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장을 지진다” 한마디에…1호 트레이드 조종규부터 최근 김민석까지

[베팬알기] ⑮‘75건-153명 거래’ 베어스의 트레이드 역사

베어스 구단 역대 1호 트레이드 기록을 쓴 조종규(왼쪽)와 최근 트레이로 영입한 김민석. ⓒ두산베어스
『두산 베어스가 22일 롯데 자이언츠에 투수 정철원(25), 내야수 전민재(25)를 내주고 외야수 김민석(20), 추재현(25), 투수 최우인(22)을 영입하는 2대3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2024년 11월 22일 두산 베어스 보도자료>

2024년 시즌을 마무리할 즈음, 빅뉴스가 터졌다.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지난 22일 총 5명의 선수가 오가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는 소식이었다. 특히 신인왕 출신 투수와 1차지명 젊은 유망주 외야수가 포함된 트레이드여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두산에서는 2022년 신인왕 출신 불펜 투수 정철원과 발빠른 내야수 전민재를 롯데에 내줬고, 롯데에서는 2023년 1차지명 특급 유망주 외야수 김민석과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외야수 추재현, 시속 150㎞ 파이어볼러 최우인을 두산으로 보냈다.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이 트레이드를 놓고 손익계산서를 작성하느라 분주하지만, 무릇 트레이트는 수년 후에 득실이 가려지기에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베팬알기-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기록 이야기]는 이번에 이뤄진 두산과 롯데의 트레이드를 계기로 베어스의 트레이드 역사를 돌아본다.

1984년 OB 베어스가 구단 역사상 1호 트레이드로 영입한 조종규(왼쪽) . 그는 은퇴 후 KBO 심판위원을 거쳐 심판위원장을 역임했지만 2019년 갑자기 세상을 떠나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두산베어스

◆ 베어스 1호 트레이드…1984년 해태 포수 조종규 영입 비화

‘코끼리’ 김응용 감독의 한마디가 OB 베어스의 트레이드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때는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종규. 훗날 KBO 심판위원을 거쳐 심판위원장이 되는 인물(2019년 별세)이다. 그는 프로야구가 출범하던 1982년엔 경리단(육군)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이듬해인 1983년 해태 타이거즈에 1차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군산상고-건국대 출신으로 강한 어깨와 타격에 강점을 갖고 있던 포수였다. 고교는 물론 대학과 실업야구(한국화장품) 시절에도 각종 타격상과 홈런상을 받았다. 그러나 해태 입단 후 사정이 달라졌다.

1982년 해태는 선수층이 얇았지만 주전 포수 박전섭을 비롯해 김경훈, 김용만, 홍순만 등 포수 4명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큰 벽이 나타났다. 해태가 1983년 재일교포 포수 김무종을 영입한 것. 1983년부터 해태 지휘봉을 잡은 김응용 감독은 당시 야구 선진국인 일본프로야구(히로시마 카프)에서도 활약한 김무종을 주전 포수로 낙점했다. 박전섭도 그랬지만 조종규에게도 좀처럼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롯데전에서 조종규가 모처럼 얻은 타격 기회에서 파울 홈런을 치자 김응용 감독이 덕아웃에서 한마디를 한다.

“조종규가 안타를 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조종규가 다시 파울 홈런을 치자 김응용 감독은 “어휴, 장 지질 뻔했네”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 말이 삼진아웃을 당해 덕아웃에 들어온 조종규 귀에 들어갔고(군산상고 후배인 김성한이 이야기를 해줌), 조종규는 감독에게 따지러 갔다가 오히려 혼쭐이 났다. 그 이후 출장 기회는 더더욱 줄어들었고, 조종규는 트레이드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조종규는 결국 이듬해인 1984년 3월 말에 OB 베어스 구단에 입단하게 된다. 베어스 역대 1호 트레이드가 기록된 순간이었다.

(이상의 내용은 고 조종규 전 심판위원장이 살아생전 기자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김성근 감독은 1984년 OB 베어스 감독을 맡자마자 해태에서 입지가 좁아진 포수 조종규를 영입하기로 하면서 구단 1호 트레이드 역사를 만들었다. ⓒ두산베어스
“조종규 선배가 해태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사실상 방출되는 시기였어요. 당시 OB가 창원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을 때인데 정확히 기억해요. OB에 윤몽룡 코치가 있었는데 조종규 선수의 건국대 선배였죠. 몽룡이 형이 조종규 선수를 창원호텔로 데리고 와서 김성근 감독한테 소개를 시켜줬어요”

당시 OB 베어스 매니저였던 구경백 현 일구회 사무총장의 기억이다.

(윤몽룡 코치는 1972년 중앙고의 청룡기 우승을 이끈 명투수 출신으로 OB 코치 시절이던 1984년 7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날따라 부슬부슬 비가 오더라고요. 창원 호텔 앞에 공원 공터가 있었는데 몽룡이 형하고 종규 형하고 캐치볼을 했죠. 김성근 감독님하고 저하고 지켜보고 있었고요. 당시 ‘조종규 어깨가 가서(망가져서) 캐처를 할 수 없다’라는 소문도 돌기도 했는데 어깨가 괜찮더라고요. 당시 OB에 김경문 조범현 정종현 포수가 있었지만 2군도 연습경기를 해야 하니까 포수가 부족했어요. 우리는 처음에 조종규 선수가 방출 신분인 걸로 알았는데 해태에 정확한 신분을 물어보니까 그때 현금 트레이드를 요구하더라고요. 금액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아무튼 그렇게 해서 OB 구단 1호 트레이드가 성사됐습니다.”

구경백 사무총장의 말처럼 베어스 구단의 트레이드는 다른 구단에 비해 늦었다. 1982년부터 1983년까지 다른 구단과 한 차례도 트레이드를 하지 않고 있었다. 원년 6개 구단 중 트레이드가 유일하게 없었던 구단이다.

한편 조종규 트레이드 이전에 KBO에는 총 8건의 트레이드가 성사됐고, 트레이드에 엮어 15명의 선수가 팀을 오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KBO 역대 1호 트레이드 주인공은 서정환. 1982년 12월 7일 삼성에서 해태(현금 트레이드)로 건너갔다. 그 이후 1983년 1월 10일 삼성 정구왕이 역대 2호 트레이드로 삼미 슈퍼스타즈로 이적했고, 6월 27일 MBC 유격수 정영기와 롯데 포수 차동열이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11월 17일에는 롯데가 임호균을 영입하기 위해 박정후, 권두조, 김정수, 우경하 4명을 내주는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하기도 했다.

김대진은 1984년 8월에 베어스 역대 2호 트레이드 영입 선수이자 KBO 최초 무상 트레이드 주인공이 됐다.

◆ OB 베어스 2호 트레이드는 KBO 최초 무상 트레이드

베어스는 1984년 후기리그가 한창 진행 중이던 8월 15일 구단 역사상 2호 트레이드를 기록하게 된다. 삼미 외야수 김대진을 데려온 것이었다. 트레이드 건수로 놓고 볼 땐 KBO 역대 10번째 트레이드 사례였다.

그런데 김대진의 트레이드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KBO 역사상 최초 무상 트레이드였기 때문이다. 1983년 삼미에 입단해 타율 0.277을 기록하면서 주전 외야수로 자리 잡았던 김대진은 1984년 입지가 좁아지면서 OB로 이적했다.

삼미가 내건 조건은 1984년 잔여 경기에는 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앞서 1982년 원년 우승을 차지한 OB는 1983년 국가대표 출신의 내야수 이선웅과 정구선을 지명했지만, 약체 삼미의 간곡한 요청에 이들을 무상으로 양보했던 일도 있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삼미도 OB에 무상 트레이드를 해준 것이었다.

1985년 MBC 청룡에서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한 이종도. 잠실 라이벌 팀간의 최초 트레이드 주인공이 됐다. ⓒ두산베어스

1985년 1월에는 베어스 3호 트레이드가 이뤄졌다. MBC 청룡의 이종도를 현금 1800만 원으로 영입하게 된다. 1982년 원년 개막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기록하는 등 MBC 간판스타로 활약한 그는 OB에 와서도 주장을 맡을 정도로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종도는 잠실 라이벌 팀간의 최초 트레이드 사례로 기록됐다.

OB는 그해 시즌 후 해태 엄평재(강속구를 던졌지만 제구가 불안했던 투수)를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한 뒤 11월 27일에는 청보 핀토스(삼미 후신)와 2대2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청보 외야수 김호근과 정문섭을 받고, 원년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투수였던 잠수함 강철원과 우투수 정선두를 보냈다. 현금 트레이드가 아닌 선수간 맞트레이드는 베어스 구단 역사상 이때가 처음이었다.

12월 28일에는 김우열과 김일중이 신생팀 빙그레로 트레이드됐다. 김우열은 원년부터 OB 간판 홈런타자로 활약했지만 “고향(충북 영동) 팀에서 마지막 열정을 태우고 싶다”며 트레이드를 요구해 대전·충청권을 연고로 창단한 빙그레로 이적했다.

OB 베어스 간판 스타 김우열(왼쪽에서 두 번째)이 재일교포 타격의 대가 장훈(왼쪽)과 김성근 감독(오른쪽)의 대화를 듣고 있다. 김우열은 1985년 말에 빙그레로 이적했다.

◆한대화, 트레이드 거부 1호 임의탈퇴 우여곡절까지

구단의 역사가 40년 넘게 쌓여가고 있는 만큼 트레이드 자체도 하나의 큰 역사의 물줄기를 이루고 있다. 그 트레이드 사이 사이에는 많은 사연이 있다.

그중 1985년 11월 OB와 해태가 합의한 2대1 트레이드는 큰 파문이 일었다. OB에서 보내주기로 한 한대화가 트레이드를 거부하면서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한대화는 당시 간염에 걸리면서 훈련을 소화할 몸이 안 됐지만 강훈련을 선호하는 김성근 감독의 눈밖에 날 수밖에 없었다. 한대화는 “고향(대전) 팀으로 창단한 빙그레로 트레이드시켜달라”고 요구했으나 OB가 상대팀을 해태로 틀자 야구를 그만두겠다며 대둔산 암자로 들어가버렸다.

OB 베어스 시절의 한대화 ⓒ두산베어스

트레이드를 거부한 한대화는 KBO 1호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되면서 60일간 선수자격이 박탈됐다.

트레이드가 지지부진해지자 일단 OB는 양승호와 황기선을 받고 이적료 형식으로 현금 3750만 원을 해태에 보냈다(KBO 2월 21일 공시). 이후 동국대 시절 은사였던 김인식 해태 수석코치가 한대화가 칩거하던 암자까지 찾아가 설득을 했고, 결국 해태로 데려가면서(3월 25일) 우여곡절 끝에 2대1 트레이드가 완성됐다. 해태는 OB 구단에 받았던 현금을 되돌려줬다.

OB 베어스 포수 시절의 김경문. ⓒ두산베어스

◆트레이드로 왕복한 김경문…잠실 홈런왕이 된 김상호

1990년 새해 벽두부터 트레이드가 팡팡 터졌다. 1월 3일 OB 원년 우승 멤버였던 김경문이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2600만원) 트레이드됐다. OB는 은퇴 후 불펜코치를 맡아줄 것을 권유했으나 김경문은 선수생활을 연장하기를 원하면서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태평양으로 이적하게 됐다.

하지만 김경문은 1990년 시즌이 끝난 뒤 12월에 재일교포 송재박과 트레이드돼 친정팀 OB로 돌아왔고, 1991시즌을 뛴 뒤 은퇴했다. 김경문은 베어스 구단 역사상 트레이드로 나갔던 선수가 트레이드로 돌아온 첫 사례의 선수로 기록됐다.

1990년 트레이드로 OB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김상호는 1995년 잠실 홈런왕과 MVP에 오르면서 팀 우승을 이끌었다.

1990년 트레이드의 백미는 1월 22일 성사된 김상호와 최일언의 1대1 맞교환. 당시 MBC 청룡이 럭키금성에 매각되던 시기(LG 트윈스로 3월 15일 창단)였다. MBC 거포 유망주 김상호를 받고 1980년대 에이스로 활약한 재일교포 최일언을 내주는 거래였다. 김상호는 1995년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구단 선수 중 최초로 홈런왕과 타점왕에 오르면서 MVP를 차지했고, OB의 두 번째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1990년 12월 30일에는 1980년대를 장식한 포수 조범현과 투수 윤석환이 현금 트레이드로 삼성으로 이적했다. 김성근 감독이 태평양에서 삼성 감독으로 이적한 뒤 이뤄진 첫 트레이드였다. 이듬해인 1991년 1월엔 ‘학다리’ 신경식이 강영수와 트레이드돼 삼성으로 넘어갔다.

1998년 12월 30일 OB 베어스 시대의 마지막 트레이드를 기록한 김상진. ⓒ두산베어스

◆OB 시대 마지막 트레이드와 두산 시대 첫 트레이드

IMF(국제통화기금) 경제 위기 사태의 직격탄이 터진 1998년. OB 베어스 시대의 마지막 시즌에 4건의 트레이드가 이뤄졌다.

7월 31일 쌍방울에 투수 박상근과 외야수 박상현을 주고 외야수 김실을 데려왔고, 10월 31일엔 롯데에서 좌완 차명주를 받고 포수 최기문을 내줬다. 차명주와 최기문은 1996년 양 구단의 1차지명 선수여서 주목 받았는데 둘은 이적 후에 나름대로 제몫을 해냈다.

12월엔 1995년 우승 주역 투수들이 팀을 떠났다. 12월 24일 외야수 최훈재와 좌완투수 이재만을 영입하면서 해태에 권명철을 보냈고, 12월 30일엔 김상진을 삼성에 현금(6억5000만원) 트레이드했다. 김상진은 OB 시대의 마지막 트레이드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OB 베어스는 1999년 1월 5일 팀명칭을 두산 베어스로 변경했다. 그리고는 1월 22일 외야수 김상호와 1994년 1차지명 투수 류택현을 LG에 현금 1억 원에 보내면서 두산 베어스 시대의 첫 트레이드를 기록했다.

두산 베어스 외국인 트레이드 1호와 2호를 기록한 마크 키퍼(왼쪽)와 다니엘 리오스. ⓒ두산베어스

◆2000년대 활발한 트레이드…외국인선수 최초 트레이드까지

2000년대에 접어들어 구단 역사상 트레이드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졌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간 28건의 트레이드가 기록됐고, 이 트레이드를 통해 유니폼을 바꿔 입은 선수는 총 57명이나 됐다. 이는 베어스 역대 트레이드 건수(72건)의 38.8%, 전체 트레이드 인원(153명)의 37.3%에 해당한다.

그중에서도 2003년이 가장 많았는데 6건의 트레이드에 13명이 오가는 거래가 성사됐다. 2003년은 김인식 감독 시대의 마지막 해이자 김경문 코치가 새 사령탑으로 승격(10월 10일)된 직후였다.

특히 7월 9일엔 KIA의 외국인 투수 마크 키퍼를 데려오고, 우완 최용호를 내주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켜 눈길을 모았다. 키퍼는 2002년 KIA에서 19승으로 다승왕에 올랐던 인물. 두산으로 이적한 뒤에는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했지만 구단 역사상 외국인 선수가 포함된 첫 트레이드라는 점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그 이후 2004년 7월 11일에도 KIA와 외국인 투수가 낀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좌완 유망주 전병두를 내주고 다니엘 리오스와 김주호를 받는 2대1 거래를 했다. 리오스는 2007년 KBO 역대 외국인 투수 최다승인 22승(5패)을 올리면서 MVP를 차지했다.

OB 베어스에서 활약하던 강병규는 2000년 SK 와이번스 신생팀 특별지명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두산베어스

◆신생팀 지명 트레이드로 떠난 선수들

역대 트레이드 명단 중에는 KBO 신생팀 창단으로 인한 트레이드도 포함됐다.

1985년 창단한 빙그레에 김우열과 김일중을 현금으로 보낸 트레이드가 있었지만, 당시엔 신생팀 지원에 대해 제도적으로 강제한 것은 아니었다.

기존 구단이 균등하게 제도적으로 선수 지원을 시작한 것은 1989년 제8구단으로 창단을 결정한 쌍방울 레이더스(1990년 2군리그, 1991년 1군리그 입성)부터였다.

기존 구단은 보호선수 22명 외에 쌍방울이 지명한 2명의 선수에 대해 현금 트레이드를 해주기로 했는데, 1989년 12월 28일 OB의 이승희와 한오종이 쌍방울의 1호 지명 트레이드 대상자가 됐다. 이적료는 현금 1500만 원.

2000년에는 SK 와이번스가 창단했다. SK는 기존 7개 구단에서 보호선수 23명 외에 1명씩을 지명해 현금 10억 원에 영입할 수 있었는데 두산 선수 중에서는 투수 강병규를 선택했다. 이어 2000 한국시리즈 진출팀에서 추가로 1명씩을 지명할 수 있도록 했는데 SK가 두산의 강혁을 지명하면서 현금 6억5000만 원에 트레이드를 하게 됐다.

2012년 말에는 사이드암 투수 고창성이 신생팀 NC로, 2014년 말에는 좌완 정대현이 신생팀 kt로 지명돼 건너갔다. 당시 구단별 보호선수 숫자는 20명이었고, 이적료는 현금 10억 원으로 통일했다.

문동환은 2003년 두산 선수가 된 지 하루 만에 한화로 트레이드되면서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2010년대에 두산 코치가 되면서 베어스 유니폼을 입게 됐다. ⓒ두산베어스

◆하루 만에 팀을 떠난 문동환

트레이드로 인해 최단기간 팀에 머물다 떠난 선수로 문동환이 있었다.

두산은 2003년 말 FA(프리에이전트) 정수근이 롯데로 이적하면서 12월 10일 보상선수로 투수 문동환을 지명했는데 하루 만인 12월 11일 한화 포수 채상병과 문동환을 맞바꾸는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이었다.

두산은 포수 채상병이 필요했던 상황. 그래서 한화의 요구에 따라 정수근 보상선수로 문동환을 찍고, 채상병을 데려오는 대신 문동환을 한화에 보냈던 것이었다. 문동환은 두산 유니폼을 입어보지도 못한 채 호적상으로만 두산 선수로 잠시 머물렀다. 그래서 웬만한 팬들도 문동환이 두산 소속 선수였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두산은 이와 함께 이날 외야수 심재학을 KIA에 내주고 투수 박진철과 1루수 황윤성을 받는 트레이드도 성사시켜 하루에만 2건의 트레이드를 처리하기도 했다.

◆ 상대 구단별 트레이드 분석

베어스 구단은 창단 이후 그동안 총 75건의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이는 신생팀 지명 트레이드와 웨이버 트레이드까지 포함한 숫자다. 75건의 트레이드 과정에서 총 153명(양수 71명, 양도 82명)이 들어오고 나갔다.

구단별로 살펴보면 가장 많은 딜을 성사시킨 파트너는 한화(빙그레 포함) 이글스였다. 1985년 12월 김우열 김일중을 시작으로 총 13건의 트레이드가 이뤄졌다.

뒤를 이어 삼성과 9차례 트레이드를 펼쳤다. 흥미로운 점은 양 팀 사이의 첫 트레이드가 1990년에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1982년 한국시리즈 상대팀으로 만난 뒤 1980년대엔 껄끄러운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 시즌 후 투수 윤석환과 포수 조범현이 현금 트레이드로 삼성에 이적한 것이 양팀 간의 최초 트레이드였다.

8건의 트레이드를 단행한 상대는 3팀 있는데 우선 잠실 라이벌 LG(MBC 포함)가 눈에 띈다. 1985년 이종도를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한 것을 시작으로 2021년 2대2 트레이드(양석환+남호↔함덕주+채원후)까지 8번의 거래가 이뤄졌다. 1991년 한명수와 2003년 성영재, 2009년 이경환이 웨이버 트레이드로 LG에 이적한 사례까지 포함한 숫자다.

롯데와는 창단 후 16년 만에 처음 트레이드를 했다. 1998년 롯데에서 영입한 차명주. ⓒ두산베어스

롯데와는 창단 후 가장 오랫동안 트레이드가 되지 않기도 했다. 두 구단이 특별히 사이가 나쁘거나 라이벌 관계에 놓이지도 않았지만, 1998년 투수 차명주와 포수 최기문을 맞트레이드한 게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 속도를 냈고, 최근 3대2 트레이드(김민석 추재현 최우인↔정철원 전민재)까지 합의하면서 롯데와 역대 트레이드 건수를 총 8건으로 늘렸다.

지금은 사라진 삼청태현(삼미-청보-태평양-현대) 팀과도 8건의 트레이드를 수놓았다.

SSG(SK 포함)와 6건, 쌍방울과 4건, 히어로즈와 3건이 뒤를 잇고 있으며 2010년대에 창단한 NC, kt와는 신생팀 지명 트레이드를 포함해도 2건씩을 기록 중이다.

그동안 성공한 트레이드도 있었고 실패한 트레이드도 있었다. 트레이드는 시대적 상황과 구단 내부 사정 등이 얽히고 설켜있다. 트레이드 성패는 미래에나 알 수 있다.

이번 롯데와 3대2 트레이드는 훗날 어떻게 기록되고 기억될까.

지난 11월 22일 롯데와 3대2 트레이드로 영입한 김민석, 추재현, 최우인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두산베어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