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방북때 걸었던 ‘남북협력 상징’ 도로… TNT로 날렸다
15일 오전 11시 59분과 약 2분 뒤인 오후 12시 1분 경의·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북측 인접 지역에서 “쿵” 하는 폭발음이 들렸다. ‘안녕히 가십시오. 여기서부터는 개성시입니다’라고 적힌 파란색 도로 표지판 뒤편으로 흙먼지 등 파편이 수십m 높이로 솟구쳤다. 북한이 지난 9일 ‘육로 단절 및 요새화’를 공언한 지 엿새 만에 남북 교류 협력의 상징이었던 경의·동해선 도로를 물리적으로 파괴한 것이다. 경의선·동해선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제외하면 남북이 차량으로 교류할 수 있는 단 둘뿐인 통로다. 북측 구간 건설을 위해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우리 정부가 약 1800억원을 차관 형태로 제공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를 군사분계선 북쪽 10m 지점부터 각각 70m·40m 폭파했다. 북한은 폭 20m 아스팔트 도로 곳곳에 삽과 곡괭이로 구덩이 수십 개를 파고 구덩이마다 수십㎏의 TNT 폭약을 넣어 이날 일제히 폭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t의 TNT 폭약을 사용한 것이다. 폭파 지점 주변으로는 약 6m 높이 가림막을 세웠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군 수십 명은 폭파 지점에서 약 100m 떨어진 지점에서 폭파 장면을 촬영했다고 한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이 단절 및 요새화를 선언한 9일부터 두 도로에 각각 100여 명의 인원을 투입해 폭파 준비에 나선 정황이 우리 군 감시 장비에 포착됐다”며 “우리는 전동 드릴로 아스팔트에 구멍을 뚫었을 텐데 북측은 삽과 곡괭이를 이용해 구멍을 만들고 폭약을 넣고 흙으로 복토하는 장면을 감시했다”고 했다. 군은 북측이 폭파 이후 굴착기와 덤프 트럭을 동원해 잔해를 치우는 장면도 식별했다.
우리 군은 이날 북한의 남북 연결도로 폭파에 대해 “보여주기식 쇼”라고 평가했다. 군 관계자는 “지뢰 등으로 도로의 폐쇄는 이미 됐던 것이고 이번에 도로 자체를 날려버린 것”이라며 “북한이 지속해온 남북 단절 조치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고, 극적인 드라마 같은 효과를 노렸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북한이 이를 통해 대내 결속을 강화하고 남측과는 더 이상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평가다.
이날 북한이 발파한 경의선 지점은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하면서 차에서 내려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던 곳이다. 군 관계자는 “도로 폭파를 통해 이러한 남북 교류 단절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남북이 ‘두 국가’로 제각기 살아가자고 선언한 뒤 단절 조치를 계속해왔다. 올 초부터 경의선·동해선 도로 인근에서 지뢰 매설, 침목·레일 및 가로등 철거, 열차 보관소 해체 등의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포착됐다. 이 과정에서 수차례 군사분계선 남측으로 일부 북한 병력이 넘어와 우리 측은 대응 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군은 북한이 폭파한 경의선·동해선 도로 지점에 콘크리트 방벽을 만들며 ‘요새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은 현재 248㎞ 군사분계선을 따라 10군데에서 대전차 방벽을 만드는 등 ‘장벽화’ 작업을 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주장한 문구를 볼 때 남북 단절 조치의 공고화를 위해 아마도 폭파 지점에 바로 남북 차단을 나타내는 콘크리트 방벽을 세우지 않을까 추정한다”고 말했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은 콘크리트를 활용해 견고한 시설을 만드는 것을 ‘요새화’라고 표현한다”며 “GP처럼 향후 장비·무기가 반입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북한은 이번 폭파에 대해 지난 9일 유엔사에 통보했다.
이날 북한의 폭파 작업으로 인한 우리 군의 인명 및 재산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북한군 이동 등 특이 동향은 현재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날 북한이 폭파에 나서면서 민간인의 민통선 이북 출입이 통제돼 농사일이 중단됐다. 북방 어장 조업도 중단됐다. 접경지대에 있는 경기 파주 도라산 전망대와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 등도 운영이 중단됐다.
☞경의선·동해선
경의선은 한반도 서쪽인 서울과 파주를 거쳐 북한의 개성·평양·신의주로 이어지는 구간의 철도·도로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국 기업 관계자들과 물자가 북한을 오가던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다. 동해선은 강원도 양양에서 금강산을 경유해 원산까지 이어진다. 금강산 관광 및 이산가족 상봉 등을 위한 경로로 활용됐다.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는 남북 교류 협력 상징으로 우리 정부가 북한에 1억3290만달러 차관을 제공해 건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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