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숨진 모녀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자였다…전입신고 안해 시스템 무력화

김동환 2022. 11. 25.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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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다세대 주택서 모녀 숨진 채 발견…‘사회보장급여법’ 개정안 통과 시급 여론 커져
지난해 이사 온 후 별도 전입신고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정부의 복지망도 무용지물
신현영 의원, 지난달 ‘사회보장급여법’ 개정안 발의…소재 파악에 전기통신사업자 협조 얻도록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세계일보 자료사진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모녀(母女)는 공과금 연체 등으로 이미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자였지만, 지난해 이곳에 이사 온 후 두 사람이 전입신고를 따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정부의 복지망이 이들에게 끝까지 미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은 단전·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기초생활수급 탈락·중지 등 34종의 위기 정보를 토대로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가구를 파악하는 제도다.

지난해까지 두 사람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였던 서울 광진구 화양동 모처로 찾아간 행정복지센터 복지담당자는 이미 모녀가 이사를 떠난 뒤라 이들을 만날 수 없었고, 두 사람이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서대문구도 관계 기관에서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했다.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 지원 대상자’ 소재 파악을 위해 전기통신사업자 등 협조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가 더욱 시급해 보이는 대목이다.

지난 8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도 화성시에서 수원으로 이사 온 후, 별도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도 그와 사실상 판박이로 보인다. 통상 이러한 사례에서는 관할 행정복지센터가 건강보험료 체납 사실을 통보받아 주소지에 안내 우편물을 발송하거나, 관할 행정복지센터에서 당사자의 거주가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알 때가 외부와 단절된 복지 대상자를 발견할 이른바 ‘골든타임’으로 지목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수원 세 모녀 사건 후 출근길 문답에서 세 모녀의 비극에 ‘특단의 조치’를 주문하고 “중앙정부에서 이분들을 잘 찾아서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자치단체와 협력해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어려운 국민을 각별히 살피겠다”고 다짐했었다.

공과금 체납 등을 토대로 위기 가구를 선정해 현장 조사하는 방식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은 당사자가 도움을 희망해 신청하지 않는 한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정부는 지난 24일 ▲정확한 위기가구 발굴 ▲신속하고 두터운 위기가구 지원 ▲新 복지 사각지대 발굴과 지원 등 3개 분야(12개 과제)의 추진 계획을 발표했지만 결국 다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연합뉴스TV 영상 캡처
 
앞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대표로 발의한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사회보장급여법) 일부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시급한 이유다.

신 의원은 “지원 대상자의 소재 파악을 위해 전기통신사업자와 관계 기관 등에서 협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며 “보장기관의 장이 전화번호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다면, 보다 신속하고 원활하게 복지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었다.

국회에 머무른 해당 법안의 검토보고서는 “전기통신사업자의 범위가 넓고 종류가 다양해 그 범위를 한정하지 않으면 실제 적용에 혼선이 있을 수 있다”며 “다양한 의견 수렴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원대상자 전화번호 파악을 통해 위기가구를 신속하게 발굴하고자 하는 개정안 취지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어떤 전기통신사업자가 지원대상자 전화번호를 보유하는지 알 수 없다”고 의견을 냈다.

복지부는 “다수의 사업자에 전화번호를 요청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며 “과기부 등 소관부처 의견을 들어 지원대상자의 전화번호를 요청할 수 있는 관계기관 등을 단일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25일 서대문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전 서대문구 한 다세대주택에서 성인 여성 2명이 숨져 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했다. 경찰은 ‘세입자가 사망한 것 같다’는 집주인의 신고로 현장에 출동했다. 두 사람은 모녀 관계로 딸은 36세에 어머니는 65세로 전해졌으며,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시신 상태 등으로 미뤄 사망한 지 시간이 꽤 흐른 것으로 보며, 일단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녀의 집 현관문에는 5개월 치 전기료 9만2000여원의 연체를 알리는 지난 9월자 독촉 고지서가 붙어 있었다. 월세가 밀렸다며 퇴거를 요청하는 집주인 편지도 붙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집 임차계약을 한 뒤 10개월 치 월세가 밀려 보증금도 모두 공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건강보험료는 14개월 치(약 96만원), 통신비는 5개월 치(약 15만원)가 밀렸고, 금융 채무 상환도 7개월째 연체됐다. 다만, 이들이 심각한 생활고를 겪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모친은 퇴직 공무원으로 월 200만원 이상의 연금을 수령해왔다고 한다.

경찰은 모녀의 다른 가족과 지인 등의 진술을 토대로 구체적인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부검을 거쳐 정확한 사망 시간과 사인도 확인할 예정이다.

이날 오후 찾아간 모녀의 집은 특수청소업체가 작업을 거의 마무리한 상태로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복지부는 “서대문구 모녀 사망 사건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인 연락처 연계 등 관련 법률(사회보장급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될 수 있게 지원하고, 다른 대책들도 관계부처·기관 및 지자체와 협력하여 대책을 차질 없이 이행하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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