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책임 부담에 침묵, 시장은 루머에 반응…한국 코스닥시장 투자자 신뢰 ‘흔들’

최근 삼천당제약 주가 급락 사태를 계기로 ‘전망공시’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지만 국내 증시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공시 대신 보도자료나 비공식 경로를 통해 정보가 먼저 유통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정보 비대칭과 시장 혼란이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망공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시보다 뉴스가 먼저”…삼천당제약 사태로 드러난 전망공시 민낯
삼천당제약 사태는 국내 증시에서 전망공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주주피해가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사례로 지목된다. 삼천당제약은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관련 실적과 향후 매출 전망을 담은 내용을 보도자료 형태로 먼저 배포했지만 정작 거래소 공정공시 절차는 이행하지 않았다. 이후 관련 내용이 언론을 통해 확산되면서 주가는 장중 급락 후 반등하는 등 하루 동안 12%p가 넘는 변동성을 기록했다.
이는 동일한 정보가 ‘공식 공시’가 아닌 ‘비공식 채널’을 통해 먼저 시장에 반영되면서 투자자 간 정보 접근 격차가 발생한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공정공시 제도의 핵심 취지인 ‘동시 공개’ 원칙이 사실상 무력화된 셈이다. 중요한 정보를 공시보다 뉴스로 먼저 접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증시에 대한 투자자 신뢰 하락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기업들이 전망 정보를 공시로 공개하기보다 보도자료, IR자료, 애널리스트 설명회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공시의 기능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보의 질보다 전달 속도와 접근성이 투자 성과를 좌우하게 되면서 투자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망공시는 증시의 정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지만 국내에선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실제 2006년까지만 해도 유가증권시장 189건, 코스닥시장 285건에 달했던 전망공시는 지난해 기준 각각 78건, 45건으로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기업 수가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체감 감소폭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기업이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미래 정보가 줄어들수록 시장은 비공식 정보에 의존하게 되고 이는 곧 주가의 과도한 변동성과 투기적 거래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실제 삼천당제약의 경우 계약 규모 논란, 블록딜 계획, 시장 기대치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 달 만에 주가가 65% 이상 급락하는 극단적인 흐름을 보였다.
국내에서 전망공시가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한 배경으로 제도적 한계가 지목된다. 현행 제도에서는 전망공시 이후 실제 실적이 예측과 일정 수준 이상 차이를 보일 경우 정정공시 의무가 발생하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불성실공시 제재 대상이 된다. 삼천당제약 역시 지난 20일 공시 불이행을 이유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돼 벌점 5점을 부과받았다.
그런데 현행 제도에선 예측과 일정 수준 이상 차이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게 문제로 지목된다. 어느 수준의 오차가 제재 대상인지, 외부 환경 변화로 인한 실적 변동과 내부 요인에 의한 오류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사후규제 중심’ 공시제도도 문제로 거론된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허위·과장 공시에 대한 제재는 강화됐지만 성실한 예측활동까지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예측 실패로 인한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 아예 공시를 하지 않는 게 더 안전한 선택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해외 주요 시장은 공시 유인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일정 요건을 충족한 전망공시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제한하는 ‘세이프 하버(Safe Harbor)’ 제도를 통해 기업의 공시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일본 역시 거래소의 공시 요구와 기관투자자의 정보 요구가 결합되면서 대부분 기업이 실적 전망을 공시하는 구조가 정착돼 있다.
밸류업 위해선 ‘말할 수 있는 시장’부터…전망공시 정상화 시급

전문가들은 전망공시 활성화가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도 회복과 직결된 과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추진 중인 ‘코리아 밸류업’ 정책 역시 기업의 미래 가치에 대한 신뢰 확보 없이는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망공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기업의 법적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면책 기준’의 명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합리적인 가정과 전제 조건을 충실히 제시한 경우 일정 범위 내 예측 오차에 대해서는 책임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정공시 기준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외부변수로 인한 실적 변동과 내부 요인에 따른 오류를 구분하는 기준이 명확해질 경우 기업의 부담은 줄어들고 공시 참여는 늘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공시 방식의 유연화도 중요한 과제로 지목된다. 단일수치 중심 공시에서 벗어나 범위 제시나 시나리오 기반 공시를 도입할 경우 기업은 불확실성을 반영하면서도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투자자에겐 현실적인 판단 기준을 제공할 수 있고 기업의 공시 부담도 완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기관투자자의 역할 강화도 숙제로 거론된다. 기업의 미래 정보공개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가 형성될 경우 자발적 공시 확대라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사례처럼 시장 압력이 공시 활성화의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하윤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망공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한 투자자 신뢰 회복은 물론 글로벌 자금 유입과 기업 가치 제고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기업이 자유롭게 기업의 미래에 대해 설명할 수 있고 투자자가 동일한 정보를 동시에 접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드는 게 한국 증시에 대한 투자자 신뢰에도 기여할 것이다”고 말했다.
글=임현범 르데스크 기자
☞ 기사 속 Q&A
Q1. 삼천당제약 사태의 핵심 문제는 무엇인가?
A. 삼천당제약은 영업실적 전망 정보를 공시가 아닌 보도자료로 먼저 배포했다. 이후 언론 보도를 통해 정보가 확산되면서 주가가 장중 약 12% 이상 급등락하는 등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결과적으로 공정공시 의무 미이행으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및 벌점 부과로 이어졌다.
Q2. 왜 ‘전망공시’가 중요한가?
A. 전망공시는 기업의 미래 실적, 매출, 계약 규모 등 투자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정보를 시장에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제도다.
Q3. 기업들이 전망공시를 꺼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A. 법적 책임 부담이 지목된다. 실적이 전망과 다르면 정정공시가 필요하고 미이행 시 불성실공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보니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 아예 공시를 하지 않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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