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가 맞닥뜨린 정체성 위기 [성한용 칼럼]

성한용 기자 2024. 10. 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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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후 부산 금정구 온천천에서 김경지 금정구청장 보궐선거 후보와 함께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성한용 | 선임기자

국회는 2020년 12월2일 본회의에서 2021년도 정부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예산 부수 법안도 의결했다. 기획재정위원장 대리 고용진 의원이 소득세법 일부 개정 법률안 등 8건의 법률안 제안 설명 및 심사 보고를 했다.

“소득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금융투자소득세를 신설하는 한편, 금융투자상품 간 손익 통산 및 이월 공제를 허용하고 가상자산에 대하여 기타 소득세를 과세하도록 하였습니다.”

“증권거래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금융투자소득세가 신설됨에 따라 증권거래세율을 2021년에 0.02%, 2023년에 0.08% 인하하려는 것입니다.”

소득세법은 찬성 236인, 반대 24인, 기권 14인으로 가결됐다. 증권거래세법은 찬성 246인, 반대 14인, 기권 18인으로 가결됐다.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은 여야가 오랜 기간 토론을 거친 뒤 금투세 도입 및 거래세 인하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에서 금투세 유예 및 폐지 의견을 밝힌 김민석 최고위원과 정성호 의원 그리고 토론 배틀에서 유예론을 주장한 이소영 의원, 김병욱 전 의원도 금투세 도입에 찬성했다. 국민의힘도 정진석, 추경호, 홍준표 등 대부분의 의원이 금투세 도입에 찬성했다.

2023년 시행할 예정이었던 금투세는 2022년 12월23일 본회의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2년간 유예됐다. 찬성 238인, 반대 10인, 기권 23인이었다.

2020년과 달라진 사정은 정권교체로 여야가 바뀐 것, 그리고 민주당 대표가 이낙연에서 이재명으로 바뀐 것이었다. 이때부터 조짐이 이상했다. 본회의에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반대 토론을 했다.

“오늘 우리 국회는 금투세 도입을 유예하고 엉뚱하게 거래세만 낮추면서, 지난 10여년 동안 여야가 공히 자본 이득 과세에 대해서 함께 쌓아 올려온 이 공든 탑을 스스로 무너뜨릴 위기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랬다. 2024년 1월2일 윤석열 대통령이 느닷없이 증시 개장식에 참석해 금투세 폐지를 선언했다. 이재명 대표가 8월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시행 시기를 고민해야 한다”고 유예론으로 맞장구를 쳤다. 민주당은 토론 배틀과 의원총회를 거친 뒤 지도부에 결정을 위임했다. 금투세는 태어나기도 전에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에 의해 살해될 위기에 처했다.

이재명 대표는 왜 금투세를 유예하거나 폐지하려는 것일까? 지난 9월29일 ‘엠비엔(MBN) 정운갑의 집중분석’ 인터뷰에서 이런 설명을 했다.

“지금은 공직자여서 주식 투자가 금지되는 바람에 못 하고 있지만 저는 평생 개미였다. 아마도 제가 공직을 그만두면 다시 또 장으로 갈 가능성이 많다. 국장으로.”

자신을 ‘개미’라고 솔직하게 밝혔다. 그는 주식에 ‘진심’이다. 대선 패배 뒤 방산업체 주식 수억원어치를 샀다가 비판을 받은 적도 있다.

이재명 대표는 금투세 시행에 앞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주식시장을 선진화해야 한다”고 했다. 전형적인 금투세 반대 논리다. 궤변이다. 현실 세계에 근본적인 대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금투세도 시행하지 못하는데 주식시장이 선진화될 리 없다. 조세 저항에 편승하는 것은 정치인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이재명 대표 말처럼 ‘민생경제 침체가 심각’하다. 경제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국민은 지금 너무 힘들다. 그렇다면 금투세가 아니라 근로소득세나 부가가치세를 폐지하거나 유예하겠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이재명 대표는 “분배보다 성장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자신의 이념 스펙트럼을 “거의 보수에 가까운 실용주의자”라고 했다. ‘보수에 가까운 실용주의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아닌가.

이재명 대표는 “그런데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주거, 의료, 교육 등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보장되는 ‘기본 사회’가 그의 이상일 것이다. 금투세를 유예하거나 폐지하면서 기본 사회를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이재명 대표가 지금 맞닥뜨린 가장 큰 위기는 ‘사법 리스크’가 아니다. 정체성 위기다. 정체성이 흔들리면 지지층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신뢰는 정치인의 기본 자산이다. 무신불립이라고 했다. 집권플랜본부를 만든다고 집권이 저절로 되지 않는다.

이재명 대표는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것일까? 혹시 대통령 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닐까?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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