변 좌판 상인들을 통해 홈런볼이 떨어진 지점은 확인했지만, 홈런볼을 주운 사람을 찾지 못했다. 두산 구단 직원들은 허탈하게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경기 후 한 남성팬이 홈런볼을 들고 나타났다. 당시 나이 29세의 회사원 김재혁 씨. 그는 “야구장으로 들어오다 공을 주웠는데 처음엔 파울볼인 줄 알았다”며 웃었다. 그로서도 잠실구장에서 장외홈런이 터질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것. 재미있는 것은 그의 꿈이었다. 김 씨는 “간밤에 100원짜리 동전을 줍는 꿈을 꾸었는데…”라고 말해 주변 사람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그러나 그 홈런볼은 100원짜리가 아니었다. 두산 구단은 김 씨에게 시즌 전경기 입장권과 두산대백과, CD롬 등 푸짐한 선물을 안겨줬다.

◆ 기념 동판 제작…최초의 역사 영원히 기억하다
『국내 프로야구 최초로 잠실구장에서 장외홈런을 날린 두산 김동주의 홈런을 기리기 위해 낙구 지점에 기념보드가 국내 처음으로 설치된다. 두산 구단은 4일 롯데전에서 국내 최장거리인 김동주의 150m짜리 장외 홈런볼이 떨어진 중앙출입구 철골구조물 앞 거리에 가로 세로 두께 각 60㎝의 기념보드를 세울 예정.』 <동아일보 2000년 5월 12일자>
잠실구장은 1982년 7월 15일 개장됐다. 그로부터 18년 만에 처음으로 터져 나온 장외홈런이었다.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야구장. 외야 펜스 뒤 관중석 규모 역시 가장 큰 구장이었다. 특히나 잠실구장 장외홈런이 처음이었기에 더더욱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두산 구단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동판 제작에 나섰다. 그리고는 17일 뒤인 2000년 5월 21일 동판 제막식을 열었다. 주인공 김동주는 물론 두산 강건구 사장과 곽홍규 단장, 김인식 감독, 주장 김태형 등이 참석해 잠실구장과 잠실종합운동장역 사이에 설치된 동판 앞에서 행사를 치렀다.
동판에는 ‘잠실야구장 첫 장외홈런 기념’이라는 제목 아래 ‘이곳은 2000년 5월 4일 19시24분 두산베어스 김동주 선수의 홈런볼이 떨어진 곳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혔다. 그 아래에 경기 팀(두산 베어스 : 롯데 자이언츠)과 홈런이 터진 상황(3회말 좌월 2점홈런), 상대투수(에밀리아노 기론), 비거리(150m), 두산 베어스 김동주 이름과 사인이 새겨졌다.
잠실구장에서는 김동주 이후 4차례 더 장외홈런이 나왔다. 2001년 10월 28일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두산 베어스 타이론 우즈가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5회말 역전 2점홈런을 날린 것이 2호였다. 이어 2018년 10월 10일 당시 SK 와이번스 소속 김동엽과 제이미 로맥이 두산전에서 같은 날, 같은 이닝, 같은 투수(장민익)를 상대로 장외홈런을 터뜨려 화제를 모았다. 로맥은 2020년 6월 9일 잠실 LG전에서 케이시 켈리를 상대로 다시 장외홈런을 쳤다. 한 선수가 2차례 잠실 장외홈런을 기록한 것은 로맥이 최초였다.

한편 롯데 ‘빅보이’ 이대호는 2007년 4월 21일 사직 롯데전에서 현대 유니콘스 정민태를 상대로 사직구장 개장(1986년) 개장 후 첫 장외홈런(비거리 150m)을 날렸다. 차도에 홈런볼이 떨어져 롯데는 부산시와 협의를 한 뒤 도로 아스팔트에 기념 동판을 설치했다.

◆오월동주, 두목곰….김동주를 추억하며
김동주는 1998년 4월 11일 개막전(광주 해태전)에서 최초 신인 데뷔전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괴물 타자’의 등장을 알렸고, 그해 24홈런을 때리며 범상치 않은 출발을 했다. 데뷔 첫해에 20홈런 이상 기록한 KBO 역사상 7명 중 1명. 1999년 다시 22개의 홈런을 기록한 김동주는 장외홈런을 친 2000년 31개의 홈런으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만들었다.

2013년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KBO 16시즌 동안 통산 타율 0.307에 273홈런, 1097타점의 성적을 올렸다. 두산 베어스 역사상 최다홈런 타자이자, 잠실구장만을 홈으로 사용한 타자(두산, LG 소속 원클럽맨) 중 최다홈런 기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 수많은 홈런 중에서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건 아마도 2000년 봄날 밤에 날렸던 그 장외홈런이 아닐까. 김동주 역시 이에 동의했다.
“요즘도 팬들은 그 홈런부터 말씀하시더라고요. 10명을 만나면 7~8명은 장외홈런 얘기부터 시작해요. 팬들의 추억에 가장 크게 남아있는 장면 같아요. 저도 사실 제가 쳤던 여러 홈런 중 그 장외홈런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동판 제막식 이후에 혼자 딱 한 번 그곳에 가 본 적이 있었어요. 그대로 잘 있나 싶어서 가봤죠. 저한테는 영광의 장소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두산 베어스가 2000년대 핵타선으로 무장할 수 있었던 그 중심엔 바로 김동주가 있었다.
오월에 유난히 강하다고 해서 '오월동주'로 불리기도 했던 두목곰 . 18번의 김동주가 타석에 등장하면 ‘떴다 떴다 비행기’ 음률에 맞춰 팬들이 열창하는 “동주 동주 김동주 김동주 김동주~”라는 응원가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덧붙이기) 모두가 김동주의 장외홈런만을 기억하는 그날, 승부에서는 롯데가 7-6으로 이겼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홈런을 허용한 기론은 7.2이닝 6실점을 하고도 시즌 4승(1패)째를 수확했다. 2003년 10월 2일 삼성 이승엽의 56호 홈런이 터진 그날도 롯데가 6-4로 이겼다. 홈런을 내준 이정민은 5이닝 3실점으로 데뷔 첫 승을 올렸다. 롯데 최기문은 이 두 차례 장면에서 역사적인 홈런을 허용한 포수였지만 두 경기 모두 승리를 이끈 포수이기도 했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OBS라디오 프로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