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워서 오히려 풍족한, 정갈한 자유로움을 간직한 가을의 사찰
빡빡한 일정 없이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남녀노소 템플스테이 매력 흠뻑
“불교를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치고 힘들 때 언제든지 찾아오셔서 마음의 짐을 덜어놓으세요. 복잡한 속세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최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템플스테이(사찰체험)’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14일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템플스테이 참가자수는 29만2000명으로 2002년 도입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2022년 대비 60% 폭증한 규모다. 템플스테이를 제공하는 전국 158곳의 사찰 대부분은 이미 10월 주말까진 예약이 꽉 차 있다. 유명 사찰의 주말 자리는 수개월 전 예약이 필수다.
가을이 무르익은 계절에 찾는 반야사…낮엔 산의 정취에 흠뻑, 밤엔 별들의 속삭임에 매료
르데스크는 템플스테이 열풍의 수준을 직접 확인하고 인기 비결을 찾아보기 위해 직접 템플스테이를 체험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서울 인근의 템플스테이를 예약하려했지만 경기·강원권에 위치한 사찰 대부분의 자리는 만석이었다. 한참을 검색한 끝에 마지막 한 자리 남은 사찰을 찾을 수 있었다.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에 위치한 ‘반야사’였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반야사까지 가는 방법으론 KTX가 최고의 선택지다. 서울역- 황간역 직통 기차가 있다. 소요 시간은 약 3시간으로 편도 이용비용은 1만4700원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영동역을 거쳐 황간역을 가는 방법도 있다. 서울역에서 영동역까지는 ▲무궁화호(2시간30분소요·1만3700원) ▲새마을호(2시간20분소요·2만400원) 등을 이용하면 된다. 영동역 도착 시 영동군 내 시내버스를 약 30분 타면 황간역에 도착하게 된다. 다만 시내버스 배차간격이 30분~1시간이기 때문에 시간 확인에 유의해야 한다.
영동군의 가로수 대부분은 감나무로 이뤄져있다. 가을이 무르익은 계절 특성 상 도로가 곳곳에 심어진 모든 감나무들에는 잘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물론 감을 무단으로 따는 것은 불법이다. 영동군청에 따르면 오는 23일 주민들이 참여하는 감 따기 행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영동은 감, 포도, 사과 등 제철 과일이 유명한 고장이다.
황간역에 도착하면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반야사 템플스테이 홈페이지에는 약 3대의 이용가능한 개인택시 기사 전화번호가 등록돼 있다. 반야사로 가는 도중에 택시 기사들로부터 영동군 추천 여행 루트와 현지 맛집 정보도 얻을 수 있다. 택시요금은 1만5000원 정도다. 반야사로 가는 길은 잔잔한 강과 잔뜩 우거진 나무들로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반야사의 템플스테이는 두 가지 유형으로 운영된다. 체험형과 휴식형이다. 체험형은 말 그대로 108배 등 실제 스님들의 생활을 함께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휴식형은 입실 이후 식사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엔 자유롭게 활동하는 식이다. 입실시간은 오후 2시, 퇴실시간은 다음날 오후 12시다. 참가비용은 성인기준 1인 6만원으로 한옥숙소와 3끼 밥이 모두 포함된 가격이다. 조끼와 바지 등 활동복 역시 신체 사이즈에 맞게 지급된다. 초중고 학생은 5만원, 미취학 아동은 4만원이다.
입실 후 성별 관계없이 가족 또는 연인 등 함께 온 인원끼리 방이 배정된다. 참가자는 연인, 가족, 친구 등 다양했다. 거동이 불편하신 노부모와 함께 온 가족들도 다수였다. 충북이 아닌 서울, 경남 등 타 지역에서 온 참가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한옥 형태로 지어진 건물 숙소로 들어서자 벽면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 사유 없음. 자의식 없음. 푸시 알림 없음’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실내에는 개인욕실과 에어컨 등이 구비돼있었다.
식사 메뉴는 날마다 다르지만 모두 채식으로 구성돼 있다. 밥이 맛있다는 후기가 자자해 기대감이 컸다. 첫날 저녁은 콩고기와 떡볶이 그리고 각종 나물과 직접 담근 장아찌가 제공됐다. 이어 ▲둘째날 아침(떡국·오이소박이·장아찌·샤인머스켓) ▲셋째날 점심(나물비빔밥·샤인머스켓) 등이었다. 모든 메뉴는 자율배식으로 제공됐다. 맛은 상당히 훌륭했다.
통상 휴식형을 선택한 체험자들은 반야사 주변의 경관을 둘러보며 산책을 즐기거나 방에서 사색의 시간을 보낸다. 반야사에서는 자연적으로 돌들이 흘러내려 호랑이 형상을 한 백화산의 절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사찰 내 가장 유명한 ‘뷰 포인트(View Point)’는 문수전 앞이었다. 대나무숲길과 편백나무 산림욕장도 숙소에서 도보 20분 이내로 산책이 가능하다. 연꽃 연못에 위치한 관세음보살상도 주요 산책코스 중 하나다.
소등시간은 저녁 9시지만 언제든지 사찰 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다만 사찰 밖을 벗어날 시에는 반드시 관리 사무실에 알려야 한다. 소등시간 이후 방에서 나와 하늘을 올려다 보는 사람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밤하늘은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수많은 별들로 장관을 이뤘다. 이곳 스님으로부터 운이 좋으면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도 볼 수 있다고 들었지만 아쉽게도 직접 보진 못했다.
불교에서 반야(般若)는 지혜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번 반야사 템플 스테이를 경험하며 삶의 균형점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치우치지 않은 삶의 균형. 그것이 곧 지혜가 아닐까. 1박 2일의 짧은 여행은 도시의 바쁜 생활을 잠시 잊게 한 시간이었다. 자연의 싱그러움과 사찰의 고즈넉함이 함께 하는 템플스테이. 생활에 지친 이들이 템플스테이에 열광하는 결정적 이유도 이런 ‘쉼의 의미’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정신적 웰빙과 심리적 안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템플스테이는 앞으로도 큰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디지털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점점 더 강해지는 만큼, 이런 심리적 니즈를 충족시키는 템플스테이의 열풍은 단기적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