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 두 국가론'은 정말 반헌법적인가?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헌법내 통일 조항의 전제는 '평화'
맹목적 통일 지향은 평화에 해될 수도
개헌해서 '안정적 평화'를 강조할 필요
이면헌법인 국가보안법도 폐지해야

두 국가론이 종북인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제기한 ‘남북 두 국가론’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발언 직후 보수 진영은 그의 두 국가론이 결국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한 호응일 뿐이라고 비판했고,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도 임 전 실장의 두 국가론 발언이 “헌법 3, 4조를 위반한 반헌법적 행위”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놓았다. 민주당 쪽에서도 두 국가론은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거리를 두었고, 이재명 대표까지 나서 두 국가론의 위헌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한반도 두 국가론 또는 ‘한반도 양국체제론’(김상준)은 사실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나 자신도 진작부터 기본적으로 동일한 내용의 ‘한반도 평화체제론’을 주장해 왔으며, 하루빨리 우리 정치권이 그동안의 통일 정책을 이 방향으로 전환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그동안 ‘통일’만 강조하던 임 전실장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게 큰 불만이었다.

남북화해협력 기조를 잘 발전시켜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를 정착시켜야 하는데, 비현실적인 민족 통일에 대한 집착이 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런 만큼 나로서는 임 전 실장의 이번 발언을 크게 환영하는 편인데,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그 발언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 내놓아서 매우 놀랐다.

임 전 실장의 발언이 김정은 위원장을 추종해서 나왔다는 식의 이야기는 일고의 가치조차 없다. 임 전실장의 NL 노선 학생 운동 경력을 염두에 둔 상투적인 종북 프레임일 터다.

그런 식의 논리라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진작부터 두 국가론을 주장해 온 나 같은 사람을 추종한 것이 될 텐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지낸 임종석 전 문재인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9월 1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공동선언 6돌 기념식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무엇보다도 김정은 위원장이 ‘적대’를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임 전 실장은, 그리고 나도, ‘평화’에 무게를 둔다. 하늘과 땅 차이다. 물론 통일을 포기하고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자는 지향은 같아 보이지만, 내가 볼 때 이런 사정은 크게 환영하고 진지하게 수용해야 할 일이다. 모처럼 남북이 적어도 이 점에서는 의견 통일을 이룬 모양새니 말이다.

지금 한반도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로, 전 세계가 그렇게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은 물론 ‘조선’도 UN 동시 가입을 통해 이 현실을 진작부터 스스로 인정했더랬다. 다만 두 국가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쓰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동안 이 엄연한 현실을 이념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고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솔직하게 수용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한반도 두 국가론은 이 표리부동의 비정상성을 깨고 현실에 대한 냉정한 수용 위에서 분단체제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길을 찾아보자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 새로운 길의 초점은 '한반도 평화체제'에 있다. 여기서 통일을 이야기하지 말자는 건 영구 분단을 획책해서가 아니라, 맹목적인 통일에 대한 지향이 자칫 한반도의 평화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통일을 지향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통일 방안은 사실상의 ‘흡수통일’ 방안인데, 이런 정책은 현 정세에서는 북한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갈등과 적대를 확대할 뿐임은 지금껏 경험적으로 충분히 확인되었다. 우리가 그동안 북한이 주장해 왔다고 믿는 통일, 곧 ‘적화통일’을 받아들일 수 없음도 분명하다.

그래서 통일의 필요와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되, 지금은 냉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반도 남북의 두 국가 사이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형성하는 데에 더 우선적인 초점을 두자는 거다.

지나 연말,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내년도 국정운영 목표를 밝히면서 대남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으로 '적대적 두 국가론'을 지시했다. 사진= 연합뉴스TV 캡쳐

통일보다 평화가 더 근본적인 헌법적 가치다

정말 의아한 건 이런 두 국가론에 대한 민주당 쪽의 반응이다. 충분히 성공하지는 못했어도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지향은 문재인 대통령 시기 민주당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자 정체성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꼭 무슨 ‘두 국가론’이라고 명시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민주당 정부는 남북 ‘따로 살기’의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어떻게든 한반도 평화를 안착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고 또 그런 시도는 국민들의 큰 지지도 받았더랬다.

물론 우리가 다 아는 대로 당시 민주당 정부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지금 남북은 극한적인 적대 의식을 드러내며 대결하고 있다. 언제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지 모를 지경이다. 그 실패는 무엇보다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거대한 사기’ 탓이긴 했지만, 우리 쪽의 패착이 아예 없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민주당으로선 다시 집권한다면 그 실패를 되돌아보며 새로운 접근법을 발전시킬 여지를 고민하고 공약화하는 게 순리일 터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임 전실장의 두 국가론에 대해 거리를 두고 비판적인 반응만 보이는 것 같다. 이해식 당대표 비서실장에 따르면, 이재명 대표는 두 국가론이 “헌법 정신에 위배되고 당 강령과 맞지 않는 주장이며 평화통일을 추진하고자 하는 그간 정치적 합의와도 배치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국민의힘 쪽에서 제기하는 ‘색깔론’에 대해 방어막을 치려는 의도가 커 보이기는 한다. 최근 들어 강화되고 있는 민주당의 ‘실용주의’ 노선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런 접근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정중하게 재고를 요청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나는 두 국가론이 위헌적이라는 인식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비판은 주로 보수 쪽에서 제기하는데, 이 대표가 그런 비판을 정말로 공유하는지 무척 의심스럽다.

지금 우리 헌법에 영토조항을 포함하여 통일에 대한 지향이 명시되어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두 국가론의 핵심적 함축 중의 하나는 그런 헌법 조항들이 '한반도 평화'라는 당면과제를 달성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으니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헌법을 문자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위헌이라고 한다면 개헌에 대한 모든 주장은 위헌일 것이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여러 차례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그렇다면 이 모든 게 위헌이라는 이야기인지 반문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헌법의 문언, 곧 문장이나 표현 그 자체가 아니라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이상과 원리를 담은 ‘헌법 정신’이다. 이 헌법 정신은 모두가 평등한 존엄성을 가진다고 인정되는 국민들의 주권을 기초로 한다. 현행 헌법은 제정 당시의 관점에서 주권자들의 지향을 가장 잘 구현한다고 이해된 규범과 권력 구조를 담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항구적 타당성을 갖는 초월적 원리나 실체의 표현이 아니다.

헌법정신은 언제든 재해석될 수 있어야 하고 끊임없는 토론과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서는 대통령 같은 권력자나 심지어 헌법재판관들도 독점적 해석권을 가질 수 없으며,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참여하는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언제든 새롭게 규정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 적어도 지금까지 이해되어 온 방식의 통일이 우리 헌법 정신의 불변적 핵심일지는 전혀 분명하지 않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궁극적인 통일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더라도 그 통일을 전쟁을 불사하고서라도 달성해야 할 과제라고 여기지는 않을 터이다. 그렇다면 통일 그 자체보다는 안정적 평화 속에서 자유와 존엄을 누리는 삶이 더 우선적이라고 해야 하고, 또 그런 만큼 평화가 통일보다 더 근본적인 헌법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이면헌법’의 작동을 끝내야 한다

내 생각에 사정이 이런 데도 평화적 두 국가론이 위헌처럼 보이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인 헌법 배후에서 모종의 관습헌법으로서 ‘이면헌법’(백낙청)이 더 우선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이면헌법의 핵심에는 ‘국가보안법’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분단체제와 그 기생 세력의 이익에 반하는 그 어떤 이념이나 언행도 단죄되어야 한다. 공식 헌법이 규정한 기본권도 이에 우선할 수 없다.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지겹도록 목격해 온 비판 세력에 대한 색깔론은 바로 이 이면헌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제 '평화적 두 국가론'이 그 공격의 대상이 되었는데, 민주당마저 이에 굴복하려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임 전 실장이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화적 두 국가론 또는 한반도 평화체제론은 정확히 바로 우리나라의 이런 이중헌법 체제를 끝장내야 한다는 중요한 목적 하나를 갖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이 이중헌법 체제의 바탕에 있는 분단체제는 단지 통일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고 믿었다. 현행 헌법도 바로 이런 믿음 위에서 제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런 믿음이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며 분단체제의 비정상성과 병리를 오히려 심화시키기만 할 뿐임을 충분히 확인했다. 이제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 필요한 때가 왔다.

하나의 민족은 반드시 하나의 국가를 가져야만 한다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처럼 하나의 민족이 서로 다른 복수의 나라를 만들어 사는 사례도 많다. 우리도 그렇게 하자.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적대적 과거를 뒤로 하고, 빌리 브란트 총리 시절 서독이 동독과 맺었던 ‘기본조약’처럼 한국과 조선이 ‘서로 평등한 보통의 좋은 이웃 관계’를 맺고 서로 주권과 독립성 및 영토적 통합성을 인정하는 합의를 이끌어내자.

통일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이유는 없지만, 당장은, 아니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는 우선 서로 간의 평화적 선린 관계를 안착하고 증진시키는 데만 몰두하자. 그런 바탕 위에서만 진짜 통일의 가능성도 조금이나마 열릴지 모르겠다.

물론 이런 한반도 평화체제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수용과 협력 없이는 성취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아예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조선과의 평화적 관계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건 물론, 불합리한 통일 조항을 담은 헌법도 개정해야 한다. 한반도 두 국가론에 대한 엉뚱한 위헌 시비보다는 바로 이런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성찰과 토론이 절실하다.


장은주는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대학에서 ‘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 <공정의 배신>, <공화주의자 노무현>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