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식 하이엔드의 정수, 포시즌스 호텔 홍콩
Super High-end Hong Kong
하이엔드 호텔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고유하며 사려 깊고 섬세한 환대. 머무는 이가 미처 짐작하지 못한 영역까지 침투해 효율적이며 편안하고 완벽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이끄는 서비스. 포시즌스 호텔 홍콩에서 그런 호사를 누렸다.
오후 5시. 2023 월드 베스트 바 50(2023 World’s Best Bar 50)에 이름을 올린 아르고(Argo)에 들어서자마자 웰컴 샴페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호텔에 도착한 지 두 시간쯤 지났지만 아직 홍콩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포시즌스 호텔 홍콩의 총지배인이자 지역 부사장인 크리스찬 포다가 환영 인사를 건네기 위해 우리를 찾아왔다. 어색함에 술만 홀짝이는 기자들에게 그가 얼어붙은 공기를 깨뜨리는 질문을 던졌다. “당신에게 홍콩은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인가요?” 모두의 답변을 귀 기울여 듣던 포다에게 역으로 물었다. “당신은요?” 물어봐주길 기다린 사람처럼 기쁜 얼굴로 건넨 즉답에서 귀에 또렷하게 꽂힌 문구가 있다. ‘Super high-end, super local.’
“이 도시에선 오늘은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다음 날엔 수십 년 동안 만두를 빚어온 작은 식당에서 만두와 국수를 먹는 일이 아주 자연스러워요. 가격과 상관없이 둘 다 아주 훌륭하죠. 그게 바로 홍콩입니다.”
10여 년 만에 방문해 까마득히 잊었던 홍콩의 매력을 궤뚫는 그의 말에서 이번 여정의 이정표를 찾았다. 슈퍼-하이엔드. ‘국제적인 도시’ ‘코스모폴리스’ ‘동과 서를 잇는 허브’ 같은 수식어를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라고 해도 될 만큼 일찌감치) 거느린 홍콩이 오랫동안 갈고 닦은 ‘하이엔드’는 이 도시의 정체성 그 자체다.
‘포시즌스’라는 글로벌 하스피탤러티 브랜드에서 이 단어를 경험하는 일은 숨 쉬듯 쉽다. 1961년부터 ‘환대’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며 공신력 있는 기관과 미디어로부터 ‘최초’와 ‘최고’라는 타이틀을 획득해온 호텔의 서비스를 누린다는 것은 업력 높은 베테랑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토크쇼를 보는 것과 같다.
나는 그 기분을 호텔 입구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느꼈다. 포시즌스의 이그제큐티브 클럽 멤버는 비행기에서 막 내려 꾀죄죄한 차림으로 땀 냄새를 풍기며 리셉션 앞에서 기다릴 필요 없이 직원의 안내에 따라 곧장 클럽 라운지로 올라가 체크인 절차를 매끄럽게 밟는다. 다섯 번 이상 묵은 투숙객에겐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객실 키가 주어진다. 이 호텔이 방문 횟수, 차량 번호, 투숙객의 얼굴 등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촘촘한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에 가능한 서비스다.
객실의 면적, 침구와 어메니티, 가구 같은 ‘시설’ 퀄리티는 굳이 논할 필요가 없는 영역이다. 머문 사흘 동안 내가 감각한 ‘하이엔드’는 다른 디테일 속에 있었다. 빅토리아 하버와 지금 홍콩에서 가장 뜨거운 미술관 엠플러스(M+)를 품은 구룡반도가 침실과 거실의 통창에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전망은 이 호텔의 탁월한 위치 선정 능력이 발휘된 결과다. 당신이 만약 몰디브나 남아공, 발리 같은 자연 속에서 “리조트는 정말 좋은데 시내가 멀고 밖에 나가기가 어려워서 힘들었어.”라는 아쉬움을 종종 토로하는, 부지런하고 극성맞은 외향인이라면 별다른 수고 없이 홍콩의 중심 ‘올드센트럴’에 도보로 닿을 수 있는 포시즌스 홍콩의 로케이션이 매우 만족스러울 것이다.
1842년에 문 연 홍콩의 첫 재래시장을 옛 결은 살리며 현대적으로 레노베이션한 ‘센트럴 마켓’과 미드나잇 에스컬레이터 같은 명소는 센트럴 지구를 가로지르는 보도교, 센트럴 엘리베이티드 워크웨이(Central Elevated Walkway)를 통해 닿을 수 있을 만큼 지척이다. 그 덕에 나는 포시즌스 홍콩의 컨시어지에서 정성스럽게 정리해준 ‘홍콩의 정수를 경험하는 길거리 탐험’ 목록을 손에 쥐고 마미 팬케이크(Mammy Pancake, 홍콩 스타일의 에그 와플집), 란퐁유엔(Lan Fong Yuen, 주윤발의 단골로 유명한 차찬텡 노포), 찬이자이(Chan Yi Jai, 중국식 전통 과자가게), 실크(Silk, 버블 밀크티 카페) 같은 맛집을 종횡무진하며 올드센트럴 특유의 낭만을 누렸다.
지역성은 내가 정의하는 하이엔드의 핵심이다. 미쉐린 가이드에서 총 8개의 별을 획득한 포시즌스 홍콩의 중식당 룽킹힌(Lung King Heen)의 주방을 이끄는 찬얀탁(Chan Yan Tak) 셰프와 함께한 저녁 식사에서 나는 ‘슈퍼 로컬’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험이야말로 럭셔리의 정수라는 결론을 얻었다. 미쉐린 3스타 셰프인 찬얀탁이 하루를 마치고 고된 하루의 피로를 달래기 위해 찾는 식당, 주싱홈(Ju Xing Home)은 일정 내내 우리 팀과 함께 밥을 먹은 홍보 담당자에 따르면 “로컬들도 잘 모르는 비밀 맛집”이다.
식탁에 오른 정통 홍콩식 정찬에 ‘비둘기 구이’가 올라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시원한 조개수프, 감칠맛 나는 간장 양념을 얹은 생선찜과 싱싱한 마늘, 고추, 파를 잔뜩 얹은 소고기 탕 요리 등의 맛은 일품이었다. 이틀 후 룽킹힌의 정찬에서 찬얀탁이 실력을 한껏 발휘한 음식을 맛보며 미쉐린의 별 같은 건 그의 세계를 다 담을 수 없는 수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룽킹힌이 로컬과 여행자를 매혹시킨 진짜 이유는 홍콩의 영혼이 담긴 한 그릇이기 때문 아닐까? 허름한 식당인 주싱홈과 포시즌스 호텔 룽킹힌의 인테리어와 식기는 완전히 다르지만 음식 한 그릇에 담긴 온기, 식재료와 맛향은(적어도 내 느낌엔) 거의 비슷했다. 식사를 다 마쳐가는 우리를 찾아온 찬얀탁의 땀에 젖은 등과 이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로또에 당첨된다면 최고의 마사지사를 고용해 원할 때마다 각종 테라피를 받는 삶이 꿈인 내게 ‘스파’는 가장 기대되는 경험이었다. 내가 받은 이그나에 디지털 디톡스(Ignae Digital Detox)는 포시즌스가 새롭게 선보이는 트리트먼트 프로그램. 디지털 기기에 중독된 이들의 애로, ‘근육 피로와 블루 라이트로 인한 피부 손상, 짧은 집중력으로 인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테라피’로 구성되어 있다는 안내 문구는 과장이 아니었다.
포시즌스가 아유르베다, 한의학, 자연적인 치유를 기반으로 개발한 스킨케어 브랜드 이그나에의 아로마 오일과 세럼을 듬뿍 써가며 족욕, 반사 요법, 전신과 얼굴 마사지 등을 능란하게 이어가는 디지털 디톡스 리트리트는 홍콩에 도착하기 이틀 전, 하루 1만5천 보의 활동, 시차부적응으로 인한 불면, 장거리 비행의 여파로 끝난 직전의 출장으로 고통받았던 나의 몸을 구원했다.
방으로 돌아와 부스러지는 사암처럼 퍼석했던 피부가 들기름 바른 파래김처럼 매끄러운 윤이 도는 것을 보고 곧장 휴대폰을 열어 이그나에 아조리안 테라피 오일과 블루 라이트 세럼의 가격을 검색하다가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침대 위로 전화를 던졌다. 대신 객실 한쪽에 있는 다구 세트를 가져와 소파에 앉았다. 내 방을 담당하는 직원이 뜯는 족족 채워 놓는 프리미엄 재스민 찻잎을 뜨거운 물로 우린 후 호텔에서 턴-다운 서비스로 제공하는 전통 과자와 함께 차의 시간을 누렸다.
이런 경험. 신경을 거스르는 자잘한 일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고 내 앞에 놓인 시간을 온전하게 의식하는 경험이 정말 절실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구룡반도와 엠플러스의 전광판을 응시하며 어제와 그제 맛본 포시즌스의 미쉐린 스타 다이닝들, 카프리스와 아르고, 템푸라 우치쯔에서 맛본 환상적인 음식을 곱씹다가 마침내 영원히 오지 않길 바랐던 마지막 저녁 시간과 마주했다. 미쉐린 2스타를 받은 이탤리언 다이닝 ‘노이’에서 열네 개의 접시가 나를 기다린다. 내일 눈을 뜨면 어제가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이 내 것이면 좋겠다는 헛생각을 하며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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