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춘 “수사에선 다루지 못한 여러가지 의문 풀어낼 것”
[주간경향] 이태원 참사 2주기를 한 달여 앞둔 지난 9월 23일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활동을 시작했다. 유가족들은 지난 10월 2일 진상규명에 필요한 과제 9가지를 꼽아 특조위에 첫 번째로 신청서를 내면서 “희생된 아이들의 명예를 회복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송기춘 특조위 위원장(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은 참사로 고통받는 이들이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진상규명부터 힘쓰겠다”고 말했다. 송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공직자들의 태도와 관련해 ‘면이무치’(免而無恥·처벌을 피하면 부끄러움을 모른다)란 말을 곱씹게 된다고 했다.
지난 10월 23일 서울 중구 특조위 사무실에서 만난 송 위원장은 “유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아픔”이기 때문에 이 참사의 진상규명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왜 참사가 일어나게 됐는지를 알아야 제도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알 수 있고), 또 완벽한 제도도 그걸 운용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 사람이 어떤 자세로 일하느냐에 따라 제도가 작동하기도 안 하기도 한다. 일단 중요한 것은 (어디서 잘못이 있었는지)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조위는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피해자 권리 보호를 목적으로 활동한다. 송 위원장은 “일단은 법령이나 업무상 지침, 매뉴얼에 위반되는 부분이 있었는지 이런 적정성 평가를 해야 할 것이고, 책임의 추궁이 필요하면 지적할 것”이라며 “보다 더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정말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거예요. 그 부분은 유가족을 위로하는 측면도 있지만 사실은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못해서 이런 참사가 발생했는지를 확인하고, 국가의 책임·책무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굉장히 중요한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는 공직자의 얼굴로 시민들과 만난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과 관련해 공직자들은 재판 과정에서 참사에 법적인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은 최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송 위원장은 “헌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법치가 무엇인가 생각한다”며 “헌법이 정한 원칙은 법치주의이고, 이는 국가마저 법에 구속을 받는다는 것인데 현재 공무원들은 (법치는) 권한 집행의 근거로서의 법으로만 생각하고 그것에 위반되지 않으면, 특히 형법에 위반되지 않으면 잘못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인가”라고 했다. 이어 “진짜 법치는 그런 게 아닌데, 헌법에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원칙을 두는 것은 정말 인권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재는 (공무원들이) 굉장히 메마른 공권력 집행을 예정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다.
특조위가 출범하기까지 정치적인 이견으로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특별법이 한 번 수정되면서 기존 법안에 있던 불송치·수사 중지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 권한과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 권한이 삭제됐다. 특조위 활동 기한(1년+3개월 연장 가능)이 짧다는 우려도 있다. 송 위원장은 이미 주어진 조건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는 “수사는 결국 피의자 중심으로 해서 형사 책임을 입증하기 위한 사실관계를 들여다보기 때문에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위원회의 조사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송 위원장은 “유가족들은 왜 우리 아이 시신이 경기도 어느 병원에 가 있었는지 묻고 있다. 참사 직후 유가족들이 서로 만나서 단체화하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도 있었다는 의심이 있다. 이런 것은 수사에서는 다루지 못했다. 유족들이, 또 사회구성원이 가지는 이런 의문을 규명할 것”이라고 했다.
송 위원장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경험 등을 볼 때, 관련자들의 ‘제보’와 ‘진술’이 진실을 확보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특조위는 홈페이지(https://1029itaewoncommission.go.kr)와 e메일(1029itaewon@korea.kr)로 제보를 받고 있다.
“어떤 식물은 아스팔트 틈에서도 나오잖아요. 생명이라는 것이 전개되는 과정은 감동적입니다. 어떤 진실이라는 것은 결국은 스스로 드러나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하는 그런 신뢰가 있어요. 사람은 어떤 강제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자신이 가진 어떤 양심, 부끄러움이 발동해 움직인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 이건 실패할 수밖에 없죠.”
송 위원장은 특조위에서 이태원 유가족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시선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그는 “유가족들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응당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서 잘못된 정보들이 생성된다. 가짜 정보들을 다룬 영상 등은 시정될 수 있게 하고, 위원회 보고서에서도 그런 부분을 지적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혐오 발언을 했던 사람들이 좀 스스로 자정하고 수정했으면 하는 소망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특조위가 출범한 지 한 달이 흘렀다. 위원 9명(상임위원 3명·비상임위원 9명)과 사무처 설립준비단(파견 공무원 7명·민간 전문가 8명)은 본격적인 조사를 위한 작업을 해왔다. 시행령안을 만들면서 지난 10월 8일에는 주요 정부기관에 참사 관련 기록물 폐기 금지와 보유, 폐기 목록 제출을 요청했다. 기존에 나온 자료를 확보해 읽고,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들의 조사 신청을 받고, 그사이 몇몇 제보와 진술도 확보했다. 송 위원장은 “서둘러 사무처를 구성하고 올 연말 조사 활동을 본격화해 주어진 시간 내에 잘 마치겠다”고 했다.
송 위원장은 지난 10월 25일 호주인 희생자 유가족을 만났다. 이태원 참사에는 한국인 외에도 14개국 26명의 외국인 희생자가 있으나, 이들은 그간 한국에서 어떤 정보도 받지 못했다. 송 위원장은 “피해자 국가의 대사관에 영문으로 번역한 서류를 보내고, 관련 국가의 언어로 대사관에서 번역해 피해자·유가족들에게 전달해서 구제받을 수 있는 통로를 우리 위원회가 마련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10월 26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시민추모대회에 부스를 설치해 조사 신청을 받는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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