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가 약탈한 부석사 관음보살좌상 소유권이 일본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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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호 건축가]

논란의 '부석사 관음보살좌상'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부석사’라고 하면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를 떠올린다. '부석사'란 이름의 절이 충남 서산에도 있다고 하면 아마도 '짝퉁'라고 생각할 것이다. '서산 부석사'는 답사를 자주 다녔다는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이름이다. 그러나 서산 부석사가 <동국여지승람>에도 나오는 것과 복장유물에 의하면 최소한 고려시대 말인 14세기부터 있었던 절이다.

이 절이 사람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12년 10월 6일경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서 훔쳐온 불상 때문이다. 절도단은 동조여래입상(일본 국가지정중요문화재/높이 38.2㎝)과 부석사 관음보살좌상(높이 54.6㎝) 두 점을 훔친 뒤 모조품이라고 속여 우리나라로 반입했다. 그러나 동조여래입상을 소유했던 일본사찰에서 수사를 의뢰해오자 불법반입이 발각돼 압수당했다. 이후 동조여래입상은 일본에 반환하고 관음보살좌상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충남 서산 부석사 입구. 사진= 최성호

서산 부석사는 관음보살좌상에 대해 원소유주임을 내세워 소송을 제기해 2017년 1월 26일 1심에서 부석사 소유를 인정받았으나, 대법원에서 소유권이 일본관음사에 있다는 것이 확정돼 일본으로 돌아가게 됐다.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100일간(이번 4월 초파일인 5월5일까지) 서산 부석사에서 일반에게 공개돼 누구든지 친견할 수 있다.

이 보살상은 1951년 일본에서 조사할 때 각종 만다라와 후령통, 관음결연문(觀音結縁文)이 나왔으며, 목합 내부에서는 오색사, 곡물, 마노, 수정 단편 등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이 나온 관음결연문에 이 보살상을 조성한 이유와 조성연도가 쓰여 있는데, 서산 부석사에서 천력삼년(天曆三年, 1330년)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 때문에 서산 부석사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조사로 조성연도 등이 밝혀지면서 1973년 나가사키현(長崎縣) 문화재로 지정됐다.

서산 부석사에 전시중인 관음보살좌상. 사진= 최성호

예술적 가치 높아 보물급 문화재

부석사 관음보살상은 고려 말 주조기술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밀한 선까지 살린 장인의 능력이 실로 대단하다. 특히 보살상의 얼굴은 오똑한 코, 지그시 감은 눈, 부드러운 얼굴 선 등 섬세한 표현 모두가 아름답다. 부드럽게 흘러내린 머리카락도 예술적으로 절묘하게 살렸다. 아마도 국내에 있었다면 보물급 대우는 충분히 받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현재 대좌와 광배 그리고 보관(寶冠)이 없다. 보살상 후면을 보면 광배를 고정했던 홈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보살상에 고정한 것이 아니라 대좌에 고정했을 것이 있다. 머리에는 끝을 묶은 보계(寶髻) 높이를 보아 오대산 월정사의 석조보살좌상(국보)처럼 높은 원통형 보관을 쓰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부석사 관음보살좌상의 얼굴 부분. 사진= 최성호

보살좌상은 현재 금칠(개금, 蓋金)이 사라진 상황이다. 보관은 없지만 머리 부분 머리카락이 일정한 위치에서 돌출된 것으로 보아 보관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어깨에 늘어진 머리카락은 귀 뒤에서 한 가닥의 머리카락이 귀 뒤로 흘러내려 어깨 위에서 세 개의 원을 만든 다음 다시 다섯 가닥으로 나뉘면서 부드럽게 어깨에 늘어져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보살상 왼쪽 머리에서 흘러내린 머리카락 다발이 오른쪽처럼 자연스러운 곡선을 이루었다면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 정도다.

관음보살좌상의 머리 옆부분. 귀와 귀걸이 장식에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사진= 최성호

옷은 대의 속에는 받쳐 입은 승각기가 표현돼있다. 승각기, 매듭, 금구장식(영락 瓔珞: 금관 따위에 매달아 반짝거리도록 한 얇은 쇠붙이 장식)이 세밀하게 표현됐다. 귀에는 귀걸이도 표현돼 있는데 이중 원 중에는 가운데 돌출된 원을 중심으로 작은 점들로 구성돼있어 변화를 줬다. 영락은 보살상에 걸맞을 정도만 있어 과함을 자제하려는 장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불상 왼손쪽 하단의 영락은 전체적으로 단순해질 수 있는 구성에 변화를 줌으로써 생동감을 살렸다는 점에서, 불상을 만든 장인이 대단한 감각의 소유자임을 짐작케 한다.

부석사 관음보살좌상. 어깨에 내려온 머리카락의 곡선이 눈에 띈다. 가슴의 영락에서 예술적 가치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사진= 최성호

이슈: 왜 일본에게 돌려줘야 하나

이 불상은 우리에게 중요한 논점을 남겨놓았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이 문화재는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약탈해 가져간 것이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고려 말 조선 초 왜구가 창궐할 때 왜구가 약탈해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시점은 고려사에 서산지역에 왜구들이 다섯 차례 침입했다는 기록이 있는 1352년에서 1381년 사이로 추정된다. 이렇게 약탈이든 정식 경로로 넘어간 불‧보살상이 일본서부지역에서 확인된 것만도 37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불상소유권을 놓고 대법원까지 갔다. 1심에서는 복장유물 기록과 불상에 불로 손상된 흔적이 있어 부석사에서 훔쳐간 것이 확실하고 부석사도 그곳에 계속 존재했으므로 부석사 소유가 맞다고 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서주 부석사’라는 명칭을 문제삼아 현 부석사가 서주 부석사와 동일하다는 증거가 없고, 일본 관음사측의 1526년 조선에 갔던 종관(宗觀)이 대마도로 가져왔다는 주장과 국제법을 고려할 때 일본 민법에 의해 취득시효가 완성됐으므로 소유권이 일본 관음사에게 있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서산 부석사 금당인 극락전 복원 공사 때 대들보 속에서 발견된 상량문(1938년 중수 당시 작성)에서 ‘신라 문무왕 17년 도비산에서 의상대사가 창건했고, 무학대사가 중창하였으며, 그 후 1938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중수가 이루어졌다’는 내용과 중종 25년(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부석사가 도비산에 있다”는 내용 등을 참고하여 부석사가 계속 존속했다고 판단‘했고, 일본 관음사에서 주장한 종관이 가져왔다는 것도 ’이운(移運)에 대한 기록‘이 없고 손상된 것으로 보아 불상은 왜구가 가져간 것이라 했다.

그러나 '불법 반출된 문화유산은 돌려줘야한다'는 유네스코협약이 협약조인 후의 문화유산에만 한정되어 있고, 우리나라 국제사법(國際私法) 조항에 따라 일본법 취득시효 조항을 따라 이미 20년 취득시효가 넘었기에 소유권은 일본 관음사에 있다고 했다. 이 판결로 서산 부석사 관음보살좌상은 4월초파일 이후 일본 관음사로 이전된다. 이 판결로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반환받기가 쉽지 않게 됐다.(주- 국제사법國際私法 : ‘섭외적 사법관계’를 규율하는 법으로, 섭외적(涉外的) 사법관계란 사법관계의 구성요소인 당사자의 국적·주소·현재지, 목적물의 소재지·행위지·이행지·사실발생지 등의 일부가 타국에 관련이 있는 사법관계이다.)

불법 유출된 문화유산 어떻게 반환받을까

지금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2022년 현재 21만 4천여 점이라고 한다. 해외에 있는 문화재가 모두 불법으로 반출된 것은 아니다. 일본 정창원 소장 문화재처럼 증여 또는 교역을 통해 넘어간 것도 있고 우리가 문화재에 무지해서 팔아넘긴 것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 해외 소재 문화재 중 일본에 있는 것이 44%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중 일제 강점기에 불법으로 넘어간 것도 많다.

불법적으로 넘어간 문화재 환수를 강제할 관련 국제조약은 유네스코 협약과 1965년에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체결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이 있다. 우리나라는 1983년 유네스코 협약에 가입했다. 법도 그 기준에 맞게 개정된 상태다. 그리고 한‧일간 문화재 협정에 의거해 일제강점기 때 반출된 문화재 1,432점이 반환됐다. 그러나 아직 <몽유도원도> 같은 국보급을 포함해 많은 문화재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유네스코 협약에 가입했기 때문에 이젠 강제로 반환받을 방법은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면 어떻게 반환받을 것인가?

문화재를 반환받으려면 우선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외규장각 도서가 프랑스에서 영구임대 형식으로 들어온 것처럼, 부석사 관음보살좌상도 소유권이 일본에 있다고 해도 협상을 통해 영구임대 형식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가능할지 알 수 없다. 외규장각 도서 역시 프랑스와 고속철도 차량공급 계약(TGV가 주체) 건과 맞물렸기 때문에 임대형식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강대국의 입장은 분명히 다르다. 지금 그리스나 이집트의 경우 유럽 국가를 상대로 끈질기게 탈취된 문화유산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나 지금도 반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대로 반환된다면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이 텅텅 빌 것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문화유산을 특정 국가에 귀속된 것으로 보기보다는 인류공동의 유산으로 보는 '문화 국제주의'가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 그리스 유산에 대해서도 지리적 공통성 외에는 민족적 동질성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문화국제주의를 대입하려는 경향이 있다.강대국은 탈취한 문화유산에 대해 제국주의적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여러 자료와 상황을 종합해보면 우리 문화유산을 국내로 반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기증형식 또는 구매를 통하지 않은 이상 설사 불법 탈취된 것이 분명할지라도 국내 반입은 어려울 듯하다. 정부차원에서 다각적인 대처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참고자료
- 西日本地域의 高麗佛像과 浮石寺 銅造觀音菩薩坐像/정은우/동악미술사학 Vol.0 No.14/2013
- 절취한 약탈 문화재의 소유권에 관한 고찰/장병주/문화예술과 법 제4권 제1호/2024.06
- 약탈 문화재에 관한 국제분쟁 연구/류병운/홍익법학 제20권 제1호/2019
- 문화재 불법 거래 방지에 관한 1970년 유네스코 협약의 국내법적 이행 검토/김지현/문화재 Vol.53 No.4/2020.12
- 대법원 판결문 선고20233다215590(2023.10.26.)


※ 필자인 최성호는 오랫동안 한옥과 한국문화를 공부해온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건축사다. 또 K 리그를 초창기부터 열심히 지켜보며 축구 공부를 한 매니아다.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 필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s://blog.naver.com/seongho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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