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운동권 대부’ 장기표 암 투병 끝 별세

박홍두 기자 2024. 9. 2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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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의 생전 2021년 모습. 연합뉴스

‘재야 운동권 대부’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암 투병 끝에 22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이날 유족 등에 따르면 장 원장은 오전 1시35분쯤 입원 중이던 경기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담낭암 투병 중이었던 장 원장은 입원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병을 발견했을 당시 4기였다고 한다.

장 원장은 지난 7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을 통해 “건강 상태가 매우 안 좋아 병원에서 진찰받은 결과 담낭암 말기에 암이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돼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당혹스럽지만 살 만큼 살았고, 한 만큼 했으며, 또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말했다.

‘영원한 재야’였지만 번번히 정계진출엔 실패

1945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자살을 접하면서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에 투신했던 그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와 한동안 서울 도봉구 쌍문동 등에 살며 노동운동을 함께 하기도 했다.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민청학련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민중당 사건 등으로 9년간 수감 생활을 했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했다.

장 원장은 민주화 이후에는 재야운동에 한계를 느꼈고 현실 정치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는 1989년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면서 진보정당 운동에 나섰다.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했다.

하지만 선거 운은 없었다. 1992년 14대 총선을 시작으로 15·16대 총선, 2002년 재보궐 선거, 17·19·21대까지 총 7차례 선거에서 모두 떨어졌다. 21대 총선에서는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으로 옮겨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대통령 선거도 세 차례 나와 떨어졌다.

한평생 노동·시민운동에 헌신했으나 결국 현실 제도권 정계로는 진출하지 못해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에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을 만들어 저술과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에 집중했다.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도 활동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씨와 딸 2명이 있다.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6일이다.

정치권은 ‘애도’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장 원장과 생전에 함께 노동·사회운동을 하던 정치·사회계 인사들이 찾아와 애도했다. 1990년 민중당 창당운동을 함께 했던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고인의 빈소를 지키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김 장관은 이날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고인에게 정부가 추서한 국민훈장 모란장을 전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장 선생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으로 우리 시대를 지키신 진정한 귀감이셨다. 선생의 뜻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밝혔다고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국민의힘 한지아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고인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다”며 “생전 고인께서 몸소 실천해주셨던 헌신을 끝까지 기억하고, 그가 강조했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도 SNS에 글을 올려 “민주화와 개혁의 큰 별, 장기표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며 “고인의 헌신과 열정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이 새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에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SNS를 통해 “내가 대학생 시절 김근태 선생과 함께 마음 속 깊이 존경했던 대선배셨다”며 “그런 분이 왜 전격적인 정치적 우향우를 했는지 상세히 알지 못한다. 이제 영원한 안식을 빌 뿐”이라고 밝혔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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