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회, 왜 서울에서만 해요?" 전국 곳곳 독자 찾는 시사인

윤유경 기자 2024. 9. 2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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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독자위원회', 비수도권 지역 목소리 듣고자 시작...'공급자' 위치 벗어나 독자들과 기사 소통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 시사인 찾아가는 독자위원회 현장. 사진=시사인 제공.

시사주간지 시사인(시사IN)이 독자가 있는 곳으로 직접 방문하는 '찾아가는 독자위원회'를 시작했다. 대다수 언론사처럼 편집국 사무실에서 임기가 정해진 독자들과 독자위원회를 진행하는 게 아닌, 지역 동네서점을 통해 전국 곳곳의 독자들을 기자들이 직접 찾아가는 형식이다. 독자와 지역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시사인의 새로운 시도다.

지난 5월 취임한 변진경 시사인 편집국장은 '독자 소통'과 '지역'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변 국장은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독자들은 익명화돼있고 보통 많은 기자들은 익명의 댓글로 독자를 마주한다. 서로 오해하고 미워하기 쉬운 구조”라며 “내 기사를 읽은 사람과 대면해 이야기하는 건 좋은 경험이다. 독자와 기자가 서로 누구인지 알고 소통하는 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도권 독자 중심의 독자위원회, 비수도권 지역 목소리 듣고자 시작해

찾아가는 독자위원회는 기존 독자위원회가 수도권 독자 중심으로 편중됐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 6개월에 한 번씩 독자들을 모집해 서울에 위치한 편집국에서 독자위원회를 진행하다보니 비수도권 지역의 독자(지역 독자)들은 참여하기 어려웠다. 주말에 진행하면 하루를 꼬박 다 쓰면서 독자위원회에 오는 지역 독자도 있었다. 장일호 시사인 기자는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독자위원회 독자들을 모집하면 수도권으로 편중됐다. 수도권 독자들의 의견만 듣게 돼 (지역 독자들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7월 시작된 찾아가는 독자위원회는 현재까지 울산, 전남 순천, 대전의 독자들을 만났다. 변진경 국장은 취임 직후 기존 편집팀에 '소통'을 붙인 '편집소통팀'을 신설했는데, 편집소통팀에 소속된 장일호·김연희 기자가 독자위원회를 맡아 돌아가면서 사진기자와 함께 참석한다. 독자들이 원하는 기자를 초청하는 '기자 소환제'도 있다. 9월엔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문제를 심층 취재한 전혜원 기자를 '소환'해 대전을 함께 다녀왔다.

▲시사인 찾아가는 독자위원회 현장. 사진=시사인 제공.

독자위원회의 거점은 지역 동네서점이다. 각 지역의 동네서점은 지역에서 사람을 모아 네트워킹 역할을 하는 대표 공간이다. 기자들이 각 지역의 동네서점에 연락하고, 동네서점에서 '시사인 찾아가는 독자위원회' 모임을 만들어 독자들을 모은다. 이렇게 모인 독자들이 직접 모임 방식을 논의해 각 지역마다 진행 방식이 다른 점도 특징이다. 언론사에서 독자위원회를 주재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독자가 독자위원회의 중심이 되는 형태다.

지역민들은 찾아가는 독자위원회를 통해 지역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장일호 기자는 “동네 책방에서 이런 모임이 열린다고 하니까 시사인을 모르는 분들이 오시기도 하고, 모임에 참여하고 싶어 시사인 정기구독을 시작하신 분도 있다”며 “순천에서 만난 한 독자는 혼자 고립된 기분이었는데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고 말씀해주셨다”고 말했다.

'공급자' 위치에서 벗어나, 독자들과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독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던 기자들에게도 찾아가는 독자위원회는 중요한 경험이다. 실제 기자들은 기사를 읽고 의견을 들려주는 독자를 눈 앞에서 확인하며 큰 힘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9월 독자위원회에 참여한 전혜원 기자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실업급여 수급률을 전수조사해 실업급여의 사각지대를 지적한 본인의 기사로 다양한 시각을 키울 수 있었다는 독자 피드백에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장일호 기자도 “독자의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큰 경험이었다”며 “기자에게는 자신의 감정이나 취재 뒷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창구가 되고, 독자로선 기사에 다 나오지 않는 행간의 숨어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유대관계가 생길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바이라인을 의미없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누군가의 노동이 기사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서로가 감각하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직접 듣는 독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은 기자들의 예상을 비켜간다. 장일호 기자는 7월 독자위원회 기사 <“독자위원회, 왜 서울에서만 해요?”>에서 “초상권 허락은 어떻게 구하는지, 기사 속 '핵심 관계자'와 '관계자'의 차이는 무엇인지, 왜 취재원의 실명을 쓰지 않는지, 지면에 광고가 많이 없는 것 같은데 재정 상태는 괜찮은지” 등 기사 비평 외에도 다양한 질문이 오갔다고 전했다. 김연희 기자도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우리가 너무 공급자 마인드로 (잡지를) 만들고 있었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시사인 찾아가는 독자위원회 현장. 사진=시사인 제공.

변 국장은 “시사인은 출발점 자체가 독자로부터 시작된 매체이기 때문에 독자가 우리 힘의 원천이고 핵심이라는 사실을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며 “내가 기자생활을 하며 가장 힘이 되는 순간은 독자들과 기사 이야기를 할 때였다. 칭찬만이 아니라 살벌한 비판이라도 우리 기사를 읽은 사람과 이야기하는 건 기자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에 기자들에게 경험시켜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역의 독자들을 직접 찾는 만큼 지역 현안을 더 생생하게 들을 수도 있다. 장일호 기자는 “지역 이슈가 주변화돼있다는 점에서 오는 갈증도 있었다”며 “그 지역에서만 들을 수 있는 현안을 발굴하는 사전취재를 간다는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역사회의 의제도 계속 모여 이야기해야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 (독자위원회에서) 각자 지역에 갖는 불만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며 “(독자들에게) 본인이 경험하고 있는 지역사회의 문제들이 어떻게 기사화될 수 있을까 고민해달라고 부탁드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독자와의 대화'부터 '전국 인사이드'까지, 시사인이 강조하는 독자와 지역

변진경 국장은 “국장이 되면서 강조하고 싶었던 가치는 '독자 소통'과 '지역'”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과거 짧은 코너로 운영됐던 '독자와의 수다'를 발전시켜 '독자와의 대화' 코너를 만들었다. 지난 3월 시작된 '독자와의 대화'는 시사인 게시판, 편집국 전화, 기자 개인 메일, SNS 댓글 등 다양한 경로로 시사인에 의견을 주는 독자들에게 기자가 직접 전화하는 코너다. 되도록 시사인에 비판적인 의견을 남겨준 독자를 섭외해 이야기를 듣는다.

▲ 시사인 '독자와의 대화' 코너 갈무리.

'독자와의 대화' 코너를 맡아 일주일에 한 번씩 독자와 직접 통화하고 있는 김연희 기자는 매주 독자를 만나며 독자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독자를 대하는 경험을 처음해봐서 독자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 지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다”며 “시사인의 기사들을 완전히 동의하진 않아도 '신뢰를 가지고 보는 매체이므로 내가 관심을 갖고 읽어야 한다'는 독자들의 태도를 보면서 더 신뢰가 생겼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시사인을 정말 사랑하시는 분들도 있다. 읽기 모임을 통해 나눈 시사인 리뷰를 책처럼 묶은 젊은 독자분도 있었고, 시사인을 한 권도 버리지 않고 다 모아놓으신 70대 중반의 창간 독자분도 있었다”며 “나에게도 시사인이 더 소중해졌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걸 잘 지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7월부터는 지역 곳곳의 기자들이 칼럼 형태로 지역 소식을 전하는 '전국 인사이드' 코너를 이어가고 있다. 강원일보, 경남도민일보, 충북 옥천 지역 월간옥이네, 대구경북 지역 뉴스민, 광주 지역 무등일보, 충북 지역 미디어날 등 각 지역의 기자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지역 소식을 전한다. 시사인은 편집자주에서 “한국은 서울보다 크다”며 “전국 곳곳에서 뉴스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지역 언론인들이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소식을 들려드린다”고 전했다.

▲ 시사인 '전국 인사이드' 코너 갈무리.

변진경 국장은 “취재를 가보면 지역 이슈 하나하나가 지역 안에서 뜨겁고 절체절명의 위기다. 그리고 그 이슈는 해당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국에 걸친 보편성을 갖고 있다”며 “기후위기, 노년의 위기 등 인류의 공통적 문제들이 먼저 뾰족히 튀어나오는 곳이 지역”이라고 말했다.

박누리 월간옥이네 편집장은 전동 킥보드를 타던 청소년이 자동차와 충돌해 사망한 사고를 통해 지역의 이동권 문제를 지적했고, 이삼섭 무등일보 기자는 재배 농가의 고령화와 기후변화로 출하량이 줄어들고 있는 광주의 '무등산수박'과 재배 농민들의 이야기를 썼다. 박서화 강원일보 기자는 강원과 경기 일대에 분포한 접경지역 주민의 삶을 전했는데, 남성중심적 군사문화에 더해 국가안보를 빌미로 공공 인프라를 열악하게 방치해온 탓에 여성 노동자들이 화장실조차 제때 이용하기 어려워 배뇨 관련 질환을 겪는 현실을 보여줬다.

변 국장은 “분명 지역 이야기를 잘 전달해주는 지역 기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중요성을 알고있어 시도한 코너인데, 실제 독자들이 '전국 인사이드'를 굉장히 많이 읽는 것을 보고 놀랐다. 독자들이 더 지역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코너를 만든 후 알게됐다”며 “우리 뿐만 아니라 서울의 소위 중앙 매체라고 불리는 다른 언론사들도 신경써야 하는 부분 아닐까”라고 말했다.

시사인의 네 번째 찾아가는 독자위원회는 10월11일 경북 경주 '너른벽(@neoreunbyeok_bookshop)'에서 열린다. 11월에는 강원 속초 '완벽한 날들(@perfectdays_sokcho 0507-1405-2319)', 12월에는 경기 안성 '다즐링 북스(@darjeeling_books 0502-1932-8732)'에서 모임을 연다. 시사인 독자모임을 만들어보고 싶은 동네서점은 모임을 신청할 수 있다.(문의: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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