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지 않은 홍콩]①합리적 세금·지리적 이점, 아시아 허브로서 여전히 건재
외국인 차별 없어 법인 설립 쉽고 달러 페그제로 환손실 위험도 해결
한때 아시아의 금융·경제 허브(hub)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누려왔던 홍콩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이후 빚어진 중국 본토와의 정치적 갈등 때문에 외국 자본이 줄줄이 홍콩을 이탈하면서 국제 사회에선 머지않아 싱가포르가 홍콩 대신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은 다소 이르거나 과장된 감이 없지 않다. 조선비즈는 다양한 현장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홍콩의 객관적인 현 위상과 내일에 대해 조명해 본다.[편집자 주]
미디어가 홍콩을 죽이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요. 많은 인재들이 홍콩을 떠난 것은 사실이지만 또다른 인재들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고 수십년간 다져진 인프라는 무너지지 않거든요.
홍콩 국제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려서 단 23분. 30분도 채 안되어 홍콩 비즈니스의 중심가인 홍콩역 IFC 빌딩에 도착했다. 이날 비행기의 연착으로 인해 도심에서 예정된 인터뷰 미팅에 늦을 뻔 했으나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간편한 교통 덕분에 미팅 시간에 늦지 않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매일 오전 5시부터 새벽 1시까지 1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홍콩 AEL(Airport Express Line)은 세계 그 어떤 나라의 공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철도보다 빠르고 간편하고 깨끗했다.
홍콩역에 내려서도 목적지인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까지 도보 이동이 가능했다. IFC부터 JP모건, 스탠다드 차타드, HSBC은행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모두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홍콩 특유의 날씨로 인해 갑작스러운 비가 와도 젖을 걱정이 없고 습하고 더운 날씨도 조금 걷다 보면 실내 이동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홍콩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셀리나 킴(28)씨는 홍콩을 안쓰럽게 보는 건 홍콩 밖에 있는 사람들일 뿐인 것 같다며, 홍콩이 구축한 글로벌 금융과 무역의 축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인구 유출? 글쎄...여전히 ‘사업하기 좋은 곳’”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손꼽히던 홍콩에 대해 저물어가는 지역이라는 시선이 거세다. 홍콩은 2019년부터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며 이후 국가보안법 시행과 고강도 코로나 방역 정책 등으로 인구 유출이 급격히 늘었고 최근까지도 상당한 순인구 유출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 지정학적 긴장은 홍콩의 경제를 강타했고 세계 3대 기업공개(IPO) 시장으로 꼽히며 2018년에는 뉴욕을 제치고 1위까지 차지했던 홍콩 시장의 IPO규모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의 코로나 팬데믹 이후 회복은 기대치를 밑돌았고, GDP 성장률은 2023년 3.2%에서 올해 1.8%로 둔화할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에서는 국제금융중심지로서 홍콩의 지위가 되살아나기 힘들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홍콩에서 직접 만나본 사람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경제가 타격을 입긴 했어도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고, 대체지로 떠오르는 지역들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설명이다.
홍콩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홍콩을 ‘사업하기 좋은 곳’으로 꼽았다. 복잡한 세금이 없고 낮은 법인세 및 합법적인 절세 등 세금의 이점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차별하지 않는 홍콩의 규제 덕분에 외국인 법인 설립이 자유롭고 쉽다. 전세계 기업들이 홍콩에 몰리는 이유다. 당연히 지리적 이점도 크다. 여러 국가로 향하는 교두보로서 주요 국가 도시는 대부분 5시간 안에 갈 수 있다는 게 현지 사업자들의 설명이다.
지리적 이점에는 중국 본토로 향하는 관문이라는 특징도 있다. 특히 중국과 홍콩 사이에는 ‘이중과세 방지 협정’이 있어, 홍콩 투자자가 중국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일정 조건에 부합할 시 중국에서 낮은 세율의 원천 징수 의무 혹은 면세까지 받을 수 있다. 홍콩은 외국인과 내국인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이라면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할 만하다. 또한 외국인에게 까다로운 중국 법률로 인해 홍콩에 모회사를 세우고 중국에 자회사를 세우고 대응하는 전략이 쓰이고 있었다.
◇전세계 금리 인하 시그널, 홍콩 경제에도 청신호
홍콩이 글로벌 금융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동력 중 하나는 화폐다. 싱가폴 등이 신흥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해도 따라올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홍콩은 1983년부터 환율을 달러당 7.75에서 7.85 홍콩 달러로 유지하는 페그제(고정환율제·자국 통화의 환율을 기축 통화인 달러 등에 고정시키는 환율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덕분에 해외 기업들이나 투자자들은 언제든 환 손실의 위험 없이 홍콩 달러와 달러를 자유롭게 환전할 수 있기 때문에 홍콩을 아시아 거점으로 삼게 됐다.
최근 몇 년간 전세계의 고금리로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서 홍콩 달러도 자연스레 강세를 보였고 홍콩의 투자 및 부동산시장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지난 19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하에 따라 홍콩 금융당국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고 이날 홍콩 항셍 지수는 1.8%, 기술 지수는 3%. 부동산 지수는 2.6% 상승했다. 투자자들은 연준의 금리 인하 이후 홍콩 부동산 기업들이 반등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CGS 인터내셔널증권의 중국 부동산 리서치 책임자 레이몬드 쳉은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하는 홍콩 경제를 부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이와 함께 홍콩은 약점으로 꼽히는 인구 유출을 또다른 인재 유치로 보강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중국 본토로부터의 부유한 이민자를 대거 받아들이고 있으며 유명 대학 졸업자나 고위급 인재를 위한 비자제도인 ‘톱 탤런트 패스(Top Talent Pass)’도 2022년부터 도입했다. 최근에는 새로운 자본투자 이민제도도 도입했는데, 다른 지역의 투자이민 정책과 달리, 사업체 설립과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도 이민이 가능하다. 3월에 출범한 새 이민정책은 3달 만에 3700건 이상의 문의가 쏟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의 이같은 정책들은 조금씩 빛을 보고 있는데, 홍콩 인구조사 통계국에 따르면 2024년 6월 기준 홍콩의 인구는 753만1800명으로 집계됐다. 2023년 말과 비교하면 인구가 늘어난 상황이며,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인구 수준이다. 홍콩과 한국에서 인공지능(AI) 기반 투자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기업 크래프트 테크놀로시즈(QRAFT)의 오기석 홍콩 법인장은 “홍콩은 전통적인 글로벌 금융 허브로서의 장점을 잘 활용하고 있는 곳”이라며 “여러가지 측면에서 한국과의 문화적 유사성도 있기에 여전히 한국 기업들이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교두보로 적합하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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