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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게임이 다시 성공할 수 있었던 여섯가지 이유

무명의 더쿠 입력 2024. 2. 25. 19:17 수정 2024. 2. 2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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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PG, 나아가 일본 게임 모두를 두고 "낡은 게임"이라고 하던 때가 있었다.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초반의 분위기였다. 게이머들은 일본 게임이 '갈라파고스화'됐으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으리라 수군댔다. 'JRPG가 고쳐야 할 점 10가지'라는 해외 게임 매체의 칼럼이 유행하기도 했다. 
 
유명 인디 게임 개발자 ‘필 피쉬’는 GDC 2012 현장에서 "당신들(일본) 게임은 구려요"(It sucks)라는 발언을 해 화제를 몰았다. 지금이야 해당 발언이 무례했다며 인터넷에서 비판받고 있지만, 당시에는 사이다라며 공감을 표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런 분위기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아마 좋은 게임이 많이 나왔던 2010년대 후반부터일 것이다. 나아가 2024년에는 연초부터 여러 타이틀이 단기간에 밀리언 셀러를 달성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제는 글로벌에서 더 잘 나가는 <용과 같이 8>이 최단 시간 100만 장을 달성했다고 밝혔고, 본래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던 <페르소나 3 리로드>도 비슷한 성과를 냈다. 사이게임즈의 첫 콘솔 타이틀인 <그랑블루 판타지 리링크>가 출시 11일 만에 100만 장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제 JRPG는 낡았고, 글로벌 트렌드에서 뒤처졌다고 말하면 반대로 돌을 맞는 시대가 왔다.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았던 JRPG가 반전에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JRPG는 정말로 몰락했던 장르일까? 애초에, 왜 사람들은 RPG라는 장르에 J(Japanese)라는 접두어를 굳이 붙여 비교하는 걸까? 
 
 
(중략)
 
# JRPG가 다시 성공할 수 있었던 여섯 가지 이유
 
1. 그래픽과 연출 퀄리티의 상승
 
그래픽과 연출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일본의 개발자들이 눈과 귀를 막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존에도 좋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던 캡콤과 스퀘어 에닉스의 경우에는 현세대 게이머의 눈높이를 맞출 만한 게임을 다수 선보였다. 캡콤의 <몬스터 헌터 월드>가 대표적이다. 기존에 자리를 잡았던 휴대용 콘솔 기기에서 탈피해 놀라운 퀄리티의 3D 그래픽 기술력을 선보인 <몬스터 헌터 월드>는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다.
 
AA급 게임들도 이제 그래픽 면에서 뒤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리얼한 그래픽까지는 아니더라도, 노하우를 살려 JRPG 특유의 아트 스타일을 잘 살려내는 그래픽을 선보이고 있다. 언리얼 4로 전환한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가 대표적이다.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는 캐릭터의 인체 비율을 조정해 보다 현실감있게 바꾸고, 수채화풍의 그래픽을 선보이는 ‘애트모스 셰이더’ 개발에 집중했다. 기존에 애니메이션이나 일러스트로 표현되던 컷인이나 UI는 3D로 모두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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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즈 오브 어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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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즈 오브 베르세리아>의 UI와(상단)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의 UI
토미자와 프로듀서는 비주얼 변화를 위해 애니메이션이 사용됐던 곳을 조사해
일러스트와 3D로 교체했다고 지스타 강연에서 밝혔다.
 
 
화려한 UI를 통한 연출력으로 그래픽의 아쉬움을 덮어 버린 케이스도 존재한다. 아틀라스의 <페르소나 5>가 대표적이다. 각 캐릭터의 대화는 일러스트를 출력하고 화면 하단에 대화문을 띄우는 고전적인 방식이지만, 특유의 UI 연출 덕분에 지루함을 느끼기 어렵다. 
 
전투에서도 버튼을 전환할 때마다 나오는 연출을 통해 턴제 전투에서 오는 지루함을 경감했으며, 적들의 약점을 모두 찔러 무너트렸을 때 발생시킬 수 있는 ‘총공격’ 연출은 플레이어에게 승리했다는 쾌감을 주는 동시에 <페르소나> 시리즈의 아이덴티티로까지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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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진입 연출과 인물의 대사, 스타일리시한 UI 등을 통해
<페르소나> 시리즈는 턴제 전투가 게임의 흐름을 끊는다는 느낌 없이, 술술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원작까지 즐긴 입장에서는 정말로 노하우가 많다고 느껴졌다.
 
 
2. 시스템의 발전
 
시스템적인 발전도 주목할 만하다. 턴제 시스템을 차용했다고 해서 반드시 '너 한 대, 나 한 대'의 구조를 과격하리만치 고수한 것은 아니다. 가령 행동 횟수를 부여받고, 결과에 따라 행동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프레스 턴'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도입했던 <진 여신전생> 시리즈가 있다. 
 
<페르소나> 시리즈에는 크리티컬을 띄우거나 적의 약점을 공략하면 턴을 한 번 더 주는 '원 모어' 시스템으로 간편화되어 들어갔고, 이후 보다 원활하게 약점을 공략할 수 있도록 아군과 턴을 교대하는 '시프트' 시스템을 추가하거나, 적을 모두 행동 불가 상태로 만들었을 때 발생하는 '총공격' 시스템과 같은 연출과 이어지도록 하기도 했다. 
 
시리즈 7편에 들어 갑자기 라이브 액션에서 턴제로 시스템을 바꾼 다음 '라이브 커맨드 배틀'을 표방했던 <용과 같이> 시리즈는 또 어떤가. <용과 같이 7>에서는 화려한 연출과 호쾌한 시각 효과로 타격감을 끌어올리며, 부분부분 삽입된 개그 요소로 지루함을 상쇄하려 시도했다. <용과 같이 8>에서는 라이브 커맨드 시스템을 더욱 끌어올려 "턴제지만, 턴제 같지 않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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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같이 8>
 
그 외에도 기존의 틀을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재미를 주려 여러 시스템을 추가한 JRPG를 나열하면 끝이 없다. 개중에는 WRPG의 영향을 받아 비선형적인 스토리를 선보이려 한 작품도 존재하고, JRPG끼리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경우도 있다. JRPG라고 해서 반드시 턴제고, 일직선 스토리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JRPG의 대표주자로 여겨지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도 넘버링이 진행될 때마다 작지만 큰 변화를 알게 모르게 시도하고 있다고 팬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곤 한다. 외전격인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에서는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크리에이팅 요소가 가미된 액션 RPG라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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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퀘스트 빌더즈: 아레프길드를 부활시켜라>
스팀에도 2024년 2월 14일 출시됐으니 참고하시길

 

 

3. 편의성의 향상
 
이전부터 게이머를 괴롭혀 온 JRPG의 ‘불합리함’이 사라지고 있다. 맵에 위치한 세이브 포인트에서만 저장할 수 있다거나, 의도적으로 약한 상태에서 강한 적을 격파해야 도전 과제 트로피를 줌으로써 ‘야리코미(파고들기)’ 플레이를 권장하는 듯한 모습은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원하는 메뉴나 장소 등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다양한 숏컷 시스템을 추가하고, 게임 초반부에는 특정한 상황마다 게임 시스템을 설명해 주는 별도의 설명문이 계속해서 출력되는 등 플레이어에게 ‘떠먹여 주는’ 수준으로 편의성에 집착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JRPG의 고질적 문제였던 스토리 면에서도 편의성 기능을 통해 조금이나마 플레이어의 불편함을 덜려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용어 사전’과 같은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플레이어가 대화를 나눌 때 세계관만의 고유 명사가 등장하면 별도의 색깔을 입혀 특정한 뜻을 가진 단어임을 명시해 주고,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대화 중에도 즉시 도감 페이지로 이동해 설명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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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 명사의 경우 별도의 색깔로 표기하고, 대화 도중에도 즉시 사전을 통해 설명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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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판타지 16>은 이야기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정말 다양한 장치를 구비했다.
 
글로벌 시장을 노리기 위해 턴제에서 보다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액션 시스템으로의 변화를 꾀하면서도, 과거 턴제 시절의 게이머를 위한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어시스트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시리즈의 최신작은 즐기고 싶지만 액션에는 어려움을 겪는 게이머를 위해 버튼 몇 개만 조작해도 캐릭터가 화려하게 전투를 즐기는 모습을 관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파이널 판타지 16>의 경우에는 플레이어가 어시스트 시스템을 커스터마이징해, 회피는 자동으로 발동되지만 공격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등 플레이어의 입맛에 맞게 어시스트 시스템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모습을 보였다.
 
 
4. 적극적인 현지화
 
게임 개발 단계부터 해외 시장을 고려한 현지화 작업도 이어지고 있다. JRPG가 비판을 받던 시절 주로 지적받은 문제점 중 하나는 엉터리 번역이었다.
 
동시 출시에도 신경쓰는 모습이다. <페르소나 5>는 일본에 먼저 출시된 뒤 순차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출시됐지만, <페르소나 3 리로드>는 전 세계 동시 출시됐다. RPG 장르에서 특정한 지역에 먼저 출시된다는 것은 스포일러 등의 문제로 인해 기대감을 감소시킬 수 있다.
 
현지의 정서에도 신경쓰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예상치 못한 논란을 발생시킬 수 있는 농담이나 이벤트는 개발 단계부터 현지 담당자가 검토할 수 있도록 해 수정하는 것이다. 캐릭터의 노출도를 줄이고, 성 소수자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개그는 해외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게임에 넣지 않는 모습도 늘어나고 있다. 가령 <페르소나 3 리로드>는 원작 <페르소나 3>에 있던 트렌스젠더 농담을 수정했다.
 
일본 매체 '더 재팬 타임즈'의 인터뷰에서 <용과 같이>의 수석 PD '요코야마 마사요시'는 "처음 <용과 같이> 시리즈를 개발할 때 일본에선 평범하다고 여겨진 표현들이 오늘날엔 허용되지 않는다"라며 "대본을 쓰면 유럽과 미국의 담당자들에게 먼저 검토를 요청한다. 그리고 현지에서 용인되지 않는 내용을 발견하면 알려 준다"라고 했다.
 
계속해서 현지화 노력이 이어지면서 실력 있는 성우를 기용하는 등 전반적인 더빙의 수준도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영미권 게이머는 일본 게임을 즐기더라도 음성은 영어로 플레이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기에 중요하다. <파이널 판타지 16>은 중후한 중세 유럽풍 판타지라는 점을 살려 영어 더빙을 일본어 더빙보다 먼저 만들기도 했다.
 
 
5.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도 상승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일본의 여러 콘텐츠가 글로벌 성공을 거두고, 크게 성장한 OTT 서비스를 통해 퍼져나갔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애니메이션 풍 게임에 대한 거부감이 이전보다 적어진 느낌이다.
 
소비자들이 이전보다 일본의 문화에 대해 이해도가 더욱 높아지면서 현지화 작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생겨나고 있다. 반다이 남코의 한 현지화 담당자는 재팬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이제 ‘라멘’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누들 수프’라고 번역할 필요가 없다”고 언급했다.
 
 
6. JRPG는 팬을 배신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핵심은 JRPG가 변화를 꾀하면서도, 자신들의 색깔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이 모든 변화는 기존의 JRPG의 강점을 버리지 않는 단계에서 이루어졌다. JRPG가 글로벌에서 덜 유행하고 WRPG가 글로벌에서 유행한다는 이유로, 글로벌 성공을 위해 WRPG의 요소를 무조건적으로 따라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2010년대 오픈 월드의 유행에 맞춰 모든 AAA급 JRPG가 비슷비슷한 오픈 월드 구조를 취하고 캐릭터 디자인을 서구권 취향에 맞추기만 했다면 지금의 반전은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JRPG는 팬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그래도 종종 팬을 화나게 하는 얄팍한 상술은 부리지만). 쇄신이라는 명분으로 기존 JRPG의 특징을 무조건 바꾸기만 했다가는 기존 팬층까지 크게 이탈하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늘 JRPG의 디렉터는 최신작에 대한 인터뷰에서 변화된 시스템을 언급하면 “과거 팬들의 기대도 배신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코멘트를 잊지 않는다. 
 
액션 어시스트 시스템부터 과거 턴제 게임을 즐기던 게이머가 액션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코어 게이머에게는 “어시스트 시스템을 통해 버튼 몇 번만 누르면서 게임을 깨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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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 게이머의 입장에서 보면 액션 게임의 어시스트 시스템은 기절초풍할 일이기도 하다. 
방향키만 조작해도 게임을 클리어해 준다니!
 

# 게이머는 차갑다
 
칼럼을 통해 몰락했던 JRPG가 완벽히 부활했고, WRPG는 다시 몰락했다는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 때 세간에서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은 JRPG가 어떻게 난관을 극복했는지 한 번쯤은 조명해 볼 만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애초에 JRPG, 나아가 일본 게임이 당시 정말로 퇴보했느냐에 대한 토론도 당시에 활발했다. 잠시 정체를 겪었을 뿐, 문화 콘텐츠의 발전 과정에서 자연스레 찾아오는 과도기적인 현상을 과장해 “몰락”이라고 표현했다는 주장도 있다. 베데스다의 <스타필드>가 실패했다고 해서 서구권 RPG나 오픈 월드 게임이 완전히 몰락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듯이 말이다. 더불어 JRPG를 선호하는 일본의 내수 시장은 여전히 탄탄한 편이기도 하다.
 
JRPG가 글로벌 게이머의 비판을 수용해 최근에야 변화했다는 주장도 논쟁을 부를 수 있는 이야기다. 이전부터 꾸준히 독특한 아이디어를 시도해 왔던 JRPG도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많은 기업이 회계연도를 3월에 마무리하는 만큼, 4분기 성과를 노리고 1~2월에 대작 게임이 다수 출시됐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근 10년 간 JRPG에서 보인 변화의 흐름은 최근 글로벌 콘솔 시장을 노리는 국내 게임들에게도 좋은 이정표가 될 것이다. 게임 업계의 트렌드 변화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게이머들에게 “낡은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고 처참히 실패할 수 있다. 게임 시장은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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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PG가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는 와중, JRPG의 정점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파이널 판타지 7>의 두 번째 리메이크 작품이 출시된다는 점도 시기상 흥미롭다.
참고로 두 번째 리메이크 작품의 부제목은 '리버스'(부활)이다.
 
https://m.thisisgame.com/webzine/nboard/11/?n=185056

 

기사 마지막에 있는 파판7 리버스는 다음주 발매고 엊그제 엠바고 풀렸는데

오픈크리틱 93점 메타크리틱 92점 받음

올해 고티 유력후보라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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